마우스만으로 파이어폭스 명령 내리기 All-in-One Gestures

Miscellaneous/Etc 2007. 3. 2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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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로가기
> : 앞으로가기
:지금 보는 탭 끄기(위에서 아래로)
: 새 탭(위로)/새 창(아래로)
: 왼쪽 탭이동
(반대) :오른쪽 탭 이동
아래-오른쪽-아래 :전체 명령 동작표 보기

위 익스텐션은 파이어폭스를 사용할 때 특정 명령을 사용하기 위해서 메뉴로 이동하거나 버튼을 누르지 않고 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기호를 그려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능이다.

키보드의 단축키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기능은 마우스만을 이용하여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정 기능에 대한 기호는 위 이미지와 같이 익스텐션을 설치한 후 파이어폭스 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아래->오른쪽->아래' 로 그림을 그리면 새 탭에서 사용가능한 기능들을 확인 할 수가 있다.

먼저 소개한 Tab Effect 1.1과 함께 사용하면 한결 웹브라우징의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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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디지털기기

User Interface/Etc 2007. 3. 24. 13:12
2012년 디지털기기엔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까?

22일 '모바일 이노베이션즈 투어(Mobile Innovations Tour)'라는 주제로 서울서 열린 한국HP의 기자간담회에서 최고디자인책임자(CDO)인 스테이시 울프 이사는 “미래 모바일 환경은 통합적인 복잡함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단순함을 지향하게 될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연결이 가능한 IT제품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기능을 갖춘 디지털 제품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다"(사용의 간편함)

"MP3 플레이어, 휴대용 HDD,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등 각종의 기기들을 모두 들고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다. PC 모니터와 TV 등 비슷한 기능의 제품을 따로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기기간의 통합)

"언제 어디에서든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고 서비스 받을 수 있다"(연결성의 극대화)

이것이 바로 HP가 제시한 미래 디지털 제품의 모습으로 스테이시 울프 이사는 이를 두고 ‘극도의 단순함’이라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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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P]전시장 도우미들이 가상의 전시 모델들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스테이시 울프는 ▲무선 게이트웨이용 손목시계 ▲종이같은 두께의 디스플레이 매트▲씬 클라이언트를 장착 식탁▲다양한 방식의 정보 입력 기능을 제공하는 전자 펜▲인터넷 뱅킹이 가능한 디지털지갑 ▲데이터 베이스와 충전기 역할을 하는 스마트진열대 등의 가상의 제품을 모형으로 선보였다.

손목시계 형태인 개인용 무선 연결장치는 전화와 노트북, 라디오, TV 등의 다양한 기기를 조작하는 중앙 종합연결센터 역할을 한다.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종합연결센터와 손목시계에 접속할 수 있는 '매트'는 평소 둘둘 말아서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이 매트는 큰 화면에 적합한 게임이나 기타 컨텐츠로의 접속이 용이하다.

씬 클라이언트를 장착할 경우 상단이 화면으로 바뀌는 식탁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씬클라이언트는 식탁뿐만 아니라 평면의 가구나 바닥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지금보다 더욱 납작한 형태의 터치스크린 태블릿 PC도 선보였다. 식탁과 일체형인 모델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바로 송금이 가능한 디지털 지갑은 금융거래의 모든 기록을 저장해 확인할 수 있으며, 각종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등을 따로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또 정보공유와 전시가 가능하며, 충전기 역할도 하는 '스마트 진열대'는 실용성 측면에서 참가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스테이시 울프는 이날 발표회에서 "디자인 혁신은 미적 요소와 기능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종 사용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우리의 목표는 개인과 기업에게 직관적이며, 기쁨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모빌리티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류준영 기자   ( ZDNet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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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혁신은 미적 요소와 기능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종 사용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 이 말은 현 IT산업계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나라의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환경은 그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열악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보다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며칠까지 완료하여 시판할 것인가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 보면 고위 관리직에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기능 리스트를 만들고 그 기능리스트를 가지고 제작자와 협상을 하며(대부분의 협상 또한 기능 위주로 흐른다) 절대적으로 수정할 수 없는 최종 완료일을 향해 내달린다.

이런 작업 프로세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멋들어지고 엄청나게 많은 기능들의 집합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복잡함이다.

인터랙션 디자이너인 스콧 맥그리거는 이러한 기능 중심적 개발 마인드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의 강의에서 멋진 실험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는 기능 리스트로 어떤 제품을 묘사하면서 학생들에게 즉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제품의 명칭을 적으라고 했다.
    1)    내연기관,
    2)    고무 타이어가 달린 네 개의 바퀴
    3)    엔진과 구동 바퀴를 연결하는 트랜스미션
    4)    금속 골격 위에 설치된 엔진과 트랜스미션
    5)    운전대의 순서
이런 기능들의 나열로 말하려고 하는 그것을 묘사했다. 이쯤이면 학생들은 모두 자동차라고 떠올리며 적기 시작할 것이었다. 스콧 맥그리거는 이런 기능 나열을 멈추고, 그 대신 사용자의 목표를 몇 가지 언급했다.
    6)    잔디를 쉽고 빠르게 자를 수 있음.
    7)    앉아 있기 편리함
처음 5가지의 기능만을 듣고는 어떤 학생도 ‘좌석이 있는 잔디 깎는 기계’라고 적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기능보다 사용자 목표가 얼마나 더 제품을 잘 설명하는지 알 수 있다.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디자인 본문 중 부분 발췌)

비주얼 베이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쿠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능 위주의 개발보다도 사용성과 사용자의 목표를 반영하는 디자인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능 위주의 개발을 먼저 하게 되면 실 사용자를 위한 사용성과 그 목표를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복잡한 형태의 프로그램과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엄청나게 복잡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그 기능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상식을 벗어나 사용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대부분 기능 위주의 제품생산으로 비롯된다. 사용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기능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기능들에 묻혀서 쉽게 찾을 수 없거나 상식적인 로직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게 된 배경은 우리의 생활을 좀더 편하고 좀더 쉽게 개선하기 위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는 디자인이 산업 전반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지금도 많은 분야에서 개선을 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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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파이어폭스의 익스텐션 Tab Effect 1.1

Miscellaneous/Etc 2007. 3. 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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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 이동시에 3D 박스 형태로 화면전환을 하게 해주는 효과다. 예전에 플래시를 이용하여 bitmapData를 이러한 형태로 distrot하는 기능을 구현한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형태로 화면 전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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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파일을 다운로드 후 실행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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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잡스,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문

Miscellaneous/Etc 2007. 3. 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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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 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번역자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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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의 이 연설문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다시 애플을 위기에서 구하기까지, 그의 발자취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 만들어낸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문을 읽고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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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를 firefox 탭안으로...

Miscellaneous/Etc 2007. 3. 20. 20:01
https://addons.mozilla.org/firefox/1419/

파이어폭스를 사용하다 보면 보안이 필요한 사이트나 컨텐츠에 접근할 때 activeX의 문제로 인하여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불여우 사용을 꺼리는 사용자들이 많고, 나 또한 초기에는 그러한 문제 때문에 불여우의 탓으로 돌리며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위에 링크로 들어가셔서(불여우 브라우저로 들어가야함) 인스톨을 해서 사용하면 불여우를 쓰면서 편하게 IE 페이지를 탭으로 열 수 있다. 표준에 반하는 IE만의 표준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한국 기업들의 activeX로 생긴 문제이기는 하나 다수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링크에 들어가서 해당 익스텐션을 설치하면 위 이미지와 같이 페이지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면 컨텍스트 메뉴가 나오는데 IE Tab으로 페이지 보기에서 3개 방법중 하나를 사용하면 현재 페이지를 익스플로러로 열수가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아래와 같이 불여우 오른쪽 하단을 보면 불여우 로고가 보이는데 그곳을 클릭하거나 3개 방법중 하나를 선택하여도 위와 같이 IE로 열 수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국내 웹페이지상의 여러가지 문제로 파이어폭스 사용을 꺼려하신 분들에게는 좋은 익스텐션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밖에도 파이어폭스에서 인스톨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익스텐션들이 많이 있다.

아래는 블로그의 api를 불여우와 연결하여 불여우를 쓰면서 자신의 불로그에 방문하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여우로 원격 블로깅하기는 http://ychur.tistory.com/168 이곳에 가시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다.

기타 불여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익스텐션들은 아래 경로로 가시면 다운로드 및 설치를 할 수 있으니 자신이 필요한 기능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https://addons.mozilla.org/firefox/exten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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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카운터 10000회 기념...

Miscellaneous/Story 2007. 3. 20. 09:10
블로그를 개설한지 2달도 되지 않았는데 방문 카운트가 1만회를 넘었다. 혼자 사용하는 일기장처럼 편하게 사용한다고 하지만 방문하는 분들을 보면 결코 쉽게 글을 쓸 수가 없다.

항상 보고 쓰는 단어도 가끔은 'ㅐ' 인지 'ㅔ'인지 혼돈하기 일수고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어휘는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확신이 서는 것을 보면 유지를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를 자주 방문해 주시는 단골 블로거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 때면 그분들에게도 나의 작은 웃음과 기쁨, 즐거움과 앎의 즐거움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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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X 문제의 진실

Miscellaneous/Etc 2007. 3. 19. 11:14
요즈음 ActiveX, 정확히는 'ActiveX 컨트롤'이란 기술이 시끄럽다. 브라우저 밑으로 손을 뻗어 그 밑에 깔린 시스템의 기능을 만지작거릴 수 있게 하는 요물. 웹은 웹이로되 PC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게끔 하는, 웹을 웹 이상으로 조작하기 위한 '만능 컨트롤' 도구, ActiveX. 90년대의 프로그래머들은 ActiveX가 포함된 COM이라는 테크놀로지 조합으로 PC 전성기를 풍미했다.

그런데 새 버전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새 OS 윈도우 비스타는 자신들의 기술 ActiveX를 유리 상자 안에 가둬 버리고 만다. ActiveX란 뭐든지 만들 수 있지만, 뭐든지 망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새 플랫폼이 ActiveX에 거리를 두는 이유는 '시스템의 기능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악인에 의해서도 자행될 수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ActiveX는 모두가 순박했던 목가적 시절에나 어울리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업계는 웹을 임의로 '컨트롤'하여 변경하는 일이 그리 바람직한 일도 아님을 공감하고 있다. 웹 표준 운동도 그 일환이다. ActiveX같은 로우레벨 아키텍처에 의존한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란 플래시 수준의 입지를 지닌 플랫폼 제공자가 아니라면 비즈니스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고급 언어를 배운 이래 어셈블리어를 만질 필요가 없듯, 굳이 웹을 개선한다는 목적만으로는 ActiveX라는 위험한 칼을 만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아이디어란 표준으로 묶어 놓기에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것이기에, 올해도 내년에도 웹의 확장은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웹을 초월한 무언가를 덧붙이려는 확장 욕구는 건전한 것이다. 브라우저로 하지 못하는 일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확장'하려는 욕망은 멈추기 힘들고,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까? 파이어폭스가 ActiveX '컨트롤(Controls)'을 금지하고 대신 파이어폭스 '확장(Extension)'이란 개념을 도입한 의도는 그 용어에 잘 나타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미 닷넷을 중심으로 기술 구조를 재편한지 오래다. ActiveX를 위시한 Win32의 리거시 기술들은 배후로 밀려나고, 웹의 확장 기능도 ActiveX라는 칼을 직접 만지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 편하고 더 쉬운 확장을 할 수 있는 방안과 로드맵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난히 ActiveX라는 날카로운 칼을 좋아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잘 드는 이 칼로 웹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웹의 여기저기를 도려내며 우리만의 아키텍처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웹을 서핑하다 만나게 되는 수 없는 경고창들, 칼을 조심하라는 시스템의 경고지만 개의치 않는다. 수저가 필요한 곳에 칼이 놓이고 있다. 손잡이가 필요한 곳에 날이 서 있다.

칼날이 난무한다. 특히 은행 일이라도 한번 보려면 여러 개의 컨트롤을 일단 깔아댄다.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설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니 방법이 없다. 게다가 왜 이렇게 회사마다 종류가 골고루인지. 그렇게 내 PC를 유린하듯 설치되는 컨트롤의 면모는 살펴 보니 하나 같이 '보안 모듈'.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보안을 웹의 외부 기능에 의존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을 말하자면, 한국 수준의 보안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세계 수준의 보안은 브라우저 만으로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외국 굴지의 은행들은 브라우저만으로 인터넷 뱅킹을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IE와 파이어폭스 모두 필요 충분한 수준의 암호화 기능은 물론 인증서 관리 기능도 들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한국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표준 기능은 활용하지 않은 채, 보안을 웹의 외부 기능으로 빼내어 독자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놀라운 기술 독립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모질라 재단도 놀라고 있는 일이다. 그들은 이해를 못하는 일이다.

왜? 도대체 왜 이 상황이 된 것일까?

여러 가지 도시 전설이 횡행하지만, ① 당시 미국의 128비트 암호화 수출 금지 조항에 맞선 독자 기술(SEED)의 개발과 적용 지도, ② 한국의 특수 상황이 발생시킨 정보 기관의 지침(보안 적합성 검증), ③ 독자적 최상위 인증 기관 운영 욕구, ④ 해킹 피해 발생 보도에 대한 과민 반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이다. 인터넷이 너무 일찍 퍼진 한국은 너무 급했고 너무 불안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얻은 일도 있을 것이다. 내수 보안 산업이 자생적 생태계를 꾸릴 수 있었다. 척박한 국내 IT 시장에서 나름대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을 연마해 온 그들에게 과연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틀렸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럴 용기가 없다. 완전한 기술 쇄국을 이끈 정부도 금융권도 IT 업계도 국민도 어느 누구도.

그러나 잠시 스스로를 돌아 볼 때다. 우리는 정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안전할까? 인증서 파일을 PC에서 PC로 옮겨 들고 다니는 일이 과연 최고의 보안 솔루션일까? 다른 나라처럼 암호 발생 카드나 암호 발생 열쇠고리를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지 않을까? 전세계적으로 테스트되고 사용되고 있는 브라우저 들의 내부 보안 기능보다, 버그가 있을 수 있는 개별 기업의 외부 보안 솔루션이 더 안전하다고 우리는 진정 믿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잠시 쉬어가며 백지에서 다시 생각해 볼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ActiveX의 문제란 결국 독자 기술의 꿈이 불러 온 기술 쇄국의 딜레마였던 것이다.

사실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다. 쇄국의 아키텍처를 끝까지 고수하며 업체를 압박한다면 어떻게든 솔루션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아슬아슬한 아키텍처를 우리는 가져갈 수 있을까? 새로운 OS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브라우저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실정'을 부르짖어야 할 테니까.

기술은 도구인 이상,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유용한 도구이지만 목적을 잊은 채 수없이 주머니에 품고 있기에는 거북한 존재인 것이다. 잘못 들어가 있는 칼은 서서히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칼의 사용은, 그리고 더군다나 민생에 직결되는 서비스에서의 사용은 더 신중히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칼을 드는 순간, 내 스스로 누군가를 소외시키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칼을 드는 순간 내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도구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 용도를 숙고하지 않은 채, 도구의 방향을 관찰하지 않은 채, 도구를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게 남용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우리 사회는 그리고 업계는 어쩌면 매우 비싼 값을 치르며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 :  김국현(IT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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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인형을 살려주세요...

Design/Web 2007. 3. 19. 02:05
네덜란드의 한 웹에이전시 홈페이지다. 홈페이지에 많은 정보를 담지 않아서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는 쉽게 알기가 어려운 사이트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션을 완료하고 보니 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사이트의 이곳 저곳을 뒤적거려 보고 꼼꼼히 훑어 보는 와중에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이며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었다.

참 재미있는 사이트다.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자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이 회사가 어떠한 마인드를 갖고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제작된 듯 하다. 그것도 재미있게 사용자로 하여금 이 회사의 마인드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을 하고 있다.

적어도 웹에이전시라고 하면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사용자가 특정 웹에이전시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목적은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를 알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클라이언트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일 것이다.

서비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이트다.


http://www.10mg.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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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1분 이내에 당신의 장난으로 숨을 쉬지 않는 불쌍한 토끼 인형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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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충격 3회 실시... 심장 박동수는 점점 증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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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수술에 들어간다. 일단 면도기로 배 부위의 털을 깎아주고 팬으로 오픈할 곳을 그리고 메스로 배를 가른다. 대장과 소장을 제치면 HandCursor가 보이고 그것을 끄집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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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g 알약을 오픈한 배에 넣으면 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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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안에 해결하지 못한 토끼는 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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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행복해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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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인재유치전의 최고 경쟁력은 "통근 버스"

Miscellaneous/Etc 2007. 3. 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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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상

















구글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루 중 언제라도 요리사가 제공하는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암벽 타기, 배구 코트뿐 아니라 2개의 수영장 등 운동시설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차와 오일 교환은 물론이고 미용 서비스와 건강검진 서비스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업체 직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구글의 통근 버스 시스템이다.

검색 및 온라인 광고업계 거물 구글은 미 전역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실리콘밸리에서 대중교통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이 편안하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경쟁이 치열한 IT 업계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링 두뇌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구글의 셔틀은 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어 간혹 시간에 늦는 직원들도 회사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구글이 운영하는 셔틀버스는 총 32대로 전 직원의 1/4에 해당하는 1,200여명이 이용한다. 안락한 가죽 의자와 무선 인터넷 접속 시스템이 구비돼 있으며 자전거도 실을 수 있다. 또 앞좌석에는 애완견도 태울 수 있으며, 버스가 만원이면 애완견을 무릎 위에 안고 탑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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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상


버스가 늦게 도착하면 셔틀 버스 이용자들의 컴퓨터와 휴대폰을 통해 메시지도 보내준다. 뿐만 아니라 구글 버스는 바이오디젤을 이용하므로 환경보호에도 일조할 수 있다. 셔틀버스 이용은 모두 무료다.

구글리(Googley, 구글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 대해 구글 내부인들이 붙인 명칭)들이 이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이는 통근버스 프로그램이 구글의 원대한 야심을 지원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의 정보를 조직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설립자의 업무용 제트기로 보잉 767을 보유하고 있는 구글이라는 기업의 모습이다.

구글의 셔틀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구글 보안 및 안전 이사 마티 레브(Marty Lev)는 “소규모 운송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글의 셔틀 프로그램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37인승으로 구글러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표식조차 없는 구글의 셔틀은 이제 실리콘밸리 고속도로의 명물이 됐다. 하루 132편이 운행되는 이 셔틀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일대 6개 카운티를 운행한다. 10여개 이상의 도시에서 40여개의 승하차 지점을 경유하며, 일일 운행거리는 약 4,400마일에 달한다.

이 버스는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인 구글플렉스에서 북동쪽으로 54 마일 떨어져 있는 콩코드(Concord)에서 남쪽으로 38 마일 거리의 산타크루즈(Santa Cruz)까지 운행된다. 총 운행거리는 230마일에 달하는 고속도로와 전체 운행거리가 104마일인 실리콘밸리의 BART 통근열차 시스템보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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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상


오전 출근시간대 운영시간은 5시 5분에 시작돼 오전 10시 40분에 끝나고, 구글의 요리사들도 종종 탑승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3시 40분부터 10시 5분까지 운행되며, 피크 타임시 배차 간격은 15분이다.

구글 본사에서는 소그룹으로 구성된 교통전문가팀이 각 지역의 교통 패턴을 분석하고, 신입 직원들의 거주지를 파악해 노선을 조정하기도 한다. 통근 버스 수요가 급증해 3개월에 10번이나 노선을 바꾼 적도 있다.

구글 외에도 카풀, 환승 허브 구간 셔틀, 대중교통 및 대체 통근수단 이용 지원 등 통근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는 많다. 그러나 교통전문가들은 가장 완벽한 통근 네트워크를 갖춘 기업은 구글이 거의 유일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 전역의 교통시스템을 연구해온 511 RRP(Regional Rideshare Program) 프로젝트 매니저 태드 위드비(Tad Widby)는 “구글의 통근 시스템보다 더 큰 규모의 프로그램은 베이 에어리에서도, 전국의 대도시 권역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글의 셔틀 프로그램은 복리후생의 일부라거나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일반적인 이점 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인재유치 전쟁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매년 직원을 두 배로 늘리고 있는 구글이라는 거물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최고의 인재를 유입하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IT 종사자들은 구글의 주식이 2004년 IPO 당시 85달러에서 현재 4배 이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신입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이라는 매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미상


물론 구글의 셔틀 시스템이 주가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이다.

45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윌츠 카펜터(Wiltse Carpenter)는 “구글의 모든 복리후생 시스템 중에서 통근버스가 가장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전 구글에 입사했으며 이전에는 구글과 인접해 있는 두 거대기업인 실리콘그래픽스와 MS에서 근무했다. 구글 입사 전에는 1992년부터 지금도 이용하는 고속도로인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는 “이 시스템이 내 삶의 질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카펜터의 이러한 생각이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구글러들조차 실리콘밸리의 높은 부동산 가격을 걱정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더 저렴한 집을 찾아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역동적인 문화와 사회생활에 매료돼 남쪽으로 35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1시간 정도의 통근 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며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거주자들은 지난 10년 연속 교통 문제를 가장 큰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 내리는 겨울 오후 20여명의 구글 직원들이 4시40분에 샌프란시스코의 미션(Mission)과 노에 밸리(Noe Valley) 지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면 이런 걱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같다. 구글의 셔틀버스는 101번 하이웨이로 진입한 후 서행하는 자동차로 꽉꽉 들어찬 3개의 차선을 가로질러 카풀 차선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속도를 올린다.

셔틀을 이용하는 구글 직원들은 대부분 에티켓 규칙도 잘 준수한다. 휴대폰 통화는 업무와 관련된 것이거나 낮은 소리로 하는 경우 가능하다. 그러나 사적인 전화를 큰 목소리로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커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아이팟이나 노트북을 꺼내 업무 혹은 웹 서핑을 하거나 비디오를 감상한다.

33세의 프로그램 매니저 다이애나 알버기니(Diana Alberghini)는 “버스 안에서는 매우 조용하고 대부분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휴식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은 샌프란시스코의 사설 운송 업체인 바우어 리무진(Bauer's Limousine)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영비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구글의 인재유치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최근 구글에 입사한 23세의 웹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 마이클 게이만(Michael Gaiman)은 구글에 입사하기 전 애플의 입사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구글 셔틀에 대해 “셔틀도 구글 입사를 결정한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구글에서 독립 소프트웨어 계약자로 근무하는 38세의 콜린 클링맨(Colin Klingman)은 자신이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 자택 부근에 구글 셔틀 정거정이 생길 때까지 구글과의 계약을 미뤘다. 클링맨의 경우 계약 관계로 일하기 때문에 세금 규칙에 따라 셔틀 이용에 대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한다.

구글과 유사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실리콘밸리 업체들도 최근 들어 눈에 띠게 증가했다. 구글의 최대 경쟁업체인 야후는 지난 2005년 셔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구글 코카콜라 대 야후 펩시의 경우라고나 할까?

야후의 셔틀은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오클랜드 및 기타 이스트베이 도시를 운행하며 이용객은 350여명이다. 구글과 마찬가지로 바이오디젤을 사용하며, 인터넷 액세스 장비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야후의 통근 담당자 다니엘 브릭커(Danielle Bricker)는 야후의 프로그램은 구글로부터「간접적으로」영향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베이도 최근 샌프란시스코 내 5개 정거장을 경유하는 파일럿 셔틀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다른 하이테크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 도입에 나서고 있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페이스북(Facebook)은 본사에서 먼 곳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통근을 위해 셔틀버스를 제공하는 대신 이주비를 지원하고 있다.

팔로 알토 본사에서 1마일 정도 이내에 거주하는 직원들에게 매월 600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구글의 셔틀 프로그램이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4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담 클레인(Adam Klein)은 구글에서 근무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면서 셔틀 정거장에서 도보로 15분 이내에 위치한 곳에 아파트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얻은 아파트에서 구글의 시빅센터(Civic Center) 정거장까지는 당초 생각보다 약간 더 먼 거리다. 클레인은 “경사 구간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클레인의 친구들도 다른 셔틀버스 정거장 근처로 이사하고 있다. 그는 “구글의 셔틀 정거장 근처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퍼시픽 헤이츠(Pacific Heights)의 구글 셔틀 정거장 중 한 부근에 거주하는 구글러는 지난 2005년만 해도 12명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6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인기 탓에 구글은 통근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조사한「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는 인텔이 1위에 올랐다. 인텔은 재택근무가 허락되고 직원들에게 통근 보조금과 셔틀 비용도 지원된다. 구글은 오라클과 함께 3위에 랭크됐으며 2위는 MS가 차지했다.

그러나 구글러들은 구글 셔틀에 이미 푹 빠져있으며 이보다 더 좋은 통근시스템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샌프란시스코 북부지역 부촌인 카우 할로우(Cow Hollow)에서 구글 셔틀에 탑승하는 44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벤트 하게마크(Bent Hagemark)는 “식대를 지불하도록 하거나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셔틀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Miguel Helft ( CNET 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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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Miscellaneous/Story 2007. 3. 14. 02:01
회사를 끝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만두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집에 들어와 으레 그랬듯이 컴퓨터를 켜고 티비를 켠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다. 내 가치와 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시험할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한다.

술 한잔 하고 싶은 밤인데 빌어먹을 이 많고 많은 서울 사람 중에 술 한잔 기울일 친구도 없다. 고향에 있으면 고등학교 친구들이라도 모여서 넋두리를 안주 삼아, 생산적이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앞으로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과 선택 받아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현재의 어려움이 진정 인생에서의 어려움인가.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바라볼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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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향집 평택을 다녀오다...

Miscellaneous/Story 2007. 3. 12. 02:02
오랜만에 평택을 다녀왔다.
전날 가족회의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토요일 저녁에 내려가려고 한 것이 하던 일을 마무리 하다 보니 아침이 되어서야 차를 몰고 평택으로 내려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가끔 평택을 내려가면 공기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평택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평택의 공기는 서울과는 다르다.

잠을 못자고 내려간 터라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놓고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조카 태규의 목소리에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보니 청주에서 어머니와 누나 조카들이 집에 와있었다. 고향 집은 평택이지만 어머니는 청주에서 일을 하시고 누나는 결혼 후 청주에서 살다 보니 우리 가족의 제 2의 고향은 청주가 되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년 사이에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듯하다. 평생 농사를 지시고 무모한 사업보다 안정적인 농사일을 평생 하시고 사셨는데 이제 건강상의 이유로 내년부터는 모든 농사를 하지 않으실 듯 싶다.

여럿을 때는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농사 일을 도와드렸는데 머리가 크고 내 생활들이 늘어나면서 반항을 했던 나였다. 지금은 그 때의 내 행동에 많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나의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과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여럿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우울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서로 싸우고 힘들어 하면서 왜 같이 사시는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정이 많으시고 말 수가 없으시며 무모한 일을 벌리지 않으신다. 그런 반면 어머니는 외향적이시고 말이 많으시며 확신이 서는 일에 대해서는 추진하는 성격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난 그때 마나 조금은 어머니 편에 서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항상 크게 싸우는 날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신 날이었고 싸우는 내용을 들어보면 시시콜콜 어머니의 말이 옳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엇 때문에 싸우셨는지 어떻게 타협을 보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두 분의 성격으로 인해서 아버지는 평생을 농사일을 하시며 사셨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난전 장사도 하시고 돼지와 같은 가축을 키우시기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라 어머니는 니어카를 가지고 시내(집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40분정도의 거리었다)에 가서 음식점에서 버리는 짬들을 모아서 돼지를 키우시기도 했다. 한 여름에는 그런 어머니를 도와주겠다며 뚝에 가서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던 기억이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가 상당히 엄하셨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쉬운 것 없이 사셨던 어머니였는데 옛날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할아버지의 반대로 인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항상 가지고 사셨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다른 남아들보다 공부를 잘 하셨다고 한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나 자식으로서 믿는다 ^^)

그래서 그러셨는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까지만 해도 방학이 되면 항상 아랫목에 이불을 놓고 식구들이 뺑 둘러 앉아서 책을 보거나 어머니가 정해놓은 분량까지 문제집을 풀거나 수판을 놓고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숫자를 더하고 곱하는 일상 속에 살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나기도 했는데 어느날은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어느 집에서 불이 난 것이다. 소방차가 와서 불을 끄고 있는 것을 구경하다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었다. 어머니는 문제집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셨고 들어오자마자 늦게 온 나를 혼내시기 시작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께서 풀어놓으라는 문제집이 있었는데 그 문제집의 답안을 보고 머리를 써가며 중간중간 틀린 답을 넣기도 하며 베껴놓았던 것이다. 답안 중에 답이 길어 “생략” 이라고 되어 있는 답까지 그대로 베껴놓았던 터였다. 이를 어머니가 눈치 채셨고 그 문제로 단단히 혼내시려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날 하필 동네에 불난리가 날게 뭐람…쿠쿠 그래도 불 구경은 재미났던 기억이다.

이렇게 어머니는 공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하셨는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에 손을 놓으셨던 것 같다. 어느날 학교에서 우수상을 받고 어머니에게 칭찬 받을 생각에 날듯이 좋아하며 집으로 달려왔는데 어머니는 일을 나가시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 내가 보여드리는 상장을 보시고도 별로 칭찬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때 만약 어머니께서 많은 칭찬을 하셨다면 그 칭찬의 힘은 지금의 나 보다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

아버지는 공주 출신으로 말수가 없으시고 말이 느리신 전형적인 농부시다. 우리집의 일보다 이웃들의 일들을 먼저 챙겨주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셔도 큰 노여움 없이 궁글게 살아오셨다. 농사라는 것이 바쁠 때는 한 없이 바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을 하실 때면 술 기운에 일을 하셨고 그러다 보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신 듯 싶다.

저녁쯤에 누나와 조카들 그리고 어머니는 청주로 내려가셨고 집에는 형과 나, 그리고 아버지만 남게 되었는데 우리집 남자들은 말수가 없어서 같은 지붕 아래에 생활하고 있어도 하루에 몇 마디도 하기가 힘들다.

저녁을 먹고 서울로 올라간다며 아버지와 형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와서 차에 시동을 켜고 앉아 있는데 불이 켜진 거실 창문에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말 한마디 사는 이야기 하지 못하는 과묵한 내가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안 좋아 지시면서 더욱 쓸쓸해 보이시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 한번 나누지 못하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 많이 죄송스러웠다…

이제는 혼자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오래도록 떨어져 있어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마저 잊고 사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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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20% 프로젝트 성공의 조건

Miscellaneous/Etc 2007. 3. 10. 21:15
몇 달 전 지인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하였다. 구글 본사에 취업을 하게 되어 출국장에서 제 생각이 나서 안부는 전하고 가야겠기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근무하고 싶은 세계 최고의 전도 유망한 좋은 회사와 창의적인 업무 환경, 미국 서부의 좋은 날씨, 그리고 가족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에 미국에 있는 또 다른 지인과 채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그는 미국 생활 이란 것이 매우 척박한 삶이라면서 나를 위로 하였다. 구글 본사는 밖에서 보는 만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으며 워크 홀릭의 땅이니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정말 구글은 개발자들에게 낭만적인 곳인 걸까? 필자도 세 번 정도 구글을 다녀왔었지만 외견상으로는 멋진 업무 환경과 엔지니어를 위주로 하는 회사 정책 등 개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널리 알려진 20% 프로젝트 제도가 있다. 이 방식은 현업 외에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개발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제도 이다. 실제로 구글 개발자들은 개인 업무의 20%를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일주일의 하루든지 일년에 두 달이든 그건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구글의 독특한 문화, 20% 프로젝트
기술 기반 회사에서 개발자들에게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시간적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글의 개발 방법론은 외견상으로 크게 성공을 했고, 최근에 나온 많은 혁신적인 서비스와 프로젝트들이 나오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어떤 구글 직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구글의 20%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고 한다.

(중략)…만약 자기가 하려는 일이 아직 프로젝트가 돼 있지 않다면 ‘아이디어 마켓’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올리면 된다고 했다. 이 아이디어에 일정 수 이상의 다른 직원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하면 ‘20% 프로젝트’가 된다고 설명했다…(중략)… 이 후 ‘20%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더 큰 자원(서버, 네트워크, 마케팅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임원에게 보고하고 정식 프로젝트로 승격되는 과정을 거친다. 정식 프로젝트로 승격되면 이 프로젝트는 이제 ‘80% 프로젝트’가 된다는 것이다.

‘80% 프로젝트’는 임원들의 승인을 거친 아이템으로 시장에 서비스로 출시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프로젝트이다. 구글의 서비스 런칭 단계는 따라서 ‘아이디어 마켓’→ ‘20% 프로젝트’ → ‘80% 프로젝트’ → ‘상품화’ 등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구글의 이러한 독특한 문화를 설명하면서 “구글은 직원들간에 자유로운 정보유통과 더불어 함께 일구는 문화가 잘 구축돼 있다”며 “그런 경쟁력이 지금의 구글을 있게 한 밑거름”이라고 분석했다…(후략) 구글 직원이 소개하는 독특한 ‘구글 기업문화’, 정종오 기자, 아이뉴스

참 재미있는 서비스 설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전략, 기획을 담당하는 사업 부서 혹은 부서장의 의지에 따라 사업이 추진 되는 데, 비해 Bottom-up 방식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 의해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통상 일반적인 회사 체계를 가지는 곳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방식이 구글에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몇 가지 살펴 보았다.

1. 시장 경쟁 지향 프로젝트 환경을 제공한다.
우선 구글은 진짜 개발자들에게 20%의 시간을 준다. 구글 코드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그레그 스타인(Greg Stein)에 따르면, 모든 개발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반 플랫폼을 기초로 하여 3~4명 단위의 소규모 프로젝트(20% 프로젝트)가 천여 개 이상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구글의 개발자들은 그 가운데 스스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경영자들의 승인 아래 더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에 투입 되도록 문호를 개방 한다. 이 말은 결국 선택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스스로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보기에는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민주적 의사 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육 강식, 자연 도태의 환경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창의성 높은 프로젝트가 계속 계발 되는 동시에 이 와중에서 심각하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구글에서는 한해 추진된 20% 프로젝트 중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되는 것에 백만 불을 상금으로 주는 제도도 있다고 한다. 필자가 구글에 방문할 때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실리콘 밸리이긴 하지만 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101번 고속도로가 체증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구글은 저녁 식사 후에도 여전히 사무실 불을 밝히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에 하나다. 마치 연구에 몰두 하는 대학 캠퍼스를 연상하게 한다.

2. 똑똑한 워크홀릭이 주류여야 한다.
구글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유명 하다. 구글이 후보자를 면접 하는 중에 가장 중요하게 보는 덕목이 ‘자기 주도적’인 사람인가 하는 점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변덕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절차를 통과한 사람은 정말 구글에 대한 열정이 높고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다. 면접 과정에서 그 치열하고 어려운 기업 문화를 미리 느껴 볼 수 있으니까. 이런 이면에는 기업의 성장에 ‘무임 승차(Free Riding)하는 사람을 배제’ 하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인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구글에는 아주 똑똑한(Smart) 사람이 많다. 존 버틀러의 “The Search”에 따르면, 2002년 중반 실리콘 밸리 침체기에도 구글의 성장과 독특한 천재 예찬론을 기초로 아이비 리그 출신들의 석박사급 인재를 많이 충원을 했다. 현재는 좀 완화되기는 했지만, 학교와 학점(GPA)과 학위를 중시하는 것은 여전하다.

구글에는 소위 카스트 제도라고 불릴 정도로 똑똑한 엔지니어 위주의 인재 정책을 펴고 있다. 실력이 뛰어나고 이름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 분야의 수 많은 엔지니어들이 구글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최근에 아이디어와 끼가 넘치는 3~4인 정도의 웹2.0 스타트업 기업들도 대거 인수하여 인재를 확충하고 있다. 이들에게 자기 성취를 할 수 있는 업무 여건 및 경쟁 환경을 도입하는 것은 불 붙은 곳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3. 경영자의 절대 권력이 존재해야 한다.
구글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던 2002년말, 래리 페이지와 세리게이 브린은 그들의 조직 구조를 ‘위계형’에서 ‘수평형’으로 바꾸고 80:20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이 때 부터 상위 100개 프로젝트 목록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지고 사업 분야별로 각자 목록을 가지고 있지만) 페이지와 브린은 여전히 그 프로젝트 목록을 살피고 투입해야 될 프로젝트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한다.

‘똑똑한 워크홀릭’들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기회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창의성과 혁신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특징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경영자이면서 오너인 회사에서는 두드러진다. 빌 게이츠는 일년에 두번 모든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어 보는 씽크 위크를 가지고, 일반 사원들의 의견까지도 수렴하고 있다. 이것은 경영자이면서 오너인 사람은 똑똑하다는 가정하에 기업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구글의 20% 프로젝트에 감명을 받고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 볼까 고민한다.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위의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제도를 도입 하기 전에 자신의 조직에 정말 적합한 제도인지는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구글의 20% 프로젝트의 성공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엔지니어의 창의성을 담보해 주면 기술 경쟁에서 장기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원칙을 기초로 자신의 회사에 적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출처 : 윤석찬 (다음 R&D 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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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중심의 프로그래밍

Programming/Etc 2007. 3. 10. 20:5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뮌헨>을 발표한 후 알고 지내던 유태인 친구를 여러 명 잃었다고 고백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도움을 받아 폭탄 제조, 문서 위조, 사건 뒤처리 등의 다양한 재주를 가진 6명의 요원으로 팀을 구성한 다음,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테러를 일으킨 검은 9월단의 배후 요원들을 한 명씩 살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공을 비롯한 요원들은 국가를 위한 복수와 비인도적인 살인 행위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고 스스로의 생명마저 위협받자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된다. 스필버그 감독은 인간적인‘갈등’과‘회의’를 그렸을 뿐인데 열혈 유태인들은 그것조차 용납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무튼 영화 속의 주인공은 복수의 대상 11명이 은거하고 있는 장소와 그밖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일종의‘정보 브로커’와 거래를 한다. 그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살해할 대상이 숨어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의 복수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나라의 정보조직에서도 똑같은 정보 브로커에게 접근해서 주인공과 동료들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정보조직 세계의 요원들이 이렇게 ‘정보 브로커’라는 존재를 통해서 오히려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상황중심이란 개념 이해하기    

이렇게 다양한 독립적인 개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공통적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는 지점, 혹은 수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상황중심 프로그래밍(Aspect Oriented Programming)에서는 접점(join point)라고 부른다.‘ 상황중심’이란 요즘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Aspect Oriented’라는 표현을 나름대로 우리말로 옮겨본 것이다.‘ Aspect Oriented’라는 말이 국내에서는‘관점 지향’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 동안 ‘Object Oriented’를‘객체 지향’이라고 불러온 관성의 영향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관점 지향’이라는 말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조차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관점’을‘지향’한다니? 프로그래밍을 수행하는 사람이 자기 관점을 분명히 세우고 그것을 목표로 전진하라는 말인가?‘ 관점 지향’이라는 말이 국내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일정한 합의를 이루고 있는 표현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이 글에서는‘Aspect Object’를‘상황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야 새로운 방법론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은 말 그대로 현재의 소프트웨어 코드가 처해 있는 특정한‘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프로그래밍을 의미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시장은‘모듈(module)’과‘객체(object)’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발견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방대한 분량의 소프트웨어 코드를 모듈과 객체라는 작고 독립적인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은 점점 더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코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독립적인 모듈과 객체의 수마저 기하급수적인 규모로 증가하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대두되었다.

모듈과 객체는 코드를 추상적이고 부분적인 캡슐로 분리해서 전체적인 코드에 대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필요하면 재사용 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공했다. 즉 모듈과 객체는 코드의 부분을 떼어내서 추상화하는 방법을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모듈과 객체를 가로지르며 존재하는 공통의 관심사(cross-cutting concern)를 효율적으로 추상화하는 방법은 제공하지 않았다. 공통의 관심사란 보안(security), 성능(performance), 기록(logging)과 같은 소프트웨어의 일반적인 속성에서부터 데이터 캐시(cache) 관리나 네트워크 프로토콜의 구현처럼 구체적인 기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공통의 관심사는 특정한 모듈이나 객체가 구현하는 기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시스템 전체에 걸쳐 수평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는 다음 예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    

인터넷 붐이 한창이던 90년대에 미국에서는‘수평적 시장(horizontal market)’과‘수직적 시장(vertical market)’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 수직적 시장이란 어떤 제품이 특정한 분야의 시장에 국한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책, 의류, 자동차, 컴퓨터, 혹은 의료보험 시스템 등은 다른 분야와 겹치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시장을 형성한다.

이들은 모두 수직적 시장의 예이다. 하지만 웹브라우저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특정한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수직적 시장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친다. 그 자체로는 특정 품목에 대한 시장을 형성하지 않지만 여러 시장에서 동시에 존재하는‘공통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영화 <뮌헨>에서 이스라엘의 모사드, 소련의 KGB, 미국의 CIA,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 등은 각자 겹치지 않는 고유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인물의 은신처를‘검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정보 브로커’를 찾아가야만 했다. 각 국의 정보기관이 수직적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면,‘ 정보 브로커’는 웹브라우저와 마찬가지로 수평적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경우에‘정보 브로커’는 여러 정보기관들을 가로지르며 공통적으로 존재하는‘공통의 관심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오늘날의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수직적 시장을 구성하는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객체’들이다. 객체들은 저마다
주어진 일감을 구현하면서 일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의 전체 영역을 분할한다. 이렇게 분할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비슷한 일을 하는 객체를 한곳에 묶어서‘패키지(pack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 프로그래밍은 이러한 분할을 통해서 충분히 잘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렇게 역할 분담을 통한 균형과 평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여러 객체 사이에 존재하는‘공통의 관심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앞에서 예로 든 보안, 성능, 기록, 캐시, 프로토콜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밖에 유닛테스트(unit test)나 테스트 자동화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나의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소프트웨어의 사용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개발자가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용자 중에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말로만“시스템이 느려 터졌다.

답답해서 못 쓰겠다.”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막연하게 불평만 늘어놓는 사용자처럼 속상한 존재가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사용할 때‘느린지’를 알아야 그가 겪고 있는 문제가 PC 하드웨어와 관련된 문제인지, 개발자가 만든 소프트웨어의 문제인지, 네트워크의 문제인지, 혹은 서버나 데이터베이스의 문제인지를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사용자가 허락만 해준다면 그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직접 관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격이 곱지 않은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에게‘저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사람인데요, 잠시 옆에서 PC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해도 될 까요’라고 묻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그렇지만 사용자가 데이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필요한 데이터를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현하기로 한 기능은 사용자가 소프트웨어에서 어떤 동작을 수행할 때마다 맨 처음 GUI의 이벤트 처리 메소드(event handler)에서 출발해서 서버와 데이터베이스에 이르는 과정에 존재하는 각 계층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한 다음 로그 파일과 같은 하나의 장소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스파이로그    

사용자가 GUI 화면에서 주식이나 채권 가격 같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OK 버튼을 눌렀다고 해보자. 그러면 소프트웨어의 흐름은 GUI 계층, GUI 계층 아래에 존재하는 네트워크 계층, 실제 네트워크 전송, 서버에서 사용자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적절한 컴포넌트( component)에게 전달하는 계층,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프로시저(stored procedure), 최종적인 데이터를 담고 있는 응답객체를 생성하는 계층, 응답 객체를 GUI 클라이언트에게 전송하는 계층, GUI가 서버의 응답을 받아서 처리하는 계층 등을 차례로 통과한다.

이 때 각 계층에서 소요된 시간을 측정해서 하나의 객체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처리시간이 기록된 객체는 각 계층을 통과할 때마다 다음 계층에게 전달되면서 값을 축적해 나간다. 필요한 처리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이 객체에 저장된 값은 미리 지정된 포맷에 따라서 로그 파일에 기록되고 객체의 수명은 끝이 난다.

이제 사용자가 시스템의 성능에 대해서 밑도 끝도 없는 불평을 늘어놓으면 로그 파일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실제로 성능에 문제가 있었는지,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어느 계층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유용한 기능의 이름을‘스파이로그’라고 불러보자. 앞의 설명을 읽으면서‘흠 소프트웨어의 여러 계층을 관통하는 <공통의 관심사>를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군’하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만점이다. ‘공통의 관심사(crosscutting concern)’라는 개념을 이해했다면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의 98%를 거의 이해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스파이로그를 실제로 구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소프트웨어가 객체지향 기법에 따라서 계층별로 잘 분리되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각 계층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데 필요한 동작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개의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스파이로그를 구현하는 프로그래머가 각 계층의 입구와 출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스파이로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입구와 출구에 해당하는 객체의 소스 파일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입구에 해당하는 위치에서는 앞의 계층에서 전달한 시간 측정용 객체를 받아들인 다음 들어온 시간(time stamp)을 찍고, 출구에 해당하는 위치에서는 같은 객체 위에 나가는 시간을 찍고 나서 뒤에 있는 계층에게 객체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기능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코드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시스템에 A, B, C, D라는 네 개의 계층이 존재한다고 하자. 하나의 동작(operation)이 완성되려면 A, B, C, D, C, B, A라는 완성된 사이클이 그려져야하고, 스파이로그는 이러한 일곱 단계가 소비하는 시간을 각각 측정해서 기록한다.

그런데 나중에 누가 C 계층을 리팩토링해서 그것을 C1과 C2라는 두 개의 계층으로 분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스파이로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그가 C1이 받아들인 객체를 C2에게 전달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고 하자. 이와 같은 본의 아닌‘실수’가 도입되는 순간 C1과 C2 사이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스파이로그의 기능은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다.

여러 계층이 공유하고 있는‘공통의 관심사’가 단지 한계층에서 발생한 실수 때문에 완전히 동작을 멈춘다는 것은 공정하게 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로그의 기능이 여러 소스 파일에 분산되면서 코드의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은 서로 독립적으로 분할되어 있어야 하는‘객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는 프로그래밍 방법론으로는 명쾌하게 해결되기 어렵다.

객체는 본질적으로 다른 객체와 나란히 서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 다른 객체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직교(orthogonal)하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이‘난처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상황중심’의 프로그래밍이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에서 탄생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은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컴퓨터 사이언스 교수인 그레고르킥잘레스(Gregor Kiczales)는 팔로알토 연구소에서의 연구를 확장해서 현재 상황중심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대표적인 언어로 인정받고 있는 AspectJ를 설계했다. IBM에서도 HyperJ나 관심 변경 환경(Concern Manipulation Environment)과 같은 상황중심 프로그래밍 언어를 발표했지만, 현재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언어는 단연 AspectJ이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서 사용하는 개념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접점(pointcut), 안내(advice), 내부타입 선언(inter type declaration), 그리고 이들을 모두 묶어서 하나의 단위로 추상화하는 상황(aspect)이 그들이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이나 이러한 개념들이 의미하는 바는 AspectJ의 홈페이지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AspectJ에 대한 책도 이미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여기에서 이들이 의미하는 바를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선 접점(pointcut)은 공통의 관심사가 여러 개의 객체나 계층을 가로지를 때 그들과 만나게 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앞에서 살펴본 예에서는 각 계층의 입구와 출구가 접점에 해당하고, 더 앞에서 든 예에서는 모사드, CIA, KGB의 요원들이‘정보 브로커’와 만나는 상황 자체가 접점에 해당할 것이다. 접점은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을 수행하는 프로그래머가 이미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 혹은 핵심을 짚어내는 안목에 따라 제대로 짚어질 수도 있고, 엉뚱한 곳이 접점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어쨌든 프로그래머가 일단 접점을 골라냈으면 그 다음에 할 일은 그 곳에서 할 일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내(advice)이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서 안내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의 메소드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특정한 접점에 이르기 직전이나 혹은 직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정의하는 알고리즘이 안내의 내용을 이룬다.

내부 타입 정의(inter type declaration)는 약간 복잡하다. 이것은 자바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존의 프로그래밍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개념적인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바 언어를 예로 들자면, 어느 객체에게 새로운 인스턴스 변수(instance variable) 혹은 필드(field)를 추가하는 것은 언제나 소스 코드의 수정과 컴파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는 도중에 새로운 필드를 내 마음대로 추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바 런타임(runtime) 내부에서 클래스 이름만 가지고 클래스의 인스턴스를 만들어내는 기능은 있지만 클래스에 이미 정의되어 있지 않은 필드를 더하는 기능은 없다.

그런데 상황중심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내부 타입 정의’기능은 객체에게 새로운 필드를 동적으로 더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기능이 필요한 이유는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객체와 계층을 가로지르면서 동작하는 알고 리즘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객체의 정해진 틀을 뛰어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필자 역시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기능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을 구사하는 프로그래머가 어느 객체에게 내부 타입 정의 기능을 이용해서 동적으로 어떤 필드를 추가했다고 해보자. 그는 객체를 정의하고 있는 클래스에 새로운 필드를 사용하는 알고리즘을 추가할 수도 있다. ‘( 내부 타입 정의’기능을 통해서 추가한 필드가 퍼블릭으로 정의되어 있다면 기존의 자바 코드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성된 소스 코드를 나중에 읽는 다른 프로그래머는 (특히 그가 상황중심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도대체 이 코드가 사용하고 있는 필드가 어디에 정의되어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식의 혼란은 미묘한 버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내부 타입 정의를 이용하는 것은 멀쩡한 객체에게 뼈를 깎고 살을 붙이는 성형수술을 시도하는 것, 혹은 객체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없던 장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수술이나 유전자 조작이 필요한 결과를 낳는다면 다행이지만, 잘못된 결과를 낳거나 그것이 남용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 클래스가 변수와 메소드를 한 곳에 묶어서 하나의 객체로 추상화하듯,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서 사용되는 접점, 안내, 내부 타입 정의를 한 곳에 묶어서 추상화하는 것은‘상황(aspect)’이다. 따라서 상황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 객체가 중심에 서있듯이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서 가장 중심에 서있는 개념이 된다(이것은 프로그래머들이 혐오하는‘중복’된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상황중심 프로그래밍에서 중심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처 : 임백준(월스트리트 금융전문가) & 소프트웨어 산책외 다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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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구조개혁의 제안

Miscellaneous/Etc 2007. 3. 10. 20:36
답답해서 잠을 못 이루는 사안이 있다. 두고 보기에는 점점 꼬여가는 한국의 웹이다. '직접적 가치 교환 플랫폼'으로 진화해 나가야 할 웹이 현실이 드리워 놓은 구조적 장벽에 막혀 확장 의욕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지금 우리 IT 업계와 정책이 심사 숙고해야 할 문제는 ActiveX 호환성이나 웹접근성과 같은 발등의 불을 단기적으로 해소하는 일이 아니라,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과연 우리 IT가 세계에 의미가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레벨의 장기적 문제다.

법과 제도에 길들여진 기술은 그 특유의 창조성을 잃어 버리고, 고착화되어 고비용의 성곽을 쌓고 그대로 굳어 간다. 특히 지난 닷컴붐을 기점으로 형성된 전자 거래에 대한 보호 제도가 실은 보호가 아닌 규제와 간섭의 제도로 변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업계와 사회 전체가 이를 '당연한 기성 사실'로 삼고 의심하지 않은 채 주눅이 들어 그 틀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원점으로 돌아갈 용기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충격적이지만 이미 다 느끼고 있는 질문을 이제는 소리 내어 말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공인인증체계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원래 인증서 자체는, 그리고 인증서가 근거한 PKI란 매력적이다. 공개키/비밀키의 쌍이 핵심 역할을 하는 이 인프라에서, 인증서는 거래 당사자가 진짜 그 사람임을 증명하고, 당사자만 이해할 수 있는 암호화된 통신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비밀키로 사인한 문서를 내 공개키로 확인할 수 있기에, 타인은 틀림 없이 내가 만든 문서임을 알게 된다는 원리다. 내 공개키로 다른 사람이 암호화해서 보내온 문서는 비밀키를 지닌 나만이 열 수 있다는 원리다. 이러한 의미에서 PKI 자체는 유용하고 또 탁월하다. 글로벌 기업은 직원과 자원의 인증 수단으로 사설 인증서를 널리 쓰고 있다.

문제는 '공인'이다.

현재 1500 만명, 그러니까 전 경제인구의 65%에 공인인증서가 보급되었다고 우리는 자화자찬한다. 세계 최고다. 주민등록제도에 이어 또 다른 쾌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원점으로 돌아가 왜 공인인증서를 발부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 한다.

공인인증서는 현재 전자서명법 2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가입자가 생성한 정보가 가입자에 유일하게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증명하는데 있다. 민사소송법 358조의 작성자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리와 마찬가지 선상에 있을 것이다. 즉 공인인증서는 기본적으로 인감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 서명이란 이 문서가 틀림없이 내가 작성한 문서라는 점을, 그러니까 지금 눈 앞의 전자정보가 내 의사에 따른 것임을 입증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 것이 원점이다. 현재 온라인상의 전자 거래에 있어서 그 규제의 원점이 되고 있는 전자서명법이 1장에서 밝힌 목적, 정의, 효력은 그 것이 전부다.

그러나 2장으로 넘어 가면서 전자서명법은 '법의 기술 중립성(벤더 중립성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과 역행한다. 사실상 본법은 2001년 말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비대칭알고리즘 공인인증인프라(NPKI)에 근거한 공인인증서에 의한 것이 공인된 전자서명이다라고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트CA, 즉 최상위인증기관을 국가의 관할 하에 두는 일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며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것이 거대한 피라미드형 기술 카르텔이 되는 것에는 반대할 수 밖에 없다. 사연이 있어서 꼭 공인인증인프라(NPKI)가 유지되어야 한다면, 외국계를 포함한 다른 사설인증기관이 이와 상호인증(Bridge CA)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웹에서 쓸 수 있는 인증 수단은 '공인인증서'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자금융감독규정 및 시행 세칙에는 '공인인증서의 의무화'가 명문화되어 있다. 한국에서 전자거래를 하려면 공인인증서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

구조개혁 1: 공인 인증서에 의한 인증 의무화 폐지
공인인증서에 의한 인증 의무화는 법의 기술 중립성을 잃고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공인인증서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전자서명법에서 규정된 관련 기관과 다시 그 관련 업체의 솔루션을 도입해야만 한다. 사실 인증을 위해 공인인증서만이 사용되어야 한다 믿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공인인증서 없이도 현재 널리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시스템만으로 저비용 PKI 운용이 가능하고 세계적 사례도 많다. 사설 인증서 생성기는 서버마다 들어 있지만 모두 놀리고 있다.

대안①: 접근 허가시 사설 인증서 허용 및 다단계/다각도의 질의식 인증.
시스템으로의 접근 허가권을 어떻게 부여할지 기술적 선택은 전적으로 그 시스템의 판단이다. 감독기관은 그 판단의 건전성과 안전성만 파악하면 된다. 브라우저만으로도 다수의 표준 인증서를 관리할 수 있다. 게다가 인증서 그 자체는 완전 솔루션이 아니다. 인증서가 절취될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심정적 안도감만 있을 뿐이다. 마음(패스워드)과 사물(인증서)의 두 종류를 검사한다는 안도감뿐이다. 일본의 은행처럼 다단계의 패스워드 질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여 마음을 여러 번 검사하고, 그 중 한 단계는 키보드가 아닌 화면과의 인터랙션으로 다른 각도에서 검사한다면 충분한 일이다.

대안②: OTP(One time password) 및 HSM(Hardware Security Module), 그리고 생체 인식 등 신기술의 적용
공인인증체제는 그 자체가 궁극의 보안 솔루션이 전혀 아님이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파악되어 있으나, 현재의 법제 및 감독 규정은 이 체제에 밀결합되어 있다. 새로운 신기술 중 특히 OTP는 최소한의 구조개혁만으로 적용이 가능하고 이미 도입이 시작된 곳도 있다. 즉 다단계/다각도의 상호작용으로 마음을 검사하는 것이 공인인증서라는 사물보다 훨씬 더 인증에 효과적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용자 인증 절차는 공인인증에 의한 인증 과정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그래도 만약 사물이 필요하다면 HSM이나 생체와 같은 제대로 된 사물의 인증을 고려해야 한다. 사물이라 믿었던 공인인증서는 결국 무한 복제가 가능한 정보일 뿐이다. 우리는 공인인증서가 안전한 인증수단이라는 공동최면 상태였을 뿐이다.

구조개혁 2: 독자적 암호화 통신 알고리즘 이외에 SSL 3.0 적용 허용
현재 한국 웹의 암호화 통신 알고리즘은 플러그인에 의한 SEED가 사실상 강제된 채, SSL/HTTPS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전자가 후자보다 뛰어나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 가정에도 불구, 우리는 여기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전형적인 "Reinventing the wheel"의 오류다. 공개키 기반 암호화 통신은 국제 표준화된 SSL로 충분하다.

글로벌 환경에서 기술 인프라스트럭처의 독자적 폐쇄계를 구성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웹과 같은 평평한 세계에서는 세계적 기술을 만들던가 세계적 기술을 채택하던가 양자택일뿐이다. SEED가 뛰어난 아키텍처였다면 빠른 시기에 국제표준화와 벤더로의 로비로 브라우저에 탑재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완전히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소외된 자폐적 업계만 남았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은 2차 대전에서의 독일과 일본 정도였다. 우리는 이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기술입국 마인드셋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대안: 서비스 업자가 어떠한 기술을 쓰든(즉 SEED를 쓰지 않더라도) 그 것이 가이드라인을 만족시키면 개입하지 않는다.
어떤 금융 기관이 이미 서버에 탑재된 베리사인의 인증키를 써서 128bit SSL 통신을 하겠다고 한다면 금융감독원을 포함한 어떠한 감독기관도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 서비스 업자는 시장 논리에 따라 최대 다수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대부분의 브라우저가 지원하는 SSL 3.0 기반 HTTPS 암호화 통신을 매우 저렴하게 구축할 것이다. 그 결과 XP도 비스타도 리눅스도 맥도, IE도 파이어폭스도 사파리도 오페라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늘 사용하는 골동품 모바일 단말 윈도우 CE.NET에서도 온라인 뱅킹과 관공서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구조개혁 3: 공인인증서에 의한 서증(書證)의 적용 범주 재정의
현재의 공인인증서는 공개키 기반의 암호화 전자거래에 있어서 ‘서명’을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PKI의 혜택 중의 하나는 바로 '디지털 서명'과 이를 토대로 '부인 방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적극적으로 웹으로 가져왔다. 거래에 디지털 인감을 찍어줌으로써 거래가 없었다 부인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거나 후일 거래 증빙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공인인증서 자체가 절취될 수 있는 가정이 있기에, 대면하지 않은 거래에 있어 본인이 거래를 했다 추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성립 여부다. 인증서라는 절취 가능한 정보 만으로 본인 확인을 의존한다는 전제에서는 의미가 없다. 공인인증서가 복제되어 쓰이게 되면 정말 본인이 하지 않은 거래일 터 이 것이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철저히 본인을 확인하고, 이를 로깅하는 것이 더 실효성이 높다. '디지털 포렌직(Digital forensic)'을 발전시켜야 한다. 남의 사인은 베끼기 어렵지만 남의 도장은 남보다 더 잘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디지털 인감이 부인 방지(Non-repudiation)에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널리 이야기되는 사실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전자서명법의 태동기에도 심각하게 의문시된 채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이를 공인 문서화 하여 진정성립을 자동적으로 추정시키는 것은 개인에게 더없이 불리하다. 이 점이 또 하나의 문제다.

서증의 효력이 있다고 한다면 이처럼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현실 생활에서는 인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아닌, 온라인 쇼핑이나 은행 업무와 같이 인감과 무관한 거래에도 자신의 전자 인감을 남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무의미한 정보 제공이다. 이는 리스크에 대한 체제의 책임 회피이고 여기에서 소외되는 것은 개인뿐이다. 쇼핑시 30만원 이상에 공인인증서를 제출하라는 등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요건은, 만의 하나 벌어질 리스크에 체제가 면피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면피의 시스템'을, 요즈음 분위기라면 윈도우, 리눅스, 애플,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모든 운영 체제와 디바이스용으로 만들어야 할 판국이다. 민간 개인에게 있어 보안의 의미는 '나만 나의 거래를 안전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거래를 했다는 공문서를 제출할'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그들이 나와 거래를 했다는 영수증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웹서비스의 WS-*와 같은 자동적 전자문서 교환에 있어서의 서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 현재의 체제는 답이 없다.

대안: 현실에서 인감이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상황은 온라인 상에서도 공인인증서에 의한 전자서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형식적 증거로서 서증이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 사안은 전자서명법 만이 아닌 민사소송법의 견지에서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더욱 기술 중립적으로 PKI 방식이 아닌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예를 들자면 도장 날인은 효력이 있으나 자필 서명은 효력이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블릿 서명이나, 생체인식에 의한 서명 등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미국 국세청의 세금 신고에 서는 본인의 서명을 겨우 다섯 자리의 자기가 설정한 암호를 누르는 것으로 갈음한다. 겨우 다섯 자리다. 자신이 설정한 다섯 자리의 암호를 스스로 입력하면 그 것이 서명이다. 공인인증서가 서증의 역할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합리적인 반증이다.

구조개혁 4: 프로그램의 선택과 설치라는 개인과 시장의 자유 재량과 권리를 보호
나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에게는 ‘웹’ 이상의 기능을 원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주의다. 그러나 동시에 원하지 않는 기능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고 보는 주의이기도 하다.

이상 1,2,3의 구조개혁이 성공하면 대부분의 플러그인은 사라질 일이겠지만 '키보드 보안 플러그인' 같은 경우는 주무부처가 달라 계속 강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무의미한 플러그인이다. 일본의 은행은 키보드 해킹이 두려우면 랜덤하게 변하는 화면상의 키패드를 누르도록 하는 단계를 한 번 더 둔다. 그런데 한국의 은행들은 플러그인이 행여 모자랄까 방화벽 플러그인까지 깔아 주려 하는데, 이는 친절이 아닌 명백한 월권이며 개인의 선택권 침해다. 많은 플러그인은 요긴하지만 그 것을 사용할지 여부는 철저하게 사용자와 서비스 사이의 판단이지, 이를 제도나 행정이 강요해서는 안될 일이다.

미래에서의 생존을 위한 구조개혁
도대체 이러한 무의미한 시스템을 위한 개발 비용은 어디서 나는 것일까? 설마 내 세금일까? 공적 자금일까? 폭력적인 플러그인과 존재의미가 모호한 공인인증체계의 유지를 위해 도대체 얼마만큼의 자금이 투하되어 온 것일까? 구조 개혁을 부르짖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직접 비용 때문이다. 또 공인인증서의 사용 강제에 따른 막대한 자금과 시간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시민들의 불편함에 대한 간접 비용도 무시 할 수 없다. 완전 무결 노 리스크의 진공 상태 사회란 만들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에 대응하는 조치를 일단 해 봄으로써 만족감을 얻으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코스트는 고려되고 있지 않다.

더 안타까운 것은 기회 비용이다. 선진 IT 강국들은 OS와 브라우저에 기본 탑재된 표준화된 기술만으로 안전한 거래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세계적 표준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한다. 반면 우리는 일단 ‘우물 안 개구리’식 기술이 적용되도록 감독기관의 감찰을 통과하고 이 회로에 속한 이들에게 대규모 발주를 해야 한다. 웹2.0적 '가치 교환 플랫폼'을 꿈꾸는 벤처가 도무지 생겨날 수가 없다. 별다른 추가적 제제나 감시 없이 전자 거래가 가능하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이들이 리스크를 침소봉대하여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 사고가 터져 제도의 근본적 신뢰성에 금이 갔음에도, 좀처럼 정정할 의도가 없다. 정부와 행정의 역할은 어디로 갔나?

지금과 같은 굳어 버린 성곽 속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발이 원천적으로 억제될 뿐만 아니라, 외적 변화에 적응할 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며, 그리고 파괴적 신기술의 유입이 차단되어 가늠할 수 없는 산업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각국 전자 거래법의 기본 원칙은 ‘국제적 기술 동향과 조화된 입법’을 늘 꿈꿔왔다. 왜냐하면 전자 거래의 범지구적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와 매우 흡사한 일본의 전자서명법도 우리 공인인증에 해당하는 '특정인증업무'의 입법이 있지만, 그 입법 경위는 외국과의 상호인증을 위한 것이기에 특정인증업무의 기준을 따르지 않더라도 법률효과는 존속된다. 그 덕에 인증서가 쓰이는 경우는 세금 신고 정도이고, 이 조차 시스템 도입 3년이 지난 지금 개인의 0.2%만 사용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전자서명법도 원래 그런 법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다양한 시행 세칙 및 관련 기관의 감독은 이를 굳어 버린 감시 감독 체제로 진화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업계는 어느새 놀랄 만큼 기형적인 웹 생태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의 웹은, 그 서비스의 면모는 독창적이고 기발하며 참신하다. 그렇지만 웹은 세계와의 소통이 전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국의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수 있고, 외국의 메일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표준을 이야기하고, 아니 웹 자체가 하나의 표준인 것이다. 이 공간이 거대한 소통의 플랫폼, '직접적 가치 교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 나가려는 시점에 있건만, 우리는 주민등록번호 없으면 가입 못하는 시스템을 만들더니 이제 공인인증서가 없으면 진행이 안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있다. 정말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믿는다면 이를 세계적 규모의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말 관공서에서 전자 서명의 서증이 필요하다면 유럽의 WASP (Web Activated Signature Protocol)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표준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프로슈머, 소액결제, 지역통화 등등 우리는 지금까지 현실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가치 교환의 욕구와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이상계 위에서 그리고 환상계 속에서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려 노력하고, 또 그 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는 법과 감독의 규율에 갇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변화의 시대. 새로운 플랫폼을 쓰지 말라고 권하는 게 나을까, 그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나을까? 후자가 답이라면 단기적인 해법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을 단행할 때다.

출처 :  김국현(IT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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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핸드폰 디자인

Design/Mobile 2007. 3. 10. 12:55
일본에서 올해 발매 되었거나 발매 예정인
2007 New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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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9.9 mm의 Straight&Super Slim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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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딱 맞는 방수·슬림 TM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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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스마트하게 심화.  
FLAT&SQUARE 핸드폰 아트 디렉터/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토카시와상과의 합작 제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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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11.4 mm의 My SignalTM×Slim&Sporty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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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기능을 고집한 Happy*데코메일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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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11.4 mm의 고급감을 자아내는, Super Slim 스텐레스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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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메탈릭 디자인이 아름다운 고기능 슬림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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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도 디자인도 갈아입히는 아로마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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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스타일. IPS 액정 탑재로 아름다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스타일리쉬 DMB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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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치 와이드 VGA IPS 액정 탑재.  
PC사이트 풀 표시나 EZ네비워크「EZ네비워크」를 마음껏 잘 다루는  
"클리어&와이드뷰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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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인치 대화면과 박력있는 고음질 DMB & LISMO(뮤직서비스)를  
프런트 미디어 키로 조종한다.  
얇은 20mm "슬림 DMB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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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매료 시키는 여성스러움.  
원푸쉬오픈 기능 탑재의 "지갑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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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MO」비디오 클립&EZ뉴스 플래시 기능  
고음질·고화질을 고집한 날씬한 "지갑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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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 IPS 액정 탑재. 1GB에 영상이나 음악을 충분히 보존.  
스마트하고 사용하기 쉬운 "슬라이드 DMB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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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DMB 출력 기능 탑재. 디지털 라디오도 즐길 수 있다.  
고화질 3.0 인치 와이드 액정 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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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놀림이 가벼운 기능 첨부 3메가 AF카메라  
& 대용량 100MB 메모리 탑재 디지털 라디오 기능도 있는  
"콤팩트 DMB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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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치 와이드 VGA 액정과 1GB 메모리 탑재.  
Bluetooth 기능으로 즐길 수 있는 디지털 라디오  
"진보적인 DMB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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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촉감과 아름다운 영상을 휘감은 감성 핸드폰  


출처 : lunebleu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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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환생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2:02

나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돋아난 지, 인간 세계에서 말하는 날짜로 세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도정에 있어서 자신의 궤도를 찾는 것이 대단한 외부의 충격이나 논리적인 근거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파리들은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행동을 하는 파리를 보아왔지만 나와 같은 생각에 하루종일 천장에 붙어서 사색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특별한 파리임을 알게 되었고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 진로에 대한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주변환경이 너무나도 삭막하고 허전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것을 인식했을 무렵, 인간 세계에서 추구하는 보편적인 지식과, 그 지식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모든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삶의 원천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성대는 참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의 인체구조와 파리 몸의 특성이 너무나 도 달랐기에, 인간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삶의 한 체념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은 개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사색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형상들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내 행동은 인간들의 감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부수적으로 생산해 내는 유기물을 섭취해야만, 목숨을 지탱할 수가 있다. 이런 비굴한 삶 속에서 인간들과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앎에 대한 도전과 그 도전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아침 7시에 현관문을 열고 밖의 세상에 첫 오른발을 사용했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정체된 공간을 탈퇴하여 미지의 세계인 집 밖의 경험을 향하여 첫 날갯짓을 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었다.


밖의 세상은 집주인의 어깨너머로 보아온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공기는 혼탁했고 기류는 불규칙적이어서 정상적인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고난을 극복하고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공간'이라는 간판 위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고 정체된 공간에서 나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닫힌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도 광대한 불량의 책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제목들만 읽어도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지식의 세계였다.


서점 안을 배회하다가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였다. 제목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여운에 휘말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뽑아 읽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때였다. 한 마리의 파리가 창공을 비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푸리르푸리프프르리?"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푸레히프라프리히르프히리프리리푸르리, 푸리히프르리히히리르르."


("내 주변에 있던 파리들은 모두 집주인의 손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래 서 집을 나왔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곳에 정착했다.")


"푸리히르피리니리히?"


("이곳에 먹을 것은 많은가?")


"푸히리디리니히리르리히느피리, 푸리히르히르피니느리히."


("이곳에 먹을 것이라고는 인간의 피부에서 나오는 찜찜한 액체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파리는 떠난다는 말을 하고는 허공으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이 파리는 끝내 출입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굶어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심코 휘두르는 손에 의해서 죽 을 것이 분명했다. 이 파리는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몽매했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파리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책으로 향했지만 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인간의 손에 책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책은 분명 내가 마음에 두던 책이었다. 나는 급히 날아올라서 그 인간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책을 든 인간은 지식의 공간에서 나왔다. 그러고 어떤 기계에 실려서 어디론가 향했다. 나의 판단으로는 내가 살았던 곳처럼 그런 작은 공간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을 때,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 의 방으로 들어와 가져온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하루 동안 사용한 허물을 벗 고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리라는 생명체는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이곳에 있던 파리들은 이 사람의 손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나의 생존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탈출할 곳을 찾아 헤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말이다. 그러나, 탈출할 공간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다시 날아올라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꼭대기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부터 바닥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날아올랐다.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아래로 향했다. 나의 눈에 보인 것은 힘없이 죽어 가는 한 마리의 파리였다.-파리에게는 이름이라는 것이 없다. 인간들처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족들끼리 서로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파리는 무엇인가를 먹었고, 그 이후로 날수 가 없었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나의 날개는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다. 다행이 평평한 면에 착륙할 수 있었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인간이 우리를 본 것이다. 나는 다시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날개에 힘은 없었지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공간을 탈출한 곳만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날갯짓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날개의 힘이 빠지는 것이 역력했다. 더 이상 날갯짓을 할 수 가 없을 때였다. 인간은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열려진 창문으로 남아 있는 힘을 다하여 공포의 적막 속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다행이었다. 아니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가 문제였다. 그 동안 추구하던 앎의 즐거움도 이제는 생존의 위험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예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안고있는 파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도시를 배회하다가 죽어 가는 파리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 고 했다. 나는 겨우겨우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으로 가자는 소리였다. 죽어 가는 파리의 안내를 들으면서 나는 어딘 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파리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의 주위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의 파리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생존에만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몸에 의지했던 파리는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한 파리가 날아와 내 품에서 죽은 파리를 들고 날아가 양명한 곳에다 떨구었다. 이것은 인간들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것과 같은 의식이었다. 그 곳에 모인 파리들은 슬퍼하지도 자신의 종족을 죽게 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서 먹이를 얻는 비굴함 속에서도 파리들은 인간들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 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파리라는 곤충이 인간들처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인간들처럼 힘없는 생명을 하찮게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에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인간들에게 대응할 수 없는 힘없는 한 마리의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삶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렇게 파리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낙상하려고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 나의 생존에 중요한 날개를 펴지 않고 그대로 도시의 저 밑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떨어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바람에 흩날려 잔디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익사하려고 호수에 나를 맡겼다. 하지만 그 행위 또한 나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고 물위에서 두둥실 떠다니기만 했다. 나의 죽음은 조물주가 원하지 않는 것일까, 끝내 자살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파리에게는 날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먹기 위해 날아야 하며 살기 위해 인간들을 피해 날아야 했다. 파리에게 날개란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방패였던 것이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지저분한 곳에서 생활하는 파리보다도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인간들은 파리의 날개와 같은 돈이라는 물질을 소유하려고 바동거렸다. 하지만 파리에게 날개가 삶의 방패였고 인간이 사용하는 돈이라는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삶의 무기였다. 인간들은 돈 때문에 동족을 죽였고 죽은 인간을 밟고 올라가 자신만을 높이려고 했다. 그 동안 인간들에게 가졌던 존경의 마음은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빛이 사라질 무렵, 내가 인간들의 비참한 세상을 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가슴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집주인은 아직 살고 있을까. 혹시라도 바뀌었다면 어떤 인간일까. 이러한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집주인이 아침 7시면 현관문을 열고 첫 오른발을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나는 아침이 될 때까지 현관문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나의 상상력은 그 특유의 활동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다.


"신문이오.."


어떤 인간이 이상한 기계를 타고 가면서 무엇인가를 던졌다. 이때 현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주인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빠르게 날개 짓을 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주인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좀 전에 던져진 신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은 예전의 모습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세상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이다.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집주인이 먹다가 흘린 밥풀에 앉아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집주인은 두꺼운 책을 들더니 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의 몸은 산산이 부서졌고, 내 존재 또한 그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날아올랐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무슨 곤 충 같아 보였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그 물체를 볼 때 억울하고 분한 느낌이 들었고, 나의 몸은 이상하게 뻐근했다.


나가 혼란스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그것을 보았을 때, 내 생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참한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존재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


"이보게 그만 가지...."


어디선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파리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나는 분명 듣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흰색의 반 투명한 빛뿐이었다.


"그래 나야.."


다시 한번 그 알 수 없는 빛에서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당신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이곳에 왔으니 어서 나를 따라오게나.."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물어 보려 했지만 그 빛은 어디 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이곳은 내가 보았던 밖의 세상이 아니었다. 주위는 모두 흰 구름뿐이었다. 그 알 수 없는 빛은 이제 더 이상 빛이 아닌 검고 투명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검붉은 빛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얼마쯤 갔을 때, 빛이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


"이제 다 왔다네, 어서 들어가 보게나."


그 검은빛이 말을 끝냈을 때, 보이지 않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러고 눈을 뜰 수 없는 빛이 나의 전신을 태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검은빛에게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 빛은 사라져 버리고 자리에 없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마리 파리가 보였다. 예전에 내 품안에서 죽어간 파리였다. 그 파리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어서 오세요, 당신을 이곳에서 또 만나게 되는군요."


나는 죽은 줄만 알았던 파리를 이곳에서 보니 반가웠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지만 질문이 바보 같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죽었고, 당신도 죽은 몸입니다, 전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그럼 좀 전에 보았던 그 물체가 나의 시체가 확실하다는 말인가? 나는 한순간 많은 의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 파리는 아무 말도 없이 이런 나를 일으켰다. 그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는 또 하나의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대기실입니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곤충들은 환생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먼저 당신은 할 일이 있습니다. 저 노란 문으로 들어가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하며 나의 등을 또닥거렸다. 들어가라는 눈짓 이였다. 힘없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노란 문으로 들어갔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실루엣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죽었습니까?"


난 억울한 나머지 죽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실루엣은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당신만 죽은 게 아니니 빨리 말하시오,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보이지 않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곤충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 신을 가다듬어 그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라색 문으로 들어가시오! 다음.."


그는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는 뒤의 있던 모기를 불렀다. 그러고 그 동안 나에게 했던 질문 을 반복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날아올라 보라색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문은 닫히고 공간의 사방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는 큰 고통을 느꼈다.


내가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죽어 있는 사람 주위에 많은 수사관들이 무엇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시체는 어디론가 옮겨졌고 얼마지 않아 죽은 시체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가 있었다.


서울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 이모군은 컴퓨터 입력장치 중의 하나인 마우스 케이블로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시체는 의자에 앉은 채로 죽었으며 컴퓨터 모니터에는 유언으로 보이는 짤막한 글귀가 있었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 시체의 해부를 의뢰한 결과, 케이블 선이 목울대를 파고 들어가 거의 목은 잘려진 상태였고 사실상 죽은 시각은 2001년 2월 26일 오전 3시 30분이라고 발표했다.


어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친 박현우 기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메모를 하던 박 기자는 "사실상"이라는 말에 의문을 갖고 물었다.


"사실상 죽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국립 과학수사 본부 대변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자정에 죽었으나 두뇌의 활동은 그로부터 3시간 30분이 지난 후 에야 정지했습니다. 그래서 본 수사본부에서는 이 시체의 죽은 시각을 뇌의 활동이 정지된 오전 3시 30분으로 발표하는 바입니다."


박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두뇌와 몸이 따로 죽었다는 말입니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수사본부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잠깐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한 번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사실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장이 정지하여 모든 혈관이 수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산소와 피가 뇌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뇌의 활동도 거의 몸과 같은 시각에 정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현재의 의학기술로 밝히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이 시체의 경우도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박 기자의 옆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두들기던 지현은 이렇게 물었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유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친필여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박 기자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단서라는 생각에 묻지 않고 있었다. 박 기자는 사건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얻지 못하고 취재하는 여자가 한심스러웠다. 수사본부 대변인은 심드렁히 답변을 했다.


"그 글은 친필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컴퓨터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유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현재로서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타살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사체가 있던 방에는 타인이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지문, 머리카락 하나 발견되지 않은 것이 타살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여기자의 엉뚱한 질문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며 박 기자는 물었다.


"그럼 이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살이군요?"


"그렇습니다."


"자살 동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고아로 자랐던 이 사람은 유난스럽게도 활달하고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한 순간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죠. 그래서 본 사건은 그 동안 쌓였던 자신의 삶에 대한 비관이 이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게 되었다고 추측됩니다."


바쁘게 메모지를 채워가던 박 기자는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여있는 많은 기자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이제 그에게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 기자는 자동 응답기를 틀었다. 집에 없는 동안 세 개의 음성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나는 그 동안 사귀던 여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자신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소홀히 했던 그녀였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현재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 뿐이었다. 두 번째 담겨진 음성은 신문사에서 박 기자에게 맡긴 기사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전화였다.


"어이..박 기자, 그 기사 빨리 마감해야겠어..내일까지 가능하지? 닭 대가리가 하도 성화를 해서 말이지..그럼 자네만 믿네!..."


닭 대가리는 기사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선배의 별명이었다. 박 기자는 다음 메시지를 틀었다. 어디서 들어본 여자 목소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 사이버 수사부에 근무하는 지현인데요..몇 가지 의논할 것이 있으니 오늘 저녁에 만났으면 합니다. 그럼 7시에 중앙극장 앞에서 기다리죠."


박기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방적인 약속이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할 일이라고는 몇 줄 안 되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으므로 나가기로 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박 기자는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여자일까 생각했다. 직업 때문이었는지 말투가 조금은 딱딱하게 들렸지만 어느 정도 들을 만 했던 터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박 기자는 시계를 보니 바늘이 7시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기자에게 나타난 여자는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던 그 여자였다.


"휴..제가 좀 늦었습니다. 자 가십시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끝까지 명령조인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기자회견에서 한심하게 바라본 그로서는 화가 났다. 박 기자는 기가 차서 이야기한다.


"이봐요!,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일단 어디나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자.."


지현은 박 기자의 소매를 잡아끌며 이야기한다. 박 기자는 어이없는 웃음으로 마지못해 따라갔다. 커피숍에 들어간 지현은 앉자마자 이야기한다.


"냄새 안나요?"


박기자는 일 때문에 며칠동안 씻지 않은 것이 찔렸지만 시치미 떼며 시큰둥히 되묻는다.


"무..무슨 냄새요?"


"오늘 자살사건 말이에요.."


박 기자는 속으로 안도했으나 이 여자가 또 엉뚱한 말을 할까 봐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요?. 그 사건은 이미 자살로 판명 되었잖습니까?"


지현은 손에 들고 있던 노란 봉투를 열고 무엇인가를 꺼낸다. 노란 봉투에서 지현이 꺼낸 것은 몇 가지 문서와 노끈이었다. 박 기자는 그것들을 보며 지현에게 묻는다.


"이것들이 다 뭐요?"


지현은 자신이 꺼낸 문서들을 뒤적이더니 한 장을 건네주며 박 기자의 눈을 응시한다. 한동안 읽던 박 기자는 기자회견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듯이 말한다.


"이건 사체의 부검 결과 아닙니까?"


지현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둔하시군"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건네준다. 그것은 박 기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키보드에 묻어난 지문의 감식 결과였다. 박 기자는 감식 결과가 사체의 것이라는 것을 보고 말한다.


"이건 사체의 지문이 묻은 키보드 아닙니까?"


박 기자의 눈을 주시하던 지현은 답답하다는 듯이 엉뚱한 질문을 한다.


"당신, 기자생활 얼마나 했어?"


"그건 왜 물어요? 5개월 됩니다. 왜요?"


"한심하긴.."


"뭐요?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집에 안 좋은 일 있나본데..난 당신하고 이렇게 한가하게 말장난 할 시간 없으니까 그만 가볼 랍니다."


박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다. 지현은 박 기자를 보지 않고 이야기한다.


"당신 특종 잡고싶은 마음이 없나 보네? 가볼 라면 가보슈..나도 멍청한 놈 앞에서 한가하게 떠들 시간 없으니까...."


박기자는 화가 날대로 났지만 지현의 '특종'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있는 터라 쉽게 되 앉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커피숍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왔다. 박 기자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 커피는 마시고 갈랍니다. 커피 둘 주세요.."


지현은 속보이는 박 기자의 행동이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박 기자는 노끈을 들어올리며 지현에게 묻는다.


"그건 또 뭐요? 아직도 기저귀 차요?..훗.."


박 기자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지현은 구접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이 친구야, 오늘은 아니니까 헛소리하지마. 그나 저나 특종 잡을 거야 말 거야?"


(얼씨구..이제 반말까지...)


그러나 박 기자는 특종을 잡고 싶었다. 그 동안 특종을 이리저리 선배들에게 빼앗긴 박 기자는 자신의 기자생활 위태롭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래 어디 드러나 봅시다."


지현은 노끈을 박 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었다면 마우스 케이블로 어떻게 목을 졸랐겠어요?"


박기자는 특종이라는 소리 때문에 수그러졌던 열이 또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특종이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지현을 잠시 본 박 기자는 노끈을 목에 걸고는 왼쪽의 내려진 끈을 오른손으로 잡고 오른 쪽의 끈은 왼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엑스자 모양으로 교차하고는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잘하는구먼."


박 기자의 행동을 본 지현의 말이었다. 박 기자는 하긴 했지만 자신의 모양새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기자는 잡고 있던 노끈을 내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이런 짓이 무슨 특종이 된다는 거요?"


지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그러고는 노끈을 들고 박 기자가 했던 것처럼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 당신이 좀 전에 이렇게 목을 졸랐죠?"


"음..잘 하네...훗."


박기자의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지현은 지지한 태도로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면 이런 식으로 자살을 했겠죠?"


"그렇겠지.."


박 기자는 시큰둥하게 말을 받는다. 지현은 좀 전의 문서를 보여주며 말한다.


"이 부검 결과를 자세히 보면 양쪽의 케이블 선이 앞쪽에서 교차된 것이 아니라 목 뒤쪽에서 교차됐습니다. 자 보세요.."


박기자는 부검 결과를 보며 과연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다. 종업원은 어느덧 다가와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박 기자는 자신의 견해와 전혀 상반된 자료를 보면서 지현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 사건을 타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박기자는 어느덧 진지한 모습이었다.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이걸 보세요.."


박기자는 흥분된 눈빛으로 문서를 보고. 지현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박 기자에게 설명을 한다.


"이건 죽은 대학생이 쓰던 컴퓨터 키보드에 묻은 지문의 감식 결괍니다."


박기자는 자료를 보고 이야기한다.


"결과가 사체의 지문이지 않습니까?..그렇다면 가해자의 협박으로 쳤다는 말인가요? 그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살인자가 자신의 지문을 키보드에 남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지문을 모두 지우는 것 또한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살인자는 사체의 지문을 키보드에 찍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한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


박기자는 궁금한 듯 지현을 바라본다.


"살인자는 키보드의 배열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까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길 보세요.."


지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 키보드를 보면 손가락의 위치가 전혀 맞지 않아요. 'ㅅ' 위친 데도 가운뎃손가락의 지문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도 그렇구요, 더욱 이상한 것은 오른쪽 손의 가운뎃손가락만 사용했다는 것이죠.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 키보드와 손가락의 위치를 모를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 손으로 치다니요..."


"...."


박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목이 잘릴 정도로 자신의 목을 조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살인자는 한 명이 아닌 둘 이상이었던 거죠."


박 기자는 지현의 말을 들을수록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사실일 때는 정말 특종 중에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박 기자는 서로 알지도 못했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여 지현에게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왜 저에게 하는 거죠?"


지현은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요즘 기자들도 검찰이나 정치인들 못지 않게 썩어있기 때문이죠. 모두 진실이 왜곡된 거짓으로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박 기자는 아직 그런 물이 들 정도는 아니라 생각되어서 입니다."


박기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동안 기자생활이 자신의 천직이고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기자부에서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러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박 기자는 지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속삭이듯이 묻는다.


"이 사실, 당신과 저만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지현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누가 또 알고 있나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입니다."


지현의 대답은 의외였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서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 왜곡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에게 묻는다.


"이 자료들은 언제 얻었습니까?"


"기자회견을 하기 이틀 전에 구했습니다."


"그럼 왜 기자회견 때 그런 질문을 했죠?. 친필여부를 확인했냐는 질문 말입니다."


지현은 박 기자에게 말한다.


"당신 같으면 무방비상태로 범죄자 앞에서 '나는 당신을 체포할 것이요'하고 말 하겠나?..하하하.."


지 현은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호탕하게 웃는다. 박 기자는 이제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사건은 자살이었고 이런 결과는 국립과학수사 본부에서 내려진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을 멀거니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오?"


지현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사건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자료는 많았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완벽한 그물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지현은 흐르는 침묵을 깨기 위해 억지로 입을 연다.


"앞으로 해야죠.."


그러나 과연 해야 할 일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박 기자는 그 동안 지현의 논리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대답만큼 자신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박 기자도 어느 정도 지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특종인 것은 사실이나 그물에 걸릴 고기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자칫 하다가는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그물이 오히려 주인의 목을 조를 판이었기 때문이다.


지현은 일어서며 박 기자에게 이야기한다.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당신 연락처를 아니까 제가 필요할 때 연락을 드리죠...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지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횡 하니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박 기자는 한동안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박기자는 다음날 선배의 독촉으로 마지못해 자살에 대한 기사를 써야만 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도록 지현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라 박 기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 기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포 하나가 도착해 있는 것을 보았다. 발송인은 기재되지 않았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을 때, 박 기자는 이 것이 지현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현이 보낸 자료에는 박 기자가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선양이라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기업이 채권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채권에 비리가 있었고, 이군이 선양기업의 서버를 해킹하여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눈치를 챈 선양기업의 고위급 간부들은 과거 중앙 정보부의 정보원 출신들을 고용하여 이 군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도 선양기업을 동조했다는 것이다. 박 기자는 이 엄청난 사실을 누구에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그 동안 지현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박기자는 지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여 동료 기자를 통해 알아보았다. 지현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현이 죽은 날은 박 기자에게 소포가 전달 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기자는 집으로 돌아와 지현에게서 왔던 소포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그 자료 중에 이 군이 죽어 있는 사진 속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


박기자는 이 책이 궁금하여 가까운 서점에 들려서 알아보았지만 시중에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었다. 박 기자는 책의 출판사를 방문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책의 초판을 발행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74년 6월로 기록되어 있었다. 박 기자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출판된 책이 왜 낯익었는지 의아해 하며 집으로 향했다.


박기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문이 열려 있었고, 누가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방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박 기자는 급히 지현으로부터 받은 소포를 찾아보았지만 자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5명의 괴한이 나타나 박 기자의 몸을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찔렀다.


또 다시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 당신은 파리에서 인간으로 환생을 하였지만 저승의 실수로 27년이 지나 당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왔고 죽은 시체의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승에서는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려 합니다."


나는 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주 오래 된 기억을 재생하듯, 나의 전생, 그리고 환생했을 때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선택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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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환생"은 고등학교 시절에 문과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초기 작품 아닌 작품을 썼던 글이다. 그 이후 여러 번 퇴고를 하고 내용을 변경했었는데 앞 부분의 파리 내용은 초기 파리의 환생의 내용이고 뒤에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김진명 작가가 썼던 "코리아닷컴"이 출판하기 전에 네띠앙에서 주관했던 이벤트( 소설의 앞 부분만을 공개하고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을 창작하는 이벤트)에 우연한 기회로 응모하여 최우수상으로 노트북을 상품으로 받았던 내용이다. 지금 보면 이런 글로 최우수상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이벤트를 통해 그렇게 큰 상품을 받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글을 이상하게 짬뽕 시켜 놓은 글이다. 예전 사이트에서 보이길래 이 글도 블로그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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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1:26

1998년 6월 어느날이었다. 생활의 모든 것을 이곳 사회에 두고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하기위해 내가 군 입대를 한지 2개월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곳, 바로 정동진 근처로 나는 자대 배치를 받았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바다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는 설레임과 군대라는 곳의 생리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 혼자가 아닌 동기 한 명과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가게 될 동기가 그 친구라는 것을 알고 다른 동기들이 어깨를 치며 '참 너 힘들겠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와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기였고 우리는 자대 배치를 받고 고참들의 기 꺾기 작전에 힘없이 당하면서도 그래도 동기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동기가 훈련소에서 발에 봉화직염(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작은 상처에 균이 들어가 살이 썩어 고름이 고이는 병)에 걸려 육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다.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나보다는 눈치가 없어 고참들에게 갖은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에 뒤 돌아서면 나에게 웃음을 보이는 동기였는데 이제 나 혼자 남아 막내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자대 배치 받은 곳은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동진 조금 위에(산 하나 넘으면) 심곡항과 금진항 사이에 있었다. 소초가 산 꼭대기에 있어서 새벽에 근무를 나가기 위해서는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나는 자대 배치를 받고 대기기간(자대 배치를 받고 일,이주간은 대기기간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청소 하는 법부터 배우는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부 소대장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익혔다. 프로태권도 한국 챔피언이었던 나보다 한 살 위인 부 소대장은 떡 벌어진 멋진 몸과 어울리게 터프하다 못해 싸이코 같은 행동을 많이 했었다. 나는 아침마다 부소대장을 따라 산을 뛰어 내려가 해안도로(심곡과 금진항을 잇는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에서 혼자 구보를 해야 했다. 1.5Km나 되는 거리를 부 소대장은 몇분 내에 돌아오라고도 하고 입에 바닷물을 물게 하고 뛰게 했다. 너무 힘이 차서 구토도 했지만 부 소대장은 그런 것은 아랑곳 없이 해안도로 난간에 매달아 놓고 윗몸 일으키기를 시키기도 하며 소초까지, 한 계단의 높이가 60cm도 넘는 계단이 150개가 넘는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게 했다. 이렇게 나는 혼자 대기기간이 풀릴 때 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나는 첫 근무를 나가게 된 날이었다. 이등병은 어디를 가나 항상 뛰어 다녀야 했다. 저녁은 먹고 나는 청소하기 위해 고참이 대걸레를 빨아 오라는 말에 대걸레를 잡고 빨아오는 도중에 비가와 미끄러운 땅에 넘어졌다가 일어나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런 나를 보고 고참은 걸레를 집어 던지며 걸레를 만들어 오냐며 가지가지 욕을 해댔다. 그때 청소 준비를 끝냈을 때, 부 소대장은 사병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오늘부터 막내 혼자 취사장 청소를 한다."

 

근 무를 나가기 전에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넓은 취사장 청소를 끝내고 나는 근무준비를 위해 사수의 복장과 화기, 근무 시간대를 외워 사수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날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청소를 끝내고 근무투입을 하기 전까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나는 청소하느라 첫 근무부터 사수의 복장과 화기, 브리핑까지 망쳐버렸다. 아직 다 외우지 못한 고참들의 이름과 근무가 돌아가는 방법에도 익숙치 않아 시간은 어느 정도 외웠는데 뒷 근무자와 앞 근무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근무지에 나가서 사수에게 근무지 이동 때마다 맞기만 했다. 세 곳의 근무지까지 이동하면서 수십 차례 맞아가며 이동을 했야했는데 좋지도 않은 길을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수는 m6공 사수였는데 화기 무게만 해도 10.195kg이나 되었고 200발 탄이 들은 탄 박스는 7kg이 넘는 무게였다. 거기다가 각종 야시경과 통신수단에 이용되는 장비들을 짊어지고 이동을 했다. 사수는 달랑 내 화기(k2)만을 어깨에 걸치고 이동했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했는데 후...속으로 욕을 한 만큼 근무지에서 맞은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첫 근무를 끝내고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소초로 돌아왔다. 그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내 화기를 들고 올라가는 수사는 어찌나 빠르게 오르던지 사수와 1미터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빨리 올라오라고 멱살을 잡고 하이바(방탄모)로 머리통을 내리치기 일수였다.

 

근 무가 끝났다고 부 사수들의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수들의 화기를 시금 장치(총을 누가 빼가지 못하게 잠가두는것)을 해야 했고 고참들의 복장과 잘 준비까지 모든 것을 끝내고 부 사수들은 복장을 풀고 씻어야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사수의 짜증스러운 말 한 마디에 다른 고참들에게 화장실에서 맞으며 두고 보겠다는 고참을 위협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나와 기상 시간이 5시 30분이라 20분도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라도 조금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잘 자리를 찾았는데 보이는 않았다. 나는 조금 틈이 있는 곳에 칼잠 자세로 쪼그리고 누웠는데 옆에 있던 고참은 발로 차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누우려 했지만 그곳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10여분 동안 잘 곳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모포(군에서 쓰는 얇은 이불)을 들고 화장실 병기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 눈에서 소리없이 서러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나 기상시간을 알리는 바로 윗 고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는 혼자 취사장 청소를 했다. 우리는 새벽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취사장 청소 때문에 다른 고참들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부 소대장이 나를 깨우더니 잠시 나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는 사병들과 간부들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고참들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고참들이 볼 까봐 몰래 부 소대장의 따라 나섰다. 부 소대장은 나를 취사장 쪽으로 데려가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어떠냐..많이 힘들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 여기 있는 고참들도 다 이런 시기를 겪고 짠밥을 먹은 거니까 너 혼자만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내가 힘들게 아침마다 다들 하지 않는 구보를 시키고 혼자 청소하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니까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뭐가 너를 위해서 였나 하는 것은 나중에 네가 짠밥을 먹으면 알게 될 거니까 그때 되서 생각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부 소대장은 취사장을 나가며 빨리 먹고 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초코파이의 꿀맛을 알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부 소대장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게 되었고 좀처럼 내 밑으로는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나와 동기였던 그 친구가 후송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 친구가 후송을 간지 2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 친구는 돌아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근무하는 방법은 커녕 고참들의 이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고참들 몰래 동기에게 고참들의 이름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몰래 말을 걸며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군대가 작은 사회라고 하는 것처럼 동기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상 동기와 나는 고참들에게 비교 대상이 되었고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 대를 더 맞기 일수였다. 그래서 나는 한 쪽으로는 가르쳐주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이를 갈며 그 동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고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동기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매장되고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한대를 덜 맞고 얼차려를 덜 받는 것이 군 생활을 해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7월이었다. 100일 위로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근무 끝내고 오침을 하고 있는데 11시 경에 소대장의 소리침에 벌떡 일어났다. 그 동안 몸에 배인 반사 신경이었다.

 

"기상!, 전원 A형 투입."

 

(A 형 투입은 모든 소대 인원이 두명씩(사수, 부사수) 모든 초소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때는 이동은 없으며 한 곳에서만 근무를 선다. 이밖에 B형, C형 근무가 있으며 내려갈수록 적의 침투가 어려운 날씨와 상황이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단축되며 초소를 몇 곳 밖에 점령하지 않는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C형 근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침도 하지 못하고 A형 투입을 했던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사수를 확인하고 사수의 복장과 화기, 장비를 챙기고 근무투입 준비를 마치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초소투입 장소로 사수와 이동을 했다. 근무지에서 근무를 스며 소초에서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초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챙겨왔던 통신장비가 고장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령이 주는 통신장비와 교체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지 않고 들고 왔다면서 사수에게 맞으며 혼이 났다. 전령을 통해 전해들은 상황은 적 잠수함의 탐지와 북괴군 시체 한 구가 해안에 떠밀려 왔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도개가 발령되었고 그것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근무지에서 반합(군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밥을 먹으면서 그날 24시간 근무를 섰다. 그리고 몇 시간 잠을 자고 또 A형 투입...이렇게 일주일 가량 A형 투입은 계속 되었고 낮에는 인근 산으로 수색을 나갔다. 뜻밖의 상황으로 내 100일 위로 휴가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고 하루하루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일 위로휴가도 가지 못하고 근무를 하러 소초에 투입되었다. 전에 있었던 상황 때문에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A형에서 한 단계 내려간 B형 근무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B형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A형에 가까웠고 근무를 하는 우리들의 수면은 부족할 데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부 사수들은 사수가 잠을 자더라도 북괴군의 침입을 사전에 발견하기 위한 근무보다는 순찰자들의 접근이 있는지 없는지 동태를 살피는 일이 더 급급했기 때문에 아무리 졸리더라도 눈을 뜨고 사방을 감시해야 했기에 피로도는 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얄미운 잠은 내 눈꺼풀 위에서 죽어라 누르고 있었다.

 

상황은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초소와 초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 임시 초소를 만들어 놓고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날은 걸어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임시 소초에 근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를 만나려고 사수가 장비를 챙기라고 했다. 우리는 임시초소에서 근무자들과 만나서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시초소에서 근무하는 부 사수는 나보다 엄청난 짬밥이 있는 부 사수였기에 물어볼 것 없이 사수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그 부 사수 고참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막내인지라 말도 못하고 비가 오는 밖에서 사방을 감시하는 척(사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해댔다. 나이도 동감이고 어린 것들이 비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앉으라고 하면 어디가 뼈가 부러지나 하면서...) 그렇게 멀뚱멀뚱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에게 임시 소초에서 근무하던 사수가 와서 비라도 맞지 말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도록 부 사수에게 일렀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더 사양했다가는 분위기기 심상치 않을 듯 싶어 이내 못이기는 척하며 쭈그리고 앉아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임시초소에 근무하는 부 사수는 이등병 때부터 고참들에게 총명을 받아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반면 그 고참의 동기 한 명은 고참들에게 총명 받지 못해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 짬밥인데도 후임병 몰래 맞거나 크게 혼을 냈다.

 

그날은 비도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전방 5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이었다. 사수들은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우리 부 사수들은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임시초소 부사수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그 부사수 고참은 평소에 나에게 군 생활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잘 해주는 고참이었다.) 나는 사수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안도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눈도 크게 뜨면서 참고 또 참았다.

 

임시 초소가 계단을 올라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바로 밑에서 사람이 올라오더라도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밤에 플래시 불빛이 없으면 아무도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주위에 플래시 불빛이 보이는 지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부터 잠깐 플래시 불빛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사수에게 말 하려고 할 때였다, 그 때는 이미 중대장이 초소 바로 앞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우리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중대장은 크게 호통을 치며 사수 둘을 데리고 갔고 우리는 졸지에 사수 부사수가 되어 그 초소를 지켜야만 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어갔다. 우리들은 서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근무지에서 순찰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모두 부사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소초에 도착하면 그 많은 고참들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엄청난 불화가 있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합리화하며 장비를 챙기고 소초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 근처에서 비를 맞으면서 손들고 서 있는 두 군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 유심히 확인한 결과 그 들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사수들이었다. 나는 사수들의 눈총을 애써 피하면서 걸었지만 지나가는 내 뒷 통수까지 그 눈빛의 힘은 느껴졌다. 우리가 소초에 복귀했을 때 고참들은 사수들은 어디다 버리고 오냐고 물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짬밥이 되고 총망 받는 부 사수 고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최대한 방패막이는 해 놓았다. 얼마지 않아 벌을 섰던 사수들은 소초에 어두운 표정으로 복귀를 했다. 다행이도 다른 근무지에서도 중대장이 플래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면서 작정을 하고 순찰을 나갔을 거라며 부 사수들의 큰 잘못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고참에게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사수가 순찰자를 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혼이 나긴 했다.

 

이러한 사건은 중대장의 역량에 따라 영창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워낙 근무인원이 모자란 시점이었기 때문에 영창을 가지는 않고 한가지 벌칙이 내려졌다. 비가 와서 소초로 들어올 기름을 싫은 군용차가 길이 미끄러워서 산으로 오르지 못하자 행정관은 중대장의 지시라면서 두 드럼이나 되는 기름을 산 꼭대기에 있는 소초까지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말통(20리터가 들어가는 기름통, 참고로 한드럼에는 200리터가 들어간다)을 하나씩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한 통씩 기름을 받아 운반하기 시작했다. 높은 계단과 높은 곳에 위치한 소초가 그날 따라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군소리 없이 기름통을 옮기면서 온 몸에 기름 범벅이 되었고 그러한 작업은 3,4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모든 기름을 운반했을 때는 모두 녹초가 되었고 오침이 끝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나는 기름을 운반하여 힘든 것 보다 그날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나고 피곤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벌칙으로 끝이나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예전에 제대를 하고 얼마지 않아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썼던 글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이상한 집단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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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언어로 풀어본 사랑의 공식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0:49
헤어진 후의 감정 = 만남의 빈도 * 현재의 감정 * (결혼 - 현재의 감정)

X = r * x * (1 - x)

1은 결혼, 0은 이별.
예) r=2.7 , x= 0.02
2.7 * 0.02 * (1 - 0.02) = 0.0529
2.7 * 0.0529 * (1 - 0.0529) = 0.1353
2.7 * 0.1353 * (1 - 0.1353) = 0.3159

공식의 정의 : 감정이 좋아졌다가 지나치면 다시 좋지 않는 과정을 거친
후 평행상태에 도달한다.


* 지금 보면 그 당시 참 여러가지로 돌파구를 찾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어색하고 앞뒤가 맞긴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이런 것으로 놀고 있었다니....이궁...;


main()

{

float x=0,r=0;

int count=0;

printf("R=> ");scanf("%f",&r);

printf("\\n");

printf("X=> ");scanf("%f",&x);

while(1){

x=r*x*(1-x);/*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공식 */

printf(" [%d]Next===>%f\\n",++count,x);

delay(2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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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love...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0:43
윈도우 3.0으로 새로운 User Interface를 열어가기 전에는 operating system으로 주로 DOS를 사용했다. 윈도우에서도 실행창을 열어보면 DOS를 볼 수 있다. 그 때는 5.25인치 디스크 4장 가량되는 불량의 게임을 주로 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페르시아왕자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 글을 작성한 시기에 나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98년이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갈 시기이니 한참 윈도우로 넘어가던 시기인 듯 싶다. 예전에 만들었던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들려보니 아직도 남아 있어 이곳에 다시 옮겨 놓는다.









Volume in drive C is LOVE
Directory of C:\\LOVE
. 3-14-98 03:30
.. 3-14-98 03:30
LOVE EXE 1997 5-25-97 12:30p
3 File(s) 1997 bytes
1 bytes free


C:\\LOVE>del *.*
All files in directory will be deleted!
Are you sure(Y/N)? Y


C:\\LOVE>dir
Volume in drive C is LOVE
Directory of C:\\LOVE
. 3-14-98 03:30
.. 3-14-98 03:30
2 File(s) 0 bytes
1998 bytes free


C:\\LOV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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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 예찬론

Programming/Etc 2007. 3. 9. 00:48
action script를 코딩하다 보면 중간 중간 내가 작성하는 코드가 syntax error가 없는지 수시로 체크를 하게 되는데 그 단위는 코드 100줄을 넘지 못한다. 코딩을 하면서 중간에 딴 생각을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고 손가락의 강약 조절과 위치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손가락의 잘못도 있다.(결코 내 잘못 아니란다 쿠쿠)

대부분 syntax error로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나 가끔은 overflow의 문제로 한참을 헤매는 경우도 종종 있다. Overflow의 경우는 컴파일러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overflow가 발생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 과계로 중간 체크를 하지 않고 코드를 길게 늘리다 보면 쉽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overflow가 발생했다는(플래시는 255번 이상 스택이 쌓이면 overflow가 발생한다.) 것을 output 패널 창에 보여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컴파일러가 한참을 계산하고서야 문제를 알려줄 때면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뒷골이 땡긴다.

이런 문제는 반복문에서의 조건문이 무한하거나 undefined일 경우 흔히 발생하게 된다. 가끔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문제로 브라우저를 종료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외부에서 xml 데이터를 받아와서 처리해야하는 구문이 있다면 xml이 로드된 시점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을 간과한 듯 하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단위별로 체크를 해야 한다. 어느 언어나 기본적으로 특정 값을 확인 할 수 있도록 print 내장 메소드를 제공하는데 플래시도 trace라는 구문을 제공한다.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는 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논리적인 error를 잡아내는 데는 trace 하나면 충분하다. 중간 중간 확인을 하고 진행한 코드라고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시점과 문제가 발생한 시점을 파악하고 그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을 훑어봐도 어디가 문제인지를 모를 때는 최초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상위부터 단계별로 trace로 문제가 될만한 변수들을 확인하고 넘어가면 어느 시점에서는 문제의 변수를 잡아낼 수 있다.

가끔 프로그래밍에 발을 들여놓은 분들을 보면 이러한 확인 절차 없이 무턱대고 코드를 작성하고 한꺼번에 컴파일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문제가 없는 부분과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oop 개념의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의 독립된 class로 문제를 최대한 잘게 쪼개놓으면 문제가 된 class를 쉽게 알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플래시 액션스크립트도 2.0으로 넘어오면서 어느 정도 oop개념을 도입했지만 실무에서 완벽한 oop 프로그래밍을 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Oop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큰 프로젝트가 아닌 경우에는 사실 그러한 개발 노력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또한 실무에서는 oop반 막무가내 코드 반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고 개인적인 놀이나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 oop에 신경을 쓴다. 물론 개인적인 놀이에서 그러한 것을 하다 보면 실무의 실질적인 프로젝트에서도 기억을 되살려 사용하기도 하니 그러한 놀이를 통해서 점점 oop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엉뚱하게 흐르고 있다. 이쯤에서 trace 한번 찍어보자.

var 엉뚱한변수:String = “#@$#@$@#@$#”;
trace(“엉뚱하게 이야기가 흐른 변수 = ” + 엉뚱한변수);

액션 스크립트를 떠나 존재하는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print 구문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도 어셈블리어로 코딩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프로그래밍도 커뮤니케이션이다.

trace(“나 여깄어…너 거기있니”);
trace(“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구나”);

trace를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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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사이트 만들기 비법 100가지

Design/Etc 2007. 3. 8. 23:42
세계의 Top 10 뉴미디어 디자인 회사가 공개하는 “잘.나.가.는.” 사이트 만들기 비법 100가지


디지털 디자이너의 부차적인 취미 정도에 불과했던 웹 디자인은 지난 3-4년에 걸쳐 디자인 산업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웹 디자인은 이제 고유의 구조와 제작 과정, 윤리 기준을 가진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단순한 판촉 도구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단순한 브랜딩 전략의 한 부분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온라인 산업은 현재의 경제적인 동향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많은 웹 콘텐츠 제작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디자이너들 역시 마찬가지로 불안한 실정이다.

경쟁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고객의 경쟁력도 높여주려면 최대한으로 효율적인 사이트가 되도록 디자인해야만 한다. <컴퓨터아트>는 최고의 뉴미디어 디자인 대행사에서 내놓은 100가지의 웹 디자인 팁을 모아 이번 호 특집 기사로 실었다. 이 팁들은 레이아웃, 그래픽, 정보 디자인, 내비게이션, 애니메이션, 흡인력 있는 콘텐츠, 음악과 사운드 효과, 스트리밍 미디어, 3D화 하기, 그리고 난해한 백엔드(back-end: 사용자에게 직접 보여지는 화면 이외의 기술적인 부분)의 열 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주제들 중 자신 있는 한 분야에 대해 각각의 에이전시가 열 가지의 팁을 제공했다. 이 팁들은 모두 어떤 한 소프트웨어에 국한되지 않는 것들이며, 사이트 구축의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디자인과 제작 과정에 관한 것들이다. 현재의 상황에 적용할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한 참고 자료로 남겨두어도 좋을 것이다. 고객이 언제 스트리밍 미디어나 까다로운 백엔드를 요구할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팁은 여기에 모두 들어있다.

레이아웃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레이아웃은 웹사이트 디자인의 핵심이다. 레이아웃은 사용자의 지각 대상으로서 웹사이트의 외관과 느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트의 레이아웃을 정한다는 것은 스케치를 하거나 제작 도구에서 버튼이나 그래픽 등을 끌어다놓는 것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레이아웃은 기획과 팀워크,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창조적인 작업 과정인 것이다. 뉴 미디어 대행사인 레이저피시의 런던 지사에 근무하는 수석 디자이너 리차드 월렛(Richard Wallett)이 효율적인 사이트 레이아웃을 위해 다음 열 가지 팁을 내놓았다.

1. 요점을 명확히 정리한 간단한 문서를 만든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팀 전체와 고객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결과물과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정리한다. 이 문서는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안내서가 되며, 이를 토대로 프로젝트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고객의 요구사항이 변경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2. 제작 일정. 마감에 맞추어 일을 진행하고, 제작 기간을 고려하여 일정을 정하며, 일정을 지킨다. 모든 팀원들에게 각자 책임지고 있는 부분을 숙지시키고, 쉬운 용어들을 사용한다('계층적 결과물들을 구조화하다'가 무슨 뜻인지 도대체 누가 알 것인가?). 콘텐츠가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한다. 팀원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기한을 정한다. 좀 혹독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하다.

3. 프로젝트의 영감을 얻으려면 잠시 일을 멈추고 자신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에 관해 초점을 맞춘다. 어떤 단계에서든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고 그것들을 순서에 맞게 준비한다. 고객들은 총체적인 솔루션을 제공받는다는 느낌을 좋아한다.

4. 총 문자 수를 정하고, 특정 플랫폼에서의 최적의 화면 사이즈를 기반으로 망을 만든다. 그리고 테스트해 본다. JPEG 파일의 한계를 고려하고 다시 테스트한다. 웹 페이지의 넓이를 염두에 둔다. 드림위버나 고라이브를 사용해 기본형을 만든다. 기본형을 작성하면 콘텐츠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플래시나 퀵타임 등등의 다른 미디어를 넣을 작정이라면 가로 세로 비율을 고려한다(팁 6번을 볼 것).

5.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에 투자한다. 이 요소들은 감성을 자극한다. 정해진 레이아웃 안에서 다양하게 실험해 본다. 좋은 이미지는 그 안에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사용자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시공간의 느낌이 들어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뭔가 신선한 것을 시도해 본다. 지나치게 화려한 모음집 이미지(stock images: 한 장, 혹은 여러 장의 CD에 연관된 이미지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한번 구매하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의 사용은 자제하도록 한다

6. 템플리트를 만들면 시간도 절약될 뿐더러, 컨텐츠가 늦어지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고객이 제공할 원고나 필요 자료 등이 늦어지게 되면 프로젝트 일정이 묶여버린다. 이럴 경우를 각 포맷들과 그 비율들을(예를 들면 퀵타임 무비에는 16:9/4:3의 비율) 알아두어 대비한다. 가로 세로 비율은 망을 작성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팁 4번을 볼 것). 레이어의 사용도 좋은 대비책임을 염두에 둔다.

7. 컬러 팔레트. 216 컬러에만 집착하지 말 것. 한 색은 투명하고 다른 한 색은 불투명하게 사용해보자. 이것은 하프톤 스크린(halftone screens: 신문 등의 인쇄에 쓰이는 망점. 두 가지 색을 작은 점들로 인쇄해서 중간 색으로 보이게 한다)과 유사한 기능을 해서 반투명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투명도와 질감, 형태 등을 이용해 계층적으로 영역 구분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웹페이지를 인쇄해야 할 경우를 고려해서 겹쳐진 부분이 회색이 되지 않도록 한다.

8. 대화성(interactivity).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가게 될지를 생각해 본다. 세 가지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고려해보고, 기본형을 만들어 효율성을 체크한다. 고객이나 제작 팀 모두가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하며, 내비게이션 구조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9. 지금까지는 모두 너무 논리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이제 여기에 진짜 한가지를 더해야 한다. 바로 당신이 '최고'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당신을 당신의 경쟁자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 말이다.

10. 확장성. 솔루션은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솔루션을 항상 전체적인 하나의 패키지로 생각해야 한다. 인쇄물, 오디오, 스트리밍 미디어, 방송, 광고 등등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고객이 당신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픽
웹 그래픽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쓸만한 사이트를 방문한 사용자라면 훌륭한 그래픽과 매혹적인 환경을 원하겠지만, 한 페이지에 많은 그래픽을 넣을 수록 다운로드 시간은 길어지고,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참지 못하고 다른 사이트를 찾아가게 된다. 훌륭한 웹 디자인이란 그래픽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도 그것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는 것이다. 허브의 디자이너들이 제안하는 그래픽/이미지 압축에 관한 열 가지 지침을 소개한다.

1. 이 포맷이 적당한 포맷일까? JPEG 포맷은 사진이나 다양한 컬러나 톤의 이미지에 적당하다. 수백만의 색을 지원하며 GIF 포맷보다 훨씬 다양한 단계의 압축을 지원하고,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빨리 다운로드된다.
GIF 포맷은 넓은 면이 한가지 색, 혹은 제한된 몇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적합하다. GIF 포맷은 비손실 압축 알고리즘을 사용하므로, 경계선이 뚜렷하고 깨끗하게 나와야 하는 그림이나 글자의 경우 JPEG보다 효율적이다. GIF 포맷은 투명한 부분을 지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2. JPEG 포맷은 또렷한 이미지보다는 흐릿한 이미지를 잘 압축하므로, 이미지를 흐려 압축 한다. 대부분의 웹 디자인 도구에서는 단계적으로 흐리기 효과를 주는 기능이 있다. 미리보기와 파일 크기를 고려해가며 적절히 조절한다. 이렇게 하면 화질에는 큰 영향 없이 파일 사이즈를 줄일 수 있다.

3. GIF 파일 정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이 방향으로 요소들이 반복되면 좀더 많이 압축될 수 있다. 즉, 수직이나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우보다 수평으로 동색이나 무늬 등이 반복되는 경우에 압축률이 더욱 좋아진다는 말이다.

4. GIF 파일로 몇 가지 색이나 사용할 수 있을까? 세 가지 색 이미지를 256 컬러의 GIF로 저장한다면 파일 사이즈는 그만큼 커지게 된다. GIF 파일로 저장할 때는 이미지의 질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색만을 사용하도록 바꾸는 것이 좋다. 디더링(dithering)을 줄여본다. 디더링을 줄이면 그만큼 이미지 안에서 한가지 색으로 된 면이 늘어나게 되므로 압축률도 높아지고 파일 사이즈도 줄어든다.

5. 그래픽 프로그램의 최적화 기능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한다. 어도비의 이미지레디 3(포토샵 6와 함께 제공됨)에는 '차별적 옵티미제이션(Optimisation)' 기능이 있어서, 한 이미지 안에서도 부분마다 다르게 압축 수준을 지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화질은 최대로 보존하면서 파일 사이즈를 줄일 수 있게 된다.

6. PC에서는 Mac에서보다 이미지가 훨씬 어둡게 보인다. 매크로미디어의 파이어웍스는 다른 시스템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미리 볼 수 있다. Mac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보일지 알아보려면 View > Mac Gamma를 선택한다. Mac의 경우, PC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려면 View > Windows Gamma를 선택하면 된다. 양쪽 플랫폼에서 최적의 상태로 보여지도록 이미지의 레벨을 조절한다.

7. 간혹 아주 큰 이미지를 써야만 할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점차적으로 보여지는 GIF이나 JPEG을 사용해 사용자가 기다리는 시간을 좀더 짧게 느껴지도록 할 수 있다. 이 포맷들은 처음에는 저해상도의 이미지로 표시되고 점차 완전한 이미지로 변하므로, 사용자가 완전히 빈 페이지만 쳐다보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덜 지루해 하게 된다.

8. 큰 이미지나 이미지 맵을 사용하려면, 이미지를 작게 자르도록 한다. 전송되는 시간은 같지만 이미지 조각들이 각각 조금씩 전송된다.

9. 이미지 태그에 높이와 넓이를 써주도록 한다. 브라우저는 이를 인식해 이미지가 들어갈 정확한 자리를 남겨놓고, 문자를 배열한다. 즉 사용자는 이미지가 모두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컨텐츠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0. 캐쉬를 최대한 이용한다. 다른 페이지에서 쓰였던 그래픽 파일들을 그대로 재사용하면, 이미 사용자의 캐쉬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더 빨리 나오게 된다.


정보디자인
정 보 디자인은 부담스런 주제처럼 들리지만, 사실 상식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디자이너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은 디자인을 가지고는 사용자들에게 완전히 잘못된 내용을 주게 된다. 사용자의 관점을 고려하면서도 사이트 구조가 사용자에게 어떤 종류의 내용을 보내고자 하는지를 알아야 하겠는데... 정보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블랙 아이디에게 열 가지 팁을 부탁했다.

1.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사이트를 개발할 때 중요한 정보를 모호한 위치에 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규정이나 설명서 등은 디자인을 망친다는 이유로 종종 구석에 위치시키고는 한다. 절대 중요한 정보를 숨기지 말라.

2. 정보 디자인의 규칙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세 번 클릭으로 원하는 정보에 도달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규칙은 무시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수많은 화면을 거쳐가야만 한다면, 그 사용자는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3. 사용자가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버튼(calls to action)이 매 페이지마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용자는 페이지를 보고 나서 '그래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용자가 회원 등록을 하거나 물건을 사거나 사이트의 어떤 기능을 사용하도록 하려면, 가능한 모든 페이지에 그것을 홍보해야만 한다.

4. 내비게이션 요소들이 페이지 내에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사용자는 그것을 볼 수 없고 따라서 찾아가지도 않게 된다. 내비게이션 도구를 찾기 위해 스크롤하게 만드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5. 사이트의 디자인을 잘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용자가 페이지를 보고 난 후 이것이 무엇을 하려는 사이트이며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를 모른다면 그 웹사이트는 실패한 것이다. 단순하고도 정확하게 사용자가 해야 할(할 수 있는) 것들을 표시해 주어야 한다

6. 모호한 제목은 처음 방문하는 사용자에게 혼란만 준다. 내비게이션 제목에는 간단한 단어를 사용하고, 제목을 보고 어떤 페이지인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많은 사이트들이 방문객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장황한 양식으로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작성해야 하는 양식을 짧고 간단하게 하고, 사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제공할 만한 가치나 보상을 제공하도록 한다.

8. 사람들은 인터넷을 '읽지' 않는다.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프린트하게 마련이다. 긴 텍스트 대신 짧은 설명을 달고 사용자가 원할 때 기술적인 문서나 멋진 산문들을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도록 하면 좋다.

9. 사용자에게 신뢰감과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과 페이지 레이아웃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페이지가 바뀔 때마다 내비게이션이나 정보 디자인을 찾아 헤매는 것은 혼란스럽고 짜증나는 일이다.

10. 마지막 팁은 정보 디자인이기보다는 정보의 표시에 관한 것이다. 웹사이트에 엄청난 경비를 들이는 세계 최대의 기업 사이트에서부터 침실에서 만들어지는 동호회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이트들이 문법이나 철자 오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오류는 사이트 전체의 질을 떨어뜨린다.


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 구조를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우주선의 계기판 모양에서 동굴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비게이션 구조들이 있어왔다. 내비게이션을 잡는 것은 정보 디자인 과정과 매우 흡사할 수도 있지만, 내비게이션은 사용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은유(metaphor) 까지를 사용한다.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웹디자인 대행사인 딥엔드에게 내비게이션에 관해 물었다. 런던 딥엔드의 토니 필립스 (Tony Philips, 디자인 디렉터), 제인 오스틴 (Jane Austin, 인터랙션 디렉터), 빅토리아 잭 (Victoria Jack, 인터랙션 디자이너), 로렌스 톰슨 (Laurence Thompson, 디자이너)에게 감사를 전한다.

1. 방문객을 설정하라. 이 사이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용자의 유형을 정의함으로써, 사용자가 이 매체에 얼마나 친숙한지, 그들이 이 사이트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 그리고 사이트의 기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된다.

2. 기능을 설정하라. 이 사이트는 무엇을 하는 사이트인가? 사용자들이 내비게이션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용자의 구매 의사를 이끌어내야 하는가? 혹은 사이트를 둘러보거나 즐기게 만들 것인가? 초기에 사이트의 기능을 정의하면 그에 따라 다른 것들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3. 명확한 분류와 제목을 사용한다. 목표가 되는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언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시각 언어의 일관성 역시 중요하다. 서체의 선택, 컬러의 사용, 간단한 롤오버 등에서 일관성을 줄 수 있다.

4. 위치와 배열에 일관성을 지킨다. 모든 페이지에서 글로벌 내비게이션(Global Navigation: 사이트 전체에 걸쳐있는 내비게이션)과 로컬 내비게이션(Local Navigation: 어떤 섹션이나 페이지에만 존재하는 내비게이션) 요소에다 일정한 위치와 순서를 정해 놓는다. 이렇게 하면 첫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이동한 사용자가 컨텐츠의 범위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따라서 친숙함을 줌으로 원하는 정보와 대화의 경험을 느낄 수 있다.

5. 다른 관련된 컨텐츠로의 링크를 생각해 본다. 아마존 웹사이트([w]www.amazon.com)가 좋은 예이다. 이 사이트는 시각적으로는 매우 평범하지만 매우 효율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6. 많은 사이트들이 좀더 감성적인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접근한다. 탱고 웹사이트 ([w] www.tango.com)를 보자. 이 사이트는 컨텐츠와 내비게이션 도구들에 장난스러운 그림이나 캐릭터를 사용해 유머러스한 느낌을 주고 있다.

7. 사용자로 하여금 컨텐츠를 자신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타이포그래픽 56 웹사이트(Typographic 56 사이트), [w] www.typographic56.co.uk)는 국제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 모임(International Society of Typographic Designers)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사용자가 정보의 양과 순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8. 가끔 색다른 시각적 메타포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비어 이즈 라이프(Beer is Life) 사이트, [w] www.beerislife.co.uk)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내비게이션 요소의 하나인 '학생관'은 그들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것이다. 다른 웹사이트들은 기능과 콘텐츠에 기반해서 은유적인 내비게이션 구조를 만든다. 디자인과 아트 디렉션 웹사이트 (Design and Art Direction Website), [w] www.dandad.org에서 딥엔드는 '연필을 굴려서' 다른 섹션으로 이동할 수 있는 메뉴를 선보였다.

9.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종종 이야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프렌치 커넥션 사이트, [w] www.fcukingkybugger.com은 이야기 중간에 사용자가 줄거리를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되어 있다.

10. 내비게이션의 한계를 넘어, 인터랙티브 사운드를 사용하여 완전히 실험적인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새로 나온 소프트 드링크, 카본(Carbon)을 위해 딥엔드에서 제작한 웹사이트, [w] www.carbon-stimulation.com은 사용자가 내비게이션 요소들을 발견하고 즐기도록 되어있다. 사용자는 시각적, 청각적인 피드백을 해석하고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또 하나 눈 여겨 봐 둘만한 사이트로는 [w] www.copyrightdavis.com이 있다.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웹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잘된 웹사이트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면 격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애니메이션은 다운로드 속도를 느리게 하고 어떤 경우는 플러그인을 필요로 하기도 하며, 가장 나쁜 것은 몇 가지의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웹사이트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웹 애니메이션이 필요로 하는 것은 독특함이다. 마티니의 멀티미디어 팀장인 벤 애덤스(Ben Adams)의 조언을 들어보자. 일반적인 조언에서 시작해 아홉 가지의 플래시 관련 팁을 제공한다.

1. 웹사이트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다면 '애니메이션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이것은 매우 결정하기 쉬운 문제인 것 같지만 개발 시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어지럽거나 구토를 유발할 것만 같은 페이지에 말도 안 되는 내비게이션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사용자들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한 후 그들에게 어떤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를 정한다. 속도와 플러그인, 브라우저, 그리고 시각적 효과와 파급 효과를 고려한다.

2. 처음에 종이 위에 스토리보드를 그려 주제를 강력하고 훌륭하게 발전시켜 나간다. 작은 크기로 대강 그려가면서 무대와 장면, 애니메이션을 기획한다. 아이디어를 위해 영화나 전통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을 보는 것도 좋다. 영화나 전통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보는 것은 효과적인 카메라 각도나 편집을 위해 특히 유용하다.

3. 기본적인 얘기이나, 처음 무비를 제작할 때부터 Modify Movie 메뉴에서 초당 프레임 비율을 설정하도록 한다. 대개 초당 20이나 24 프레임을 쓴다. 단순한 플래시 무비에서는 최소 12fps 정도를 주면 CPU의 부담을 줄이게 되어 낮은 컴퓨터 사양에서도 재생할 수 있게 된다.

4. 플래시에서 심벌(Symbol)을 흐릴 때 알파(Alpha) 대신에 틴트(Tint)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하면 CPU의 처리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엷거나 흰 배경 색에서 심벌을 페이드아웃 시킬 때 틴트를 흰색으로 주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알파를 사용하는 것보다 이 방법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5. 이즈인과 이즈아웃(Ease In & Ease Out: 플래시의 Modify 메뉴에서 Frame Motion과 Tweening 부분에 있다)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움직임이나 중력을 표현할 경우 이 두 옵션을 적절히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즈아웃은 끝으로 갈수록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고, 이즈인은 천천히 시작되어 빨라지는 것이다.

6. 오브젝트의 움직임을 끝내거나 화면에서 페이드아웃 시킬 경우 마지막에 빈 프레임을 넣어준다.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오브젝트가 화면에 남아있으면, 줌 효과를 주거나 다른 요소에 트위닝 효과를 줄 때 처리 속도에 영향을 주게 되어 애니메이션의 재생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7. 음향 효과 역시 훌륭한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요소인데, 종종 무시된다. 사운드를 정확한 키프레임에 위치시키는 것은 정말 큰 차이를 가져온다. 공들여 사운드를 편집하고 애니메이션 이벤트와 일치하는 키프레임에 사운드를 넣는다.

8. BMP나 JPEG 위에서 형체를 애니메이션화 할 때. 먼저 BMP(혹은 JPEG)를 브레이크 어파트(Break Apart) 해준다.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룹화 한 후 심벌로 변환한다. 효과(Effects) 메뉴에서 알파치를 99퍼센트 이하로 낮춘다. 이렇게 하면 벡터 그래픽이 움직일 때 비트맵이 몇 픽셀씩 움직이는 현상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된다.

9. 캐릭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눈다. 캐릭터가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일 것인지를 결정한 후 화면상에서 어떤 부분들이 움직이거나 이동할지를 정한다. 예를 들어 캐릭터를 눈 (깜빡일 때), 입과 턱 (립싱크 할 때), 머리, 몸통, 팔, 손, 다리, 등등으로 분리시킨다.

10. 아웃라인을 그리기 위해 플래시의 라인 도구를 이용할 때, 크기를 확대/축소하거나 줌 효과를 주면 경계선이 왜곡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가는 선(hairline)의 경우 100 퍼센트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나타나지만 이미지의 크기를 축소하면 선이 너무 굵어진다. 그러므로 작은 이미지는 너무 자세히 그릴 필요가 없다. 파일 크기만 커진다.


흡인력 있는 콘텐츠
'흡인력 있는 콘텐츠(Sticky contents)'라는 말은 오히려 다르게 해석될 의미가 있는 말이지만, 이제는 확실히 굳어진 인터넷 용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웹사이트에서 게임이나 재미있는 장치들을 제공해서 방문객들이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재방문하도록 하는 수법은 몇몇 웹 디자인 대행사들 사이에서 거의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이 분야의 유명한 선두 주자의 한 명인 브렌든 도즈(Brendan Dawes)는 전에 Subnet에서 일했고 지금은 맨체스터에 있는 마그네틱 노스의 제작 감독으로 있다. 그의 열 가지 팁을 들어보자.

1. 콘텐츠를 자주 업데이트한다. 콘텐츠가 항상 똑같다면 아무도 그 사이트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헌신적인 편집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필요하다. 만약 작은 회사나 집단일 경우는 방대한 주제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w] www.moreover.com 등의 사이트와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2. 방문객에게 회원 등록을 하게 하고 사이트의 업데이트 소식을 이메일로 알려준다. 왜 회원 등록을 해야 하는지와 회원 등록을 할 경우의 이익, 그리고 회원의 이메일 주소를 다른 곳에 누출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꼭 회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둔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이트를 외면한다.

3. 플래시 기반의 사이트를 만들 작정이라면, 첫 페이지만은 빨리 뜨도록 하는 것이 좋다. 방문객들이 콘텐츠에 흥미를 갖게 된 후 다른 섹션들에 좀더 무거운 콘텐츠를 올려도 된다. 방문객들이 뭔가 흥미를 느낄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도록 하라는 것이다.

4. 사이트에서 게임을 제공한다면, 최고 점수를 보여주는 페이지를 만들어서 게임에 들이는 사용자들의 노력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들은 그 사이트에 다시 들어와서 자신이 몇 위나 되는지 확인하게 된다.

5. 사이트에 뭔가 독특한 것을 넣어서 사람들이 그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사이트를 방문하도록 만든다. 이 방법은 사이트가 니치 서브젝트(niche subject: 규모는 적지만 시기 적절함과 독특함으로 인해 수익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관한 것일 때 특히 효과적이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동시 메시지 서비스나 메시지 포럼 같은 것이 부가 서비스의 좋은 예이다. 사이트에 메시지 포럼을 넣는 것은 충분한 수의 고정 방문객이 있을 경우, 항상 새로운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다른 사이트들에서 제공하는 유틸리티를 사용하면 컨텐츠를 항상 새롭게 유지할 수 있다. [w] www.blogger.com에서는 멋진 웹 로그 유틸리티(log utility)를 제공한다. 이 유틸리티를 자신의 사이트에 붙일 수 있고, 지난 로그들을 관리할 수도 있다.

7. 컨텐츠에 쏟는 노력의 일부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들여보자. [w] were-here.com 같은 사이트가 어떻게 플래시 세계에서 성장했는지를 살펴보라.

8. 사이트에 검색 기능을 넣는다. 사람들은 특정 컨텐츠를 빨리 찾으려고 할 때 메인 내비게이션 도구를 사용하기보다는 검색을 선호한다. [w] www.atomz.com를 보라. 이 사이트는 정말 훌륭한 검색 엔진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플래시 파일에 들어간 텍스트까지 검색할 수 있다.

9.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좋아한다. 웹사이트에 관련된 이슈에 대해 투표나 여론 조사 등의 기능을 넣어보라.

10. 웹은 매우 인터랙티브한(대화형) 매체라는 것을 기억하라. 즉,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사이트의 경험에 몰입하도록 할 수 있는지에 관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음악과 음향 효과
웹 디자인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소리일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대개 시각적인 경험에만 초점을 두고 만다. 시각적인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사이트를 정말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것은 음향 효과와 음악이다. 이 부분은 사이트를 향상시키거나 완벽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훌륭한 사이트들은 대부분 뛰어난 청각적 요소를 써서 사용자 경험을 마무리한다. 다음의 팁들은 영화와 TV, 웹을 위한 사운드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마데우스 미디어의 로빈 커쇼우(Robin Kershaw)가 제공한 것이다.

1. 왜 음악 혹은 소리를 사용하려는지 확실히 한다. 적절한 사운드는 사이트의 분위기에 놀라운 효과를 주며 독특한 선율은 사이트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인텔의 로고와 멜로디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런 것을 오디오 브랜딩(audio branding)이라고 한다.

2. 사이트에 사운드를 사용하는 것은 전체적 디자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사운드가 단순히 장식적으로만 쓰인다면 오히려 신경 거슬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사용자 경험을 염두에 두도록 한다.

3. 관객을 신중히 고려한다. 다운로드 속도 때문에 사용자의 모뎀 유형에 따라 사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 관객의 연령대와 통계 수치 역시 고려해야 한다. 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댄스 음악을 트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그 사이트를 떠날 것이다.

4. 다운로드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테레오를 모노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본다. 말 그대로 파일 사이즈가 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음악은 다른 것들보다 음질이 더 많이 손상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압축 정도에 따라서도 음질이 많이 달라진다.

5. 음악 외에도, 멋진 화면 해설을 사이트에 잘 결합한다면 사이트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많이 들어갈 필요는 없고, 그저 페이지가 업데이트 되었다던가 하는 발표 정도면 좋을 것이다 (그밖에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보자).

6. 화면과 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동기화 할 필요가 있다면 플래시를 사용해야 한다. 플래시에서 사운드를 사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벤트 사운드와 스트림 사운드이다. 플래시에서 이벤트 사운드는 어떤 키프레임에 도달하면 재생되기 시작해서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무관하게 끝까지 재생된다. 스트림 사운드는 프레임 단위로 재생되므로 프리로드(Preload) 시간이 짧다.

7. 프리로딩(이벤트) 사운드를 사용할 것인지 스트리밍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이트의 나머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애니메이션을 어떤 식으로든 프리로드 할 작정이라면 사운드 역시 프리로드 해야 한다. 사이트의 첫 페이지가 빨리 뜨기를 원하거나 또는 긴 음악을 넣고 싶다면 스트림 사운드를 사용하라. 몇 초간의 프리로딩 후에 음악이 재생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네트웍이 혼잡할 경우 소리가 끊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

8. 화면과 음악이 동기화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좀 더 진보된 압축 방법을 쓸 수 있다. MP3(플래시 최고의 익스포트 옵션이다)가 가장 적당하지만 음악만 있을 경우 QDesign Music을, 목소리만으로 된 경우에는 퀄컴 PureVoice를 써보는 것도 좋다.

9. 상대적으로 다운로드 시간이 적게 걸리는 반복적인 음악의 경우 동기화된 사운드와 스트림 사운드를 결합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플래시에서 스트림 사운드는 애니메이션 재생률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적절한 곳에 위치시키거나 분리된 레이어에 동기화된 사운드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된다.

10. 항상 전문가가 제작한 음악을 사용하도록 한다. 작곡가에게 곡을 구입하던가 기존의 라이브러리 음악을 구입한다. 저작권을 갖지 않고 음악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음악을 도용하는 것은 여러 작곡가들을 죽이는 일이며, 나중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스트리밍 미디어

최근 3 년 동안 우리는 브로드밴드(Broadband : 廣帶域)의 가능성에 관해 들어왔고, 근사한 웹 비디오 솔루션의 미래를 믿어왔다. 온라인 관객들이 얼마나 빨리 브로드밴드 서비스로 전향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디자인 관점에서 볼 때 작은 비디오가 사이트에 움직임과 컬러, 그리고 청각적인 재미를 가져다주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영상을 제공하려면 스트리밍 미디어를 써야 한다. 최대의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인 아이필름이 말하는 스트리밍 미디어에 관한 열 가지 팁을 들어보자.


1. 소스의 질이 낮으면 압축 결과도 좋지 않고, 웹사이트의 질 역시 떨어진다.

2. 항상 최고 해상도에 최대 프레임 사이즈, 최고 프레임 비율(재생률)로 캡처한다. 비디오를 캡쳐할때 가장 좋은 기준은 720×480 픽셀의 해상도, 29.97fps로 DV FireWire 에서 캡쳐받는 것이다.

3. 아이필름이 추천하는 편집과 캡쳐용 소프트웨어는 맥에서 사용되는 파이널 컷 프르(Final Cut Pro)와, Mac과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어도비 프리미어(Adobe Premiere) 6.0이다. 압축용 소프트웨어로는 단연코 테란(Terran)의 Cleaner 5를 추천한다.

4. 이제 웹에 올릴 포맷을 결정해야 한다. 주요 포맷으로는 리얼미디어 (Real 8), 퀵타임 (Sorenson 2, 버전 3은 베타 테스트 중), 윈도우즈 미디어가 있다. 이 포맷들은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개의 포맷을 모두 시험해본 후 어떤 것이 가장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 좋다.

5. 잘리는 현상(cropping). 결과물을 보면 처음과 끝은 괜찮은 것 같은데 중간의 곳곳에서 일정치 않게 잘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있으면 설정을 조절하든가 다른 포맷으로 압축하는 것을 고려해본다.

6.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을 염두에 둘 것. 만일 DV와 같이 일반 화면 비율이 아닌 포맷의 영상을 캡쳐했다면, 압축할 때 4:3의 비율에 맞게 크기를 조절해 주어야 한다. 표준 화면 비율은 640×480, 320×240, 240×180 등이 있다.

7. 화질에 상관없이 파일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프레임 비율을 줄이는 것이다. 15-12fps 정도면 200-300k의 스트리밍 파일이 나온다. 6-10fps로 낮추면 낮은 대역폭(56k 모뎀)에서 재생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100k 정도로 파일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둘째 방법은 화면 비율/해상도를 줄이는 것이다. 320×240이나 240×180 픽셀 사이의 동영상은 200-300k 정도의 파일 크기로 압축된다. 이것을 160×120이나 240×180 픽셀로 줄이면 파일 크기는 100k 정도로 줄어든다. (화면 비율은 4로 나누어지는 숫자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수를 지정했을 경우는 되지 않는다.)

8. 56k용 스트리밍 파일에서 압축 대역폭은 36k를 넘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전화선은 56k 모뎀 사용자들에게 56k의 속도를 모두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9. 클리너 5(Cleaner 5)의 블랙 리스토어(Black Restore) 필터를 써보자. 이 필터는 화질을 좀더 향상시켜주는 반면 어두운 부분의 세밀함은 손상시킨다. 오디오 쪽에서는 오디오 리버브(Audio Reverb) 필터를 쓰면 오디오 압축으로 인해 생기는 잡음들을 완화시켜준다.

10. 56k용으로 압축할 때는 16k의 Low Pass 필터를 쓰면 고음 부분의 잡음이 줄어든다.


3D화 하기
소 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 웹 3D는 세상을 구원(?)하고 만연해 있는 따분함을 치료할 것이며, 우리 모두는 영원히 가상의 즐거움이라는 사이버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상에 가까운 얘기는 그만하고. 사실 웹 3D 솔루션을 선택하는 것은 웹 디자이너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몇몇 디자이너들은 웹에서 훌륭한 3D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트 런던의 제작 감독인 닉 크리스티어(Nick Cristea)에게 웹 3D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자.

1. 적절한 근거에 의해 3D를 사용하라. 3D를 쓰는 것이 웹사이트의 분위기를 돋구는 편한 방법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이트 전체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될 때에만 3D를 사용해야 한다. 형편없는 아이디어나 컨텐츠의 부족을 메우는 방법으로 3D를 사용한다면, 그건 정당화될 수도 없고 팔릴 수도 없다. 프로젝트에 왜 3D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대략 정리한다. 3D를 사용하는 것이 정말 최선의 방법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2. 최적의 3D 도구를 선택한다. 리얼 3D이어야만 하는가? 특정 플러그인을 꼭 다운로드해야만 하는가?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되나? 그 작업을 위해 특정 개발자를 고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현재로서는 플래시가 가장 많이 쓰이는 유일한 플러그인이므로 가능하다면 플래시를 쓰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서 액션스크립트 3D 엔진을 구할 수도 있고, 프레임 단위의(frame-by-frame) 애니메이션으로 3D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시점을 움직이거나 아바타(Avatars)를 바꾸거나 그림자나 조명을 실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진짜' 3D 플러그인을 쓸 필요가 있다.

3. 디자인 초안을 만든다. 줄거리, 분위기, 배경, 속도, 드라마 등은 3D 도구를 사용할 때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다. 일관성 있고, 잘 고안된 상황을 만들어 방문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각적인 요소들의 관계를 적절히 조합하고, 테스트한다.

4. 3D 작업의 장점은 단시간에 구도를 여러 가지로 바꿔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오브젝트를 만들어 구성과 애니메이션을 테스트한다.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옮겨보거나 움직이는 속도를 바꿔보거나 한 장면 내의 오브젝트들간의 관계를 다양하게 설정해 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데 이런 시도들이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5. 대략적인 모델을 사용해 구성과 줄거리의 감을 잡은 후 웹에서의 기본 원형을 만든다. 모든 종류의 트라이얼이나 데모 플러그인에서 작업한 시안이 구현 가능한지 테스트해본다. 실제로 만들어보거나 기본 원형을 만들어보아야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알 수 있다.

6. 모델을 최적화한다. 3D 웹 콘텐츠의 최종 결과물이 어떤 포맷이든, 최적화의 규칙은 모두 같다. 모델이 세밀하고 복잡해질수록 파일 사이즈는 커진다. 처음부터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단순하게 하고, 파일 사이즈를 계속 체크한다.

7. 3D 요소들을 내보낸다. 일부 플러그인은 모델링 단계에서 특정한 방법을 써야 한다. 3ds Max는 현재까지 가장 많이 지원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플러그인 기술을 지원하는 고유 애드-온(add-on: 특정 기능 보강을 목적으로 만든 보조 소프트웨어)들이 무료로 나와 있다. 하지만 비싸다. LightWave는 훌륭한 VRML 내보내기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플러그인이 없다. 스위프트 3D(Swift 3D)나 아모피움 프로(Amorphium Pro)는 저렴한 가격으로 3D SWF 파일을 만들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든, 모델을 내보내어 초기에 테스트를 한 후, 한 장면을 좀더 작은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눈다.

8. 최적화와 사이트 구축. 사이트를 스트리밍할 수 있는 요소와 배경에서 로딩될 요소, 그리고 필요할 때만 로딩되는 요소 등, 몇 개의 레이어로 분리시킨다. 모든 로딩 시간을 계산하고 조절하여 되도록 사용자가 로딩 시간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9. 파일 크기가 문제가 되거나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창조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결과물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사용하고 있는 도구를 충분히 테스트하고 기능에 관해 잘 알아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단순한 팔레트와 셰이프, 텍스쳐 매핑을 사용하고, 하나의 셰이프나 오브젝트들을 반복해서 쓴다.

10. 한가지 도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여러 도구를 결합해서 사용하면 좀더 새롭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30일 짜리 데모 버전들을 잘 이용해서 최근의 도구와 기능들을 익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출처 : 보헤님 블로그 <- http://blog.naver.com/ormaster/40005619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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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라는 것

Miscellaneous/Story 2007. 3. 7. 02:19
나는 취미가 상당히 많은 편인 것 같다. 나의 취미 놀이는 아래와 같다.

볼링
볼링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인터넷이 막 태동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컴퓨터로 먼 지방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PC통신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때 잘 나가던 통신사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등이 있었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설 PC통신 방을 만들어 시샵이라는 운영자로 활동 하기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모뎀 2400, 9600등으로 통신을 하던 시절이라 밤마다 전화기 선을 뽑아 모뎀에 연결하고 부모님에게 혼날까 봐 모뎀에서 나는 삐삐~지지직 소리를 줄이기 위해 모뎀에 있는 작은 스피커에 휴지를 틀어막고 조마조마하게 통신을 했었다. 나중에 천리안 사용 요금이 10만원가량(그때는 작은 돈이 아니었다)이 나와서 혼이 났던 기억이다.

그 시절에 천리안에 볼링 클럽이 지역마다 있었고 평택이 고향인 나는 친구의 친척형의 권유로 천리안 상주 볼링클럽 평택 창단 맴버로 볼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볼링을 처음 접하는지라 공을 뒤로 던지는 묘기도 보이고 옆 레인을 넘나들기도 하면서 배우게 되었는데 그렇게 한참 배우다가 군대를 가면서 볼링과 멀어졌고 다시 볼링 공을 사고 시작한 것은 사회 초년생인 2004년쯤이었던 것 같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평택에 공을 두고 와서 한동안 하지 않다가 작년 말부터 다시 볼링 공을 가져와서 주중 한 두 번 정도 신림동에 있는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고 있다. 혼자 하기 때문에 한번 볼링공을 잡으면 보통 6게임 정도를 치는데 그것도 오랜만에 치게 되면 온 몸이 쑤신다.(왕년에는 연속 13게임까지 처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기어서 집으로 갔던 것 같다..ㅎㅎ)

가끔은 미친듯이 스페어도 없이 붙여서 작은 갤러리를 모으기도 하지만 그날, 게임마다 점수는 들쑥날쑥이다.

사진
사진은 처음 올림푸스 4000z를 구입하고 사진을 찍다가 니콘 5700으로 기변을 하고 다시 시그마 sd9, 그리고 다시 니콘 d70으로 와서 정착을 했다. 사진은 나에게 많은 여유와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사진기를 자주 만지기 전에는 보이는 사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었던 것 같은데 사진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작은 사물에 대해서도 의미가 생기고 사각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취미는 올해 다시 본격적으로 착수할 생각이다.

인라인
인라인은 사실 취미라고 할 정도로 자주 타지는 못한다. 나른한 캐나다에 있을 때 주말이면 할꺼리를 찾아 방황을 하다가 친구들과 함께 인라인을 타게 되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인라인도 그때 구입했던 k2 인라인이다. 우리는 주말이면 스탠리파크에 가서 인라인과 자전거를 탔는데 한국의 가족 단위의 공원 풍경과는 다르게 젊은 연인들과 혼자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공원 옆으로 바다가 있어 더욱 느낌이 새로웠다. 그때 인라인을 타다가 자갈밭에 굴러서 생긴 왼손의 흉터는 아직도 보기 게 남아 있다.

자전거
자전거는 작년 중순쯤에 시보레 미니벨로를 구입하면서 타게 되었다. 차는 있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다보니 차가 있으면 더 불편한 도시인지라 거의 평택에 방치해 놓는다. 그러다보니 답답할 때면 어딘가 가고 싶은데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페달을 밟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사와 집이 가까운 관계로 생활패턴이 일찍 끝나서 집에 오면 밥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새벽에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다시 늦은 새벽에 잠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느날은 새벽 2시경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 시민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낮에 타는 것보다 한여름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며 혼자만의 여유를 느끼는 것도 내가 살아있고 자유롭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중에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내려오다가 도로에 생긴 웅덩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핸들을 놓치고는 그대로 도로에 다이빙을 했다. 다행이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없어서 2차 대형 사고는 면했지만 넘어지면서 왼쪽 팔꿈치와 왼쪽 어깨 그리고 등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그 와중에도 일어나서 자전거 망가진 곳이 없는지를 살폈다는 ;)

그렇게 집으로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다가 생각해 보니 집에 상처에 바를 연고도 없고 소독약도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오는 길에 엉뚱하게 편의점에 들려서 아주머니에게 약도 파냐고 물었다.(무식한 난 편의점에서 세상에 모든 물건을 다 파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랬더니 예전에 사용했던 연고를 찾아보겠다고 하시며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테이블에 있는 물건들 다 떨어뜨리시고;; 결국 못찾겠다고 하시는데 어찌나 고맙고 미안스럽던지, 그냥 나오기 뭐해서 음료수 한통(?!)을 사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홀딱 벗고 거울에 상처를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박혀있는 돌과 흙 모래라도 처리해야 겠다는 생각에 수돗물에 샤워를 했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려니 바로 눕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출근을 했던 터였다. 그 때가 가장 더운 8월 중순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내 상처는 아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침에 옷 입는 시간만 30분 넘게 소요됐다. 나의 엉뚱한 충동에 무진장 고생했던 기억이다. ^^;

낚시
낚시는 예전에 바다낚시가 좋아 가끔 바닷가에 가서 낚시를 하곤 했는데(제대로 된 물고기 하나 잡지는 못했다) 작년 말쯤에 웹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루어낚시에 사로잡혀서 일단 장비를 구입했다. 쿠쿠 구입하고 나니 겨울인지라 구입한 장비로 제대로 낚시 한번 가보지 못했다. 올해 날씨가 좋아지면 한번 나가볼 생각이다.

루어 낚시는 붕어 낚시와는 다르게 지루한 감이 없어서 좋아보였다. 루어라고 불리는 가짜 미끼를 가지고 낚시를 하게 되는데 가짜 미끼를 던져 슬슬 감게 되면 외래어종인 배스가 먹이로 착각하고 물어 낚는, 낚시라기 보다는 스포츠에 가깝다. 보통 배스 낚시로 불리기도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에 보면 줄이 긴 낚시로 강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이 포스터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 낚시가 이러한 루어낚시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나온 낚시는 플라잉 낚시인데 바람결에 따라서 긴 낚시줄을 날려서 수면 위에 미끼를 튕기면 그것을 물고기가 물어 낚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잉 낚시 보다는 대가 짧은 루어낚시로 주로 배스를 낚는다.

프로그래밍
프로그래밍은 취미이기도 하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누구는 집에서도 일을 하냐고 하지만 그 것이 재미있어 이곳에 왔고 그 재미를 통해서 자기 개발과 생각을 하나하나 결과물로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

프로그래밍의 미학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느낄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그림과 음악과 시와 같은 세상에 art라고 불리는 것들의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서 소통하고 싶은 생각을 어려서 때부터 했었다. 어쩌면 그러한 일환으로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그런 것에 좀더 다가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평생 혼자 살 놈처럼 보인다. 올해는 여자친구에게 사랑받기가 취미로 등극하길 바라면서 그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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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 모질라에 스크립트 코드 기증

Programming/Etc 2007. 3. 6. 23:32
어도비는 파이어 폭스 웹 브라우저에서 자바스크립트 프로그램들을 실행시키는데 사용될 소프트웨어를 모질라 재단에 기부할 것임을 밝혔다. 이는 모질라 재단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증이다.

어도비는 지난 화요일(미국 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웹 2.0 컨퍼런스에 발맞추어, 기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코드는 어도비와 모질라의 개발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될 ‘타마린’ 이라는 새로운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근간을 이룰 것이다.

어도비 또한 ‘액션 스크립트 버츄얼 머신’ 이라 불리는, 이와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예정인데, 이것은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9에서 스크립트 코드를 실행시키는데 사용된다.

모질라 재단의 대표 프랭크 해커는 이 가상 머신이 2008년 1분기까지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의 차세대 버전에 삽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 버츄얼 머신에서 사용될 스크립팅 언어는 액션 스크립트로 적힌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데, 이는 ECMA 국제 표준인 ECMA 에디션4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도비의 소프트웨어 설계 부문 대표 케빈 린치는 MS의 제이스크립트와 기타 유명 자바 스크립트들도 이 표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플래시 플레이어9과 함께 지난 6월 선보여진 어도비 스크립트 ‘엔진’의 새로운 버전은 실시간 컴파일러를 사용하여 이전 버전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프로그램을 실행한다”고 설명했다.

린치는 모질라와의 거래가 어도비에게는 오픈 소스 부문에서 진행한 가장 큰 거래였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결정을 통해 개발자들이 에이젝 스타일의 웹 개발과 미디어와 애니메이션을 위한 플래시를 포함하여, 이러한 프로그램 기술들을 섞고 서로 조합할 수 있게끔 만들려는 어도비의 계획을 한 걸음 더 딛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이러한 공통된 언어 사용을 통해 더욱 더 광범위한 HTML과 플래시 개발자 커뮤니티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다. 똑같은 언어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린치)

해커는 우수한 스크립트 엔진이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나 썬더버드 이 메일 클라이언트 등을 포함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 부분의 파이어폭스와 확장자들이 자바 스크립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타마린 프로젝트 코드는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에 현존하는 자바 스크립트인 ‘스파이더 몽키’를 뒤이을 차세대 자바 스크립트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ZDNet Korea

기사가 나온지 오래된 내용이지만 익스플로러 vs 파이어폭스에서 어떤 브라우저가 우위를 차지할지 궁금해지는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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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컨텐츠의 최적화

Design/Web 2007. 3. 5. 22:41
최적화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사실 어렵다기 보다는 아는 부분도 실수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플래시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플래시 툴이 항상 컴퓨터의 메모리에 상주해 있는 본인도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요즘은 워낙 컴퓨터 사양이 좋아져서 최적화의 유용성이 많이 감소되기는 하였으나 작업 과정에서 이런 최적화의 노력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자신의 잘못 보다도 디자인의 묵직함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의 웹 컨텐츠의 화려함을 보면 과연 컴퓨터가 온전할까 하는 두려움마저 드는 사이트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나 또한 그러한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없는 일정 만들어가며 동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항상 바쁜 클라이언트의 명령에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이루어 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볼멘소리에 숨겨놓은 자신의 귀차니즘이 더욱 큰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가피한 현실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클라이언트를 보면 더 화려하고, 더 보기 좋고, 더 강렬한 사이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최적화는 다른 프로젝트에 밀려서 잊혀지고 만다. 서비스업이다 보니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눈높이에 맞출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지만 무엇보다도 웹을 개발하는 전문가로서 전문의식과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나는 웹에이전시에서 근무한 경력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획, 디자인, 컨텐츠, 개발, 코딩과 관련하여 총체적으로 회사 입장의 이익 창출을 위한 객관적인 판단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 위기 모면적 프로젝트와 그것을 생산하는 회사는 발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생각이다.

클라이언트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획과 디자인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진의 기본적인 지식과 판단에 서서, 전문자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자칫 클라이언트의 말 전달자가 될 수도 있고, 비 전문가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대외비적인 프로젝트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자기개발도 중요하겠으나 팀과 조직 구성원들의 스스럼 없는 커뮤니케이션과 의견 존중이 밑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웹의 기본 정신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웹의 모든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웹 ==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의는 항상 머리 속에 넣어두고 살아야 한다. 사이트가 아무리 화려하고 많은 컨텐츠를 가지고 있어도 궁극적으로 그것을 사용자가 학습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 웹사이트는 이미 죽은 사이트다.

예전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가와 같은 양적인 측면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질적인 측면과 감성적인 측면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Web 2.0이라는 트랜드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고 덕분에 UX(User Experience)는 예전보다 사용자에게 상당히 많은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Web 2.0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Web 2.0이라는 개념은 화려한 테크닉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에 따른 좀더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웹 가이드일 것이다. 가끔 보면 그러한 기본 정신을 잊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웹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임베디드 분야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적화의 요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익히 들어왔다. 요즘처럼 수천 MB의 메모리를 갖춘 PC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십 KB의 메모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된다는 것이 상당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컴파일러 수준의 코드 최적화는 물론이고 소스 코드 수준에서도 최적화된 코드를 작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컴파일러가 제공하는 최적화의 종류는 크기 최적화와 속도 최적화의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임베디드 분야에서는 이 중에 크기 최적화를 통해 작은 크기의 실행 파일을 생성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으로 본다. 속도 향상은 알고리즘의 개선이나 소스 코드 튜닝을 통해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지만 실행 파일의 크기를 소스 코드 레벨에서 수동으로 줄이기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 또한 지금의 발전과 같이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나 먼 미래에도 최적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당장 임베디드 시스템에 필요한 컨텐츠와 UI를 제작한다면 그 코드를 담는 하드웨어의 무게보다 무거운 프로그램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웹에서 임베디드 분야와 같은 최적화를 가지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웹은 웹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보다 사용자 중심의 사이트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과 방법에 치우쳐서 최적화를 소홀히 한다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조종하는 전투기 안에 있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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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배경 플래시

Design/Web 2007. 3. 5. 05:08
안녕하세요...

현재 스킨에 사용하고 있는 배경 플래시의 무비클립 오브젝트를 변경한 bg.swf 파일을 올립니다.
사용하고 싶으신 분은 받아다가 사용하세요

사용 방법은 images/ 폴더 안에 파일 업로드 하시면 됩니다. 파일은 기존의 bg.swf 파일과 같으나 나타나는 무비클립 오브젝트의 모양을 변경한 것이니 첨부하는 bg.swf 파일만 업로드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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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에 대한 생각...

Design/Web 2007. 3. 4. 04:30
사이트를 만들 때면 사용자의 컴퓨터 해상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요즘 들어 와이드 모니터들이 많이 늘어나고 기존의 1024x768 사이즈가 표준이 되던 시대도 이제는 어느 정도 지난 시기인 듯 싶다. 노트북만 하더라도 대부분 와이드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고 출시되는 lcd 모니터들을 봐도 그러하다.

사이트의 완료 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사투를 벌이는 퍼블리시 관련 팀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상도 뿐만이 아니라 브라우저의 종류에 따라서도 표준에 따른 결과 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90%가 넘는 사용자들이 IE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IE에 맞춰서 작업을 진행하면 큰 무리는 없으나 글로벌한 사이트의 경우에는 다른 부라우저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IE가 7.0으로 버전업을 하면서 급속도로 파이어폭스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듯 하다. 현재만 하더라도 10% 가량의 사용자들이 IE가 아닌 타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IE에만 맞춰서 작업한다는 것은 사이트의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나 도 얼마 전부터 파이어폭스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블로그를 디자인 하면서부터 이다. IE에서 제대로 나오던 것이 파이어폭스에서는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며 파이어폭스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자료를 찾아보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수정하다 보니 그 동안 우리가 너무 IE의 표준 같지 않은 표준에 국한하여 생활하다 보니 생겨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 금의 브라우저들을 보면 양극화 되어 있다. IE인 브라우저와 IE가 아닌 브라우저, 이는 다시 생각해보면 비표준과 표준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IE는 그 동안 독점하는 과정에서 표준에 반하는 기술을 표준으로 굳히려는 노력을 했을 뿐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개발을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서 새로 출시한 IE 7.0을 보면 어느 브라우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브라우징의 속도를 보면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정도이니 IE 외의 다른 브라우저를 접해보지 않은 상태라면 모르나 접해본 사용자라면 상황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은 국내에서 대부분 IE를 사용하고 있고 IE에 국한된 표준을 따르는 사이트가 많기 때문에 사용자의 불편으로 쉽게 다른 브라우저로 넘어오지 못하는 사용자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전환은 바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브라우저에 대한 개발 노력이 미흡한 이상, 앞으로 브라우저의 대세는 서서히 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어플리케이션 경계선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웹브라우저에 대한 사용자의 눈높이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 눈 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지금의 안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앞으로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다수의 사용자가 IE를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것에 맞춰서 사이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제는 사용자가 그러한 좁은 문에서 밖을 내다볼 시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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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게 한국은, 한국에게 구글은 어떤 의미일까?

Miscellaneous/Etc 2007. 3. 4. 04:30
그간 국내 IT 업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 중 하나였던 구글의 한국 R&D센터 설립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다. 그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과 블로그에서 소개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 자세히 나열하지는 않겠다.

구글의 한국 R&D센터 설립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한국 R&D센터’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윤석찬님이 블로그에 쓴 ‘구글 한국 Engineering Center 유감’이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논란이 있는 명칭이기는 하지만 구글의 공식적인 한글판 보도 자료의 용어는 R&D센터이므로, 여기에서는 일단 해당 명칭을 그대로 사용토록 하겠다.

이번 구글의 한국 R&D센터 설립 발표를 계기로 구글의 입장에서 한국의 의미, 한국의 입장에서 구글의 의미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이번 한국 R&D센터 설립이 구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구글이 이번에 설립하는 한국 R&D센터는 구글의 엔지니어들이 근무하는 지역 오피스 중 하나이며, 해당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지사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구글의 한국 지사가 언제 설립될 지 모르는 현 상황에서, 이번 한국 R&D센터 설립을 국내의 직접적인 사업과 연관 짓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므로 구글의 입장에서 이번 한국 R&D센터 설립의 가장 큰 의미는 고급 엔지니어의 확보라고 볼 수 있다. 구글은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번 R&D 센터 설립은 그러한 한국 내 기술 인재를 확보하는데 1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실제 필자의 지인이 R&D센터장 후보로서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구글이 주로 했던 질문은 한국 내 고급 인력의 확보 방안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번 R&D센터 설립은 엔지니어 확보에 목적이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비즈니스는 실제 지사가 설립되고 비즈니스 계획이 만들어진 이후에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아직 한국 내에서의 사업 계획을 명확히 갖고 있지 못하다. 구글은 현재의 구도에서는 네이버, 다음 등과 같은 국내 포탈 사이트들과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주요 구글 서비스들이 대부분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일부 전문가 취향의 이용자들을 제외하고는 구글 서비스에 대한 인기가 높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구글은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초보 선수이다.

구글의 생각은 현재 상황에서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한국 내 비즈니스의 추진보다는 일단 먼저 한국의 고급 엔지니어들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한국 R&D센터 설립이 국내 업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냉정하게 따져보면, 직접적 효과로는 외국계 기업에 의한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50여명의 엔지니어 고용 효과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취업이 어려운 실업자를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의 고급 인재를 고용하는 것이므로 결국 실제로는 국내 기업에서 외국 기업으로 인재가 이직하는 것일 뿐이다.

구글의 한국 사업은 R&D센터와는 별개이며, 실제 필자의 지인이 센터장 면접을 볼 때 구글이 직접 밝힌 부분이기도 하다. R&D센터 설립에 따른 직접적인 효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급 인재 150여명의 고용 효과 밖에는 없다. 그것도 거의 국내 기업의 엔지니어가 이직하는 형태가 될 것이므로, 오히려 그 효과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추가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다국적 기업의 R&D센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올해 3월에 한국과학기술인연합에 올라온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좋은 측면만을 강조한 글은 이미 숱하게 보아왔으므로 다른 측면의 주장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의 R&D센터가 국내 업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효과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점들이 있다. 그것에 대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적 임팩트가 있다. 구글의 한국 R&D센터 설립 소식 그 자체로서 구글의 브랜드로 인해 업계 전반에 충격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모든 언론이 이번 일을 보도하였으며 블로그 스피어에서도 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실속 여부를 떠나 “구글이 한국에 투자를 한다”는 그 한 마디가 바로 성공한 광고 카피이다. 산자부가 적극 나선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둘째, 업계의 긴장감 조성 및 기술 개발의 경쟁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또한 구글의 브랜드와 기술력이 미치는 주요 영향이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간에 열심히 경쟁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반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상당히 부족하다.

물론 포탈 업체들 내부에 엔지니어가 있지만 주로 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웹 개발자들이고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구글을 통해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든 경쟁의 자극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구글이 한국에서 얼마나 비즈니스 입지를 확보하는 가에 따른 상관 관계가 있는 부분이라서, 구글이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잘 해나가지 못한다면 그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셋째, 구글의 근무 환경으로 인해 국내 업체들도 근무 환경 개선의 압박을 받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구글의 직원에 대한 배려와 좋은 근무 환경은 유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오픈한 구글의 뉴욕지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부 차이는 있더라도 본사와 마찬가지로 개발자들에게 20% 룰이 지켜지고, 자유롭고 편안한 오피스 및 휴식 공간, 유명한 구글식 식당이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회사의 이익에 비해 근무 환경이 열악한 회사들이 많다. 그런 회사에 근무하는 유능한 인재라면 구글의 근무 환경에 유혹을 느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그 동안 근무 환경의 개선에 너무 소홀했다

국내 기업 스스로 혁신하기 보다는, 외국계 기업 또는 경쟁 기업에 인재가 유출되고 난 후에야 근무 환경 개선의 압박을 받아 개선해온 측면이 크다. 여전히 많은 지식근로자들이 올바른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 중에서도 국내의 엔지니어들은 그 생명력도 짧은데다가 근무 환경까지 열악하여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구글의 R&D센터 하나로 국내 엔지니어들의 근무 환경이 대폭 개선될 리는 만무하지만, R&D센터가 구축되면 구글 특유의 홍보 방법(특히 식당을 강조함)을 통해 한국 R&D센터의 근무 환경이 보다 많이 대중에게 노출될 것이다. 아마도 구글은 그러한 홍보가 헤드헌팅이나 기업 홍보보다 인재를 모으는데 더 비용이 적게 들고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치열한 경쟁이 업계에 활기를 준다
기업들의 경쟁은 언제나 소비자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자가 없이는 세계적 수준에 이를 수 없다. 구글의 한국 R&D센터 설립이 국내 업계에의 각성 효과 및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국내 기업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구글은 누가 뭐래도 현재 최고의 인터넷 기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글의 앞날이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근래 구글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서비스, 거만한 비즈니스 태도, 구인 인터뷰 후보자들에 대한 홀대 등으로 인해 업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성공의 함정인 “구글 제일주의”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글은 기계적이고 자동화된 시스템 구축에는 능하지만 UCC, 집단 지성, 소셜 네트워크, 동영상 서비스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오컷, 구글 비디오 등 많은 신규 서비스들을 기대만큼 성공시키지 못했다. 내년 초에 출시되는 Windows Vista와 Live.com의 연계 또한 구글에게는 커다란 도전이다.

그러한 구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현재 가장 성공한 인터넷 기업이며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다. 구글이 한국 R&D센터를 설립하는 것에 대한 득과 실을 따져보았을 때, 실보다는 역시 득이 많다.

구글이 빨리 한국지사도 설립하여 본격적인 비즈니스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은 언제까지 한국 시장에서 초보 선수로 머무를 생각인가? 비록 시장은 작지만 이 독특한 시장에서 한번 제대로 경쟁해보기 바란다.

출처 : ZDNet Korea - 류한석 IT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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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 횡설수설...

Miscellaneous/Story 2007. 3. 4. 04:30
회사에서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주말이면 집에서 컴퓨터를 하던가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보는 일로 일상을 마무리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는데 오늘은 회사 동료가 술 한잔 하자고 하여 오랜만에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집 밖을 나가게 되었다.(나 왜 이렇게 살아 ㅠ.ㅠ)

아무튼 그렇게 나가서 술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해 보니 사람마다 생활하는 방식과 가치관이 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각자 생활 하는 것이 그다지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가 얼마나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좀더 생활에 숙연해 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큰집의 큰형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나에게는 처음 격게 되었던 사람의 죽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던 시기였다.

작년 추석까지만 해도 같이 차례를 지내고 술 한잔 할 수 있었는데 어느날 췌장암 판정을 받고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평택으로 달려갔던 터였다. 힘들게 숨을 몰아쉬고 온 몸이 황달로 노랗게 변해버린 큰형을 보고 있으려니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에 세상을 떠나고 화장터에 가서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남골당에 모시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니 인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좀더 깊게 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것 같다.

불과 몇개월 전에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어느날 세상을 떠나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들의 기억속에만 남게 되는 것을 보니 나 또한 앞으로 얼마나 살아가기에 그렇게 아둥바둥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봐야 불과 몇 십년이고 그 시간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이며 내 주위에 누군가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현재 주어진 삶과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친구가 생기면 또한 힘들게 않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당장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고 싶다.

술 한잔 들어가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나도 주말에 여자친구 만나서 영화 한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내가 못낫는지 그럴 기회가 없는지 항상 주말이면 나른한 오후가 되어버리곤 하니... 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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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플렉스

Project/Web 2007. 3. 4.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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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쯤에 오픈란 라이브 플렉스, 화면에 나타난 오브젝트들이 스테이지 사이즈에 따라 유동적으로 좌표를 찾아 가도록 만들었다.

http://www.liveple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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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aland.com - 사진 갤러리사이트

Project/Web 2007. 3. 3. 03:30
Dcaland.com 사진 갤러리 사이트

이 사이트는 개인적인 취미인 디카 생활을 하면서 모아온 사진을 웹에 올리고자 만들었던 사이트다 이미지를 클릭했을 때 사진이 나타나는 모션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볼 방법이 없을 까 해서 만들게 되었다.

플래시8에서 추가된 FileReference 클래스를 이용하여 이미지 업로드를 지원했으며 모든 구성요소들이 현재 화면의 크기에 따라 유기적으로 위치를 잡고 사이즈를 조정하게 만들었다.

이 사이트 또한 나에게 여러가지 재미를 준 고마운 녀석인데 만들고 나서 언제나 그랬듯이 관리가 안되었던 것 같다. 추가적인 기능과 보완할 것들을 정리하고 수정해야 하는데 회사일이 그렇다보니...

http://www.dca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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