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09, 안녕? 2010

Miscellaneous/Story 2009. 12. 31. 23:55

이제 2009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나에게 2009년은 바쁘고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항상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묘하다.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싶은 것이 더욱 많기에 발생하는 욕심도 있고, 갖지 못하고 놓친 안타까운 사연도 하나 둘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201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2010년은 “기회의 해”로 명명해도 좋을 듯싶다.

개인적으로 2010년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할테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길에서 저를 한 번이라도 보시거나 스쳐 지나간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내년에도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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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전화통화 소음이 더 시끄러운 이유?

Miscellaneous/Story 2009. 1. 30. 09:47
나는 하루에 두어 차례 출퇴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한다.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을 타다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 쯤 되는 제목으로 단편 영화를 심심치 않게 관람한다. 훈훈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있고 지하철 문에 머리카락이 끼는 어느 여인의 슬픔도 보며, 삼지창을 든 악마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연출을 보기도 한다.

오늘은 퇴근길에 버릇없는 전철 칸에 들어가 유체이탈을 시도했다. 이유는 전화통화 소음이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 그 중에도 유독 목소리 톤이 높은 어느 여학생의 깔깔거리는 통화소리에 한동안 정신이 혼미해졌다.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전화가 왔다며 잠시만을 외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를 한다.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문 옆 좌석에 앉아 오른팔은 손잡이에 걸치고 사람들이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떠들썩 하게 통화하는 모습이 참 애처롭다.


통화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 학생의 핸드폰 스피커를 거쳐간 사람 수는 대략 5명 정도, 그 중에는 그 학생의 부모님도 왔다 가셨다. 전철에서 통화하는 것을 알 듯 한데 딸의 목소리 톤이 높은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이쯤 되었으니 내가 한마디 해야겠다 싶다가도 주인공 주변의 엑스트라들을 나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넋을 놓고 말았다. 결국 나의 목적지를 몇 정거장 남겨두고 주인공은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유유히 사라졌고 좀더 강력한 엑스트라가 전화를 하며 전철 칸을 횡단하여 내 앞을 지나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버릇없는 전철에서 내릴 때는 웃음이 나와버렸다. 왜 전철에서는 대화하는 소리보다 전화통화 하는 소리가 더 시끄럽게 들릴까?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송출자와 수신자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머리 속에서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다지만 전화통화는 송출자의 음성만 듣고 수신자의 대화를 유추하는 데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 일거라는 추측이다.

오늘의 아이디어 상품은 소리 감소 후레쉬다. 전철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들~ 내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다면 조용히 전화기를 닫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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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이다.

Miscellaneous/Story 2009. 1. 9. 03:18
나는 평소에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말 수도 없거니와 말주변도 변변치 못한 내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두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99%의 잉여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잉여인간인지 아닌지는 내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는 터라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것이 현재 나의 문제라면 문제다.

사실 ①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의 잘못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라고 이야기하여 다른 사람이 그런 판단을 하지 않도록 만들지 않는 ②불성실함이다. 그가 나를 판단할 때, 적어도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할 ③의무를 나는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만 인간이라고 이야기하여 나의 삶에 약간의 간섭을 주었지만, 한자의 사람인과 사이 간자를 보며 ‘참 잘 그렸네’ 라고 생각할 때만 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 사이에서의 인간은 영향을 주고 간섭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 충분하다. 적어도 내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까지 그릇된 시선으로 신의 판결을 내리지는 말자는 말이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사람은 주위에 없는 사람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자기성찰 하는 글이거니 하면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본인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의 옆 사람 보다 웃긴 놈이다. ^^

[각주]
①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본인의 블로그에 평생 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또는 동물(?!)

②불성실함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아니하거나 타인이 암묵으로 요구하는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주지 않는 행위나 침묵.

③의무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그 중 하나는 침묵이다. 사람으로서 할 일이지 사람에게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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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의 침묵

Miscellaneous/Story 2008. 7. 19. 22:00
한동안 블로그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들도 있었고 예전의 생활 패턴과 달라진 이유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힘들 때 소비지출이 늘어난다고 한다. 자신의 힘듬을 다른 것을 통해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라고 하는데,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 기법도 활용된다고 한다. 내가 요즘 그런 바보스런 소비자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 같다. 물론 스스로 투자 차원에서 소비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크게 불필요한 지출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쿠쿠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플래시를 통해서 이야기 봐야겠다. 그 동안 가지고 놀아볼까 싶어서 쌓아두었던 자료들을 들추어 봐야겠고, 책도 봐야겠고, 인생설계도 다시 해야겠다. 그리고 당분간 실험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 보려고 한다.

아침형 인간의 시작은 이미 금요일부터 시작되었고 나머지들은 차근차근 해봐야겠다… 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따분하고 지루하게 보냈다. 다음주부터는 돈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소비해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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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의 오차

Miscellaneous/Story 2008. 1. 9. 11:17

내 생각이 어디까지가 옳은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초기에 생각했던 것이 수정 되었을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이 왜 그리 힘든지, 작은 것에서부터 나에게 큰 의미로 자리잡았던 부분까지도… 현재 살아 남기 위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내 자신을 요즘 들어서 자주 보게 된다.  

var lifeValue:Boolean = true;

과거의 true로 믿었던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false 일 수 있다. lifeValue는 어디까지나 변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래도 내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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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채널 transition

Miscellaneous/Story 2008. 1. 4. 01:06
오늘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티비를 보다가 내가 가끔 사물을 보다가 떠오르는 생각, "왜" & "그러면"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TV는 채널을 넘길 때 화면이 깜빡거리며 전환이 되는데 채널을 짧은 시간에 여러번 바꿀 경우에는 눈에 피로가 뇌까지 전달된다.

왜 깜빡여야 할까?
이유는 패널이 하나이고 그 패널에서 다른 채널의 영상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영상을 제거하고 새로운 영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런 깜빡임을 없애고 좀더 자연스럽고 눈에 피로가 덜가는 방법으로 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기존에 보고 있던 채널의 영상의 alpha값을 서서히 out하고 새로운 채널의 영상의 alpha값을 in 하는 형태로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새로운 채널 영상을 보여지기 위해서 최소한의 시간 소요가 필요하며 이 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기존의 TV처럼 패널을 하나 사용 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패널을 사용하여 상영되는 시간에는 2개의 패널을 사용하여 영상의 깊이감을 주고 다른 채널로 전환할 때는 하나의 패널에서 기존의 영상을 사라지게 하고 또 하나의 패널에서는 새로운 채널을 나타나게 하는 형태로 하며, 새로운 채널이 화면에  완전히 표시되는 시점에서 기존에 사라진 패널의 영상을 서서히 현재의 채널 영상에 합류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드웨어적으로 어떠한 매커니즘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는바 없으니 그냥 그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서 끄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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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률의 시작에 서다.

Miscellaneous/Story 2007. 10. 1. 22:59
정확히 3개월 동안의 휴식 아닌 휴식을 끝내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똬리를 틀었다. 계획보다 2달 가량이 지연된 사연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충분한 휴식과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는 필요 이상의 휴식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도 서서히 잡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이 힘들다 한들 백수 생활만큼 할까 싶을 정도로 그 동안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는 회사에 적응하고, 어우르는 분들과 소통하며 적응해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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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향수

Miscellaneous/Story 2007. 9. 25. 12:23
우리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살아온 세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 윗 세대들도 그러한 경험을 하고 살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성이 강한 세대는 30대가 주축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향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DOS라는 운영체제를 윈도우에서 지원하는 커널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누나를 위해 장만한 AT, hard 20mb 컴퓨터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때만 하더라도 하드가 없는 XT 컴퓨터가 주축이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5.25인치 프로피디스크를 사용하였다. 5.25인치 디스크가 잘 구부러지는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진데다 원판형 자기 디스크가 외부에 노출되어서 반드시 보호재킷을 입혀서 보호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한 것이 3.5인치 프로피디스크였다. 대형 컴퓨터에서 사용하던 8인치나 5.25인치와는 그 모양과 데이터 저장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었다. 프로피디스크에서 CD로 넘어갔던 것처럼 그때도 5.25인치를 대부분 사용하였으나 성능이 개선된, 소위 말하는 좋은 컴퓨터에서는 3.5인치 프로피디스크를 장착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5.25인치가 보급되어 사용된 기간보다 3.5인치가 보급되어 사용된 기간이 짧았다. 이유는 곧이어 컴퓨터 자체에 하드 용량이 늘어났고 CD롬 이라는 새로운 저장매체가 나타났기 때문일 듯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 www.suck.uk.com

CD가 보급도면서 CD로 저장된 음악을 듣기 위해 묵직한 CD 플레이어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크기와 사용상의 불편함은 mp3 플레이어가 채 나오기도 전에 하나 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또한 컴퓨터 저장 매체로 HDD의 발전을 빼놓을 수 없을 듯싶다. 일반적으로 SSD가 HDD에 비해서 월등히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듯싶다. 읽기에서는 SSD가 빠르지만 쓰기에서는 HDD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속도를 보면 다소 HDD보다 SSD가 빠른 것을 알 수 있는데 SSD가 쓰기 속도를 향상한다면 현재 HDD가 SSD에 비하여 용량과 가격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SSD의 많은 장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 될 수밖에 없을 듯싶다.

왼쪽 gif 이미지를 보니 문득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향수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두서없이 포스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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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0대...

Miscellaneous/Story 2007. 9. 14. 03:46
며칠 전에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에게 상담 요청을 받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내용인 즉, 이 바닥에서 얼마나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결혼도 해야 하고 앞으로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앞날을 위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 아닌 질문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른 후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움…내 나이가 벌써 상담을 할 나이가 되었단 말인가..ㅠ.ㅠ;;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확실한 미래에 대한 설계는 아직 없다. 언론이나 인터넷 상에서 한국의 IT 업계는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필드에서 작업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며 과연 우리나라 IT 업계가 나의 입장을 얼마나 인정해 주고 지원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장사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있을까…. 돈이 없어서? 장사할 의지가 없어서? 지금이 편하기에? 이런 단서가 나의 입장을 모두 대변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사람들이 다니는 직장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생각을 할 때쯤에 형은 전산관련이나 전자관련 회사에 가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난 기필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찾고 싶다고 이곳에 왔다. 바보스럽게 묵묵히 나름대로 공부를 하며 그래도 내 나름대로 만족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어디까지 와 있고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어리고 어떻게 보면 나이든 나이가 되 버린 지금, 우리 나이 또래라면 나 같은 고민에 잠자기 전 되새김질 하는 친구들이 꽤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이야기다. 정답도 없고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도 없다. 그냥 스스로 알아서 진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타인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날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내가 얼마나 살 것인가를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 고작 해봐야 30년에서 50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하물며 우리 부모님들은 어떠한가를 생각하면 연락도 자주 드리고 효도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마음은 항상 부모님 곁에 가 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생각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내 생활이 힘들다는 핑계로 그냥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속상할 때가 많다.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중요한 것을 충분히 만족하고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은 스스로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성찰을 통해서 자기반성을 하고 있지만 쿠쿠 사실 스스로 느낄 뿐이지 남이 알아줄 것은 아니다.

이 업계에서, 또 나이 면으로도 내가 많이 살아보진 않았지만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들에게는 한마디 하고 싶다. 과거의 아쉬움은 앞날을 위한 경험이며, 현재 힘든 것은 남의 탓이 아니며, 미래에 대한 고민은 지금 느끼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그 시기와, 그 환경에 대한 판단이 설 때, 진정 자신의 인생에 위해 한번 질러보길 바란다. 그 전에는 현재에 대한 어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할 시기에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완벽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 하다 보면 시나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높은 꿈을 품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IT 파이팅, 플래시 파이팅, 후배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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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과도한 트래픽 발생...

Miscellaneous/Story 2007. 9. 4. 21:08
가끔 한번씩 특정 시간 동안 블로그 트래픽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있다. 검색 로봇의 카운트를 제외해 놓기는 했는데 그 원인이 검색 로봇 문제인지 아니면 메타블로그에서 rss를 긁어가기 때문인지는 확인이 안되고 있다.

Google Analytics 설정을 해 놓았으니 한달정도 지켜보고 확인을 해 봐야 겠다. Google Analytics를 사용해보지 않은 분들이 있으면 계정 등록후 사용해 보면 블로깅의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Google Analytics는 여러가지 분석을 해주는데 사용 방법은 생성된 코드를 블로그 html코드에 붙여 넣기만 하면 방문자수, 페이지 뷰어 지수, 나라별 접속, 재 방문율, 페이지뷰 심도, 브라우저, 운영체제, 언어, 플래시 버전등 웹 분석 기능의 대부분을 지원해 주고 있다.

설정을 한지 한달이 되지 않은 관계로 한달정도 경과한 후에 Jasu's blog 접속 통계를 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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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설 문화?

Miscellaneous/Story 2007. 8. 27. 11:37
얼마 전부터 집 앞 건물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 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이틀 동안 그 큰 건물이 허물어졌다. 건물을 허물면서 날리는 먼지 때문에 이 더위에 창문도 못 열었었는데 건물 허무는데 이틀이 걸렸고 만 하루 동안 건물 잔해가 없어졌고 지금은 건물 기초 공사에 들어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골조 사이에 시멘트를 부어대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비가 올 때 시멘트 작업을 하게 되면 과다한 물기와 기포 때문에 기초공사가 부실해 질 수 있을 듯싶은데 작업 하시는 분들은 비가 와도 아랑곳 없이 작업에 열중이다.

이 속도라면 5층 이상 될 거 같은 건물은 한달 만에도 지어질 수 있을 듯싶다. 우리나라는 재건축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면 설계나 실질적인 공사 과정에서 모니터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있다고 한들 힘이 있겠냐만은…

앞 건물이 없어지면서 창문을 열면 시야가 시원했는데 빠른 속도로 건물이 다시금 올라오고 있어서 답답함이 밀려 온다… 내년에 이사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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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의 애드센스를 달다...

Miscellaneous/Story 2007. 8. 16. 22:09
재미 삼아 Google의 애드센스를 달아보았다. 블로그에 외부의 광고를 단다는 것이 디자인 적으로나 컨텐츠의 가독성 면에서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동안 달지 않았었는데 텍스트 색과 배경색 크기 등을 비교적 다양하게 지정할 수 있어서 적용해 보았다.

https://www.google.com/adsense/ 이곳을 방문하면 한글로 등록 및 안내를 해주고 있어서 초기 애드센스 등록할 때보다는 손쉽게 계정을 만들어 적용할 수 있다. 등록 요청을 하게 되면 일정기간, 보통 2일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오전에 신청하고 오후에 메일을 통해서 승인이 떨어졌다.

메일이 도착하면 안내하는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등록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개인 정보입력에서 영문 집주소를 입력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수익이 일정금액(100달러)에 도달 했을 때 기준으로 수표를 우편으로 받을 곳이기에 정확하게 표기할 필요가 있다.

영문 주소 번역은 웹사이트에서도 간혹 지원하고 있는 듯 한데 아래 올려놓는 파일을 다운 받아서 사용하면 유용할 듯싶다.



개인정보까지 모두 마무리하면 자신이 노출하고자 하는 광고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종류는 콘텐츠용 애드센스, 검색용 애드센스, 추천 이렇게 3 종류로 구분되며 현 블로그의 경우는 콘텐츠용 애드센스에 해당한다.

콘텐츠용 애드센스로 들어가면 광고 단위와 광고색상 및 추가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설정을 끝내고 다음을 클릭하면 채널 등록이 있는데 채널 별로 광고를 관리하는 기능 같은데 자세한 것은 아직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블로그 주소를 가지고 타겟팅 기능 채널 하나를 추가했다.

그러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애드센스 코드를 볼 수 있는데 이 코드를 복사해서 적용하고자 하는 블로그나 웹사이트의 해당 페이지 <body> </body> 안에 적당히 적용하면 페이지 내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애드센스 코드를 임의로 변경할 경우 수익 지불을 거부당할 수 있다고 하니 설정한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초기에는 광고가 나타나지 않고 추가옵션에서 설정한 대체 광고 또는 색상이 자주 노출된다고 하니 등록 과정을 마치고 하루 정도 지나봐야 할 듯싶다. 일단 애드센스를 다는 과정은 생성된 코드를 html에 적용하는 것 까지만 하면 모든 설정은 끝난 것이니 지켜보면 될 듯싶다.

간혹 부정클릭으로 인해서 Google로부터 수익 지급을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하다. 부정 클릭은 대부분 본의 아니게 외부의 부정클릭을 유도하는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많이 발생하는 듯 싶다. 이 또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색페이지에서 애드센스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 보면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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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수(jasu)는 닉네임이 자수(jasu)인가?

Miscellaneous/Story 2007. 8. 9. 23:34
가끔 닉네임이 왜 자수(jasu)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여러가지 뜻을 볼 수 있는데 사전에서의 자수라는 단어의 뜻은 상당히 상반된 뜻을 지니고 있다.

사실 자수라는 닉네임은 예전에 PC통신 시절 천리안의 모 클럽의 익명 게시판에서 활동을 할 당시에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작명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뜻을 생각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단어의 뉘앙스가 좋아서 사용하게 되었다.

사전에서 나쁜 뜻은 버리고 좋은 뜻으로만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자수 [自手] : 자기 혼자의 노력이나 힘.
자수 [自守] : 행동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
자수 [自修] : 남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학문을 닦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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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적성검사 어렵다 어려워...

Miscellaneous/Story 2007. 8. 9. 18:08
오늘 한국행동과학연구소라는 곳에서 인성, 적성 검사를 받았는데 생각 외로 문제의 난이도가 높다. 문제는 어렵고 시간은 부족하니 한 영역당 20문제에 5분 내지 6분의 시간이 주어져서 문제가 정말 문제로 다가왔다..아흐...

한 영역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몇 분 남겨두고 문제를 파악하는 바람에 몇 문제 풀었나...쿠쿠 수능 시험 이후에 가장 어려운 문제들로 시험 아닌 시험을 보게 된 것 같다.

적성검사의 마지막 문제 중에는 그림 세 개를 제시하고 특이 사항이나 질문에 대한 창의적인 답을 서술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첫 번째 그림은 불규칙한 패턴 형태의 그림이었는데 문제는 그 그림을 보고 연상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서술하는 것이었다. 밝은 부분관 어두운 부분이 구분되어 물 위에 기름을 부은 것 같아서 그렇게 적었다. 카오스 이론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장황하게 쓰려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그냥 대충 규칙이 있다고 이야기 해버렸다.

두 번째 그림은 몇 가지 채소 그림이 있고 그 것들을 음식 이외에 사용할 방법에 대해 서술하라는 문제였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배도 고프고 해서 한동안은 침만 삼키고 있다가 으깨서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했다.

세 번째 그림은 어떤 여인이 바닷가에 있고 그 근처에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쓰레기와 드럼통이 있고 그 여인이 서성거리는 그림이었는데 일단 배가 난파되어 배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찾는 모습이라고 적었는데 그림을 더 보고 있자니 근처에 배도 보이고 육지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이 사람이 꿈을 꾸고 있다고 적었다..쿠쿠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안 준다. 아나… 생각 많은 놈인데 적성검사가 날 생각 없는 놈으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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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에 감기인가...

Miscellaneous/Story 2007. 8. 3. 06:18
며칠 전부터 목이 슬슬 아프더니 이제는 목도 아프고 눈알을 45도만 돌려도 뻐근하게 아프다...아흐...
누구보다도 병원 가기를 싫어하는지라 혼자 병원가기도 싫고 따뜻한 물만 끓여서 마시고 있는데 더워서 죽을 맛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니 몸상태가 좋지 않은 듯 싶다. 오늘 부터는 운동을 위해 자전거도 타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그래야 겠다....

서울 공기는 너무 안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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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추천 블로그 입성

Miscellaneous/Story 2007. 7. 2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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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많이 올라가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쇼곱하기 쇼 CF에 관해 아무 생각 없이 올렸던 글을 검색하여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티스토리 공식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니 추천 블로그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티스토리를 시작할 때 이 추천 블로그 리스트에는 어떻게 올라가는지가 궁금하여 티스토리 관계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대외비라며 활발한 블로그 순으로 리스트에 등록된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던 기억이다.

티스토리를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인터넷 상에서 오픈 되어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자료 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은 방문자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분들과 친분을 많이 쌓고 싶다.

아무튼 내 블로그가 세상과 소통하는데 예전보다 조금 더 열려 있는 듯 하여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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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인가...쇼곱하기 쇼는 쇼

Miscellaneous/Story 2007. 7. 27. 00:36


요즘 한참 나오고 있는 CF 쇼곱하기 쇼는 쇼에서 오브젝트가 복제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화면이 느려지는 현상 처럼 보이는 것을 보니 가슴 한 구석에서 답답함이 밀려온다...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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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잠 때문에 날샜네...

Miscellaneous/Story 2007. 7. 10. 05:23
쉬는 기간이 10일 정도 지나니 점점 시차적응이 되지 않고 있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깼더니 잠이 안 와서 결국 날 샜다… 출출해서 냉장고에 넣어놓은 샌드위치를 꺼내보니 너무 안쪽에 넣어두었는지 한쪽이 얼어있네.. 이런….
더 이상 잠도 오지 않고... 에공 조금 있다가 CS3 신제품 발표회에 가야겠다… 이건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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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되던 날에...

Miscellaneous/Story 2007. 6. 30. 02:14
오늘 부로 2년 3개월 가량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쉽게 생각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면 한없이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은 회사였는데 내가 왜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대변해 준다.

그 동안 나는 주어진 작업에서 최선 보다는 우선을 생각했고, 그것은 이 바닥의 어쩔 수 없는 프로세스에 의해서 생겨난 전투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는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의 아쉬움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배운 점도 많다.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했던가… 인문계열 고등학교를 나와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내가 직접 만들기는 어렵더라도 디자인의 바람직함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취미로만 느꼈던 이 재미난 놀이가 먹고 자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주었던 기간이었다.

현재는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의 나의 느낌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회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새로운 앞날에 대한 내 기대치에서 나오는 행복일거라 나는 믿는다. 획일적인 일상 속에서 쌓였던 번뇌를 씻기 위해 나는 당분간은 폐인모드로 생활해 볼까 한다. 밥 먹고 자고 일어나, 공부하고, 자전거 타고, 여행도 가고, 바다도 보고… 이 시대의 회사원들이 평일에 하지 못하는 것들을 골라서 해볼 참이다…쿠쿠 생각만 해도 당신은 부러워 할꺼다… 메롱~

어쩌면 난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다 시계를 보고 발작을 일으키며 헐레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밍밍이는 하품을 할게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이미 평일 아침에 정해진 약속 시간까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규칙을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될거고, 나는 그 행복을 이불 삼아 덮고 행복한 꿈을 꾸겠지…
.
.
.
.
꿈1
꿈2
꾸움3
.
.
.
아무튼 나는 백수다. ㅠ.ㅠ


추신 : 그 동안 살갑게 지내던 회사 내 많은 분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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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3 공부를 하며...

Miscellaneous/Story 2007. 6. 18. 00:37
flalab 모임에서 받은 CS3를 깔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윈도우를 밀고 사용중이다. 아직 국내 AS3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서 외국 사이트 및 튜토리얼등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도비 사이트에 있는 자료가 상당히 도움을 주고 있다.

예전에 블로그에 만들어 놓았던 Infinite 메뉴 부분을 CS3로 꾸며보기 위해 준비중이다. 아직은 CS3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벤트 처리의 상세한 부분까지 개념을 잡지 못했고 AS3의  패키지가 정리는 잘 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용해 보지 않은 기능들이 많아서 import 전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일단 ActionScript 3.0을 공부하는 진도에 따라서 차근차근 Infinite 메뉴는 구상해봐야 겠다. 외국에 비해서는 많이 늦은 감이 있는 공부지만 papervision3d를 만지작 거리다보면 AS3를 공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력적인 엔진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3d관련하여 재미있는 결과물들을 많이 도출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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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들어간 날 횡설수설...

Miscellaneous/Story 2007. 6. 15. 23:37

개인적으로 쓸쓸한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내가 대견 스럽다쿠쿠 한동안 내가 침체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허전한 마음에 내 안을 채울 무엇인가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재미를 찾은 것 같아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누구의 말처럼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러한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만들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지금 해야지 훗날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여자친구는 글쎄 지금 과연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과연 그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여 잘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끼워 맞춰보니 역시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에 그까짓것 못할소냐 혼자 살면 모르되 나중에 여친이 생기고 결혼할 여자가 생긴다면 지금의 나를 인정해 줄거라 믿는다.

쓸쓸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행복이란 반을 쪼개서 반을 버리고 나머지 반을 위해 목숨을 내 맏기는 것이 아니라 반을 쪼개어 반은 남에게 주고 반은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술을 조금 마시긴 했지만 공부는 하고 자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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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를 느끼며...

Miscellaneous/Story 2007. 6. 12. 02:31

오랜만에 포스트를 쓰게 된다.
플래시라는 툴을 알게 된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는 듯 하다. 그때는 액션스크립트라는 개념 보다는 웹디자인을 위한 저작도구로서의 가치가 급부상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언어 형태의 작업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대학시절 내가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플래시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때 보기 좋게 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했고 그런 작업 자체가 그냥 나의 작은 즐거움이었기에 관심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대학 졸업과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난 지금의 회사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집에서 개인 홈페홈페이지를 만들 때 사용했던 MX는 더 이상 실무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Mx 2007 플래시를 열어보고 툴 사용법부터 하나하나 책을 뒤져가며 다시 공부해야 했고 그 과정속에서 짧지만 좌절도 겪었다.

혼자 서울로 상경하여 두번째 직장인 이곳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작업 자체에 만족할 수 없는 경험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작게만 느껴졌었다.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적으면 적은 시간이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이다. 그 기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마땅히 집에서 할일 없어서, 또는 해야하는 일이였던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속에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지금까지 플래시를 만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에 플래시 모임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회사내 팀 회식이 같은 날에 잡혔었는데 두 모임 모두 공교롭게도 1주가 밀리면서 같은 날자에 잡혔으나 약간의 슬럼프에 빠져있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플래시 모임에 참가를 했다.

온라인 상에서 안면이 있던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형님들도 있었고 나보더 나이어린 동생들도 볼 수 있었는데 그 두 부류 모두 하나의 공통점은 배울점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배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고 머리로 익혀야 하는 배움 보다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배우는 배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머리로 배우는 배움은 단편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눈이 보이지 않으나 느낌으로 배울 수 있는 배움은 소설과도 같다.

후자는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 언제 어느 때나 배울 수 있다. 다만 그 배움이란 것은 남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이기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나는 한참 플래시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플래시라는 툴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랜만에 좋은 분들과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 작지만 큰 배움을 얻었던 하루였다. 그날 참석했던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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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변화를 꾀하고 싶다.

Miscellaneous/Story 2007. 5. 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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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듣게 되는 인터넷 방송...

Miscellaneous/Story 2007. 5. 3. 02:50
평택 촌놈이 서울로 상경한지 벌써 만 2년을 넘기고 있는 듯하다. 사실 그 전에는 나의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구조를 짜놓지 않은지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한적이 많은 것 같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딱히 내 전공을 살려서 서버관련, 프로그래밍관련 IT업에 종사를 하고 싶은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졸업을 할 때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국민학교) 때는 막연히 대통령, 비행기 조종사, 과학자 등등으로 광대하지만 어설픈 꿈을 꾸고 있었고 중학교에 가서는 국문학을 전공하며 신춘문예 당선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컴퓨터를 접하면서 프로그래머를 꿈꾸게 되었다.

문과에서 이과계열로 대학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큰 손해일 수도 있었지만 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외골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컴퓨터를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는 것 없이 JAVA를 가지고 수정 불가능한 코딩을 시작하면서 재미를 붙였지만 학교 공부에 대해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기초적인 부분부터 탄탄하게 공부를 해둘 것을…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그때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느꼈던 스파게티 코딩에서의 말도 안 되는 에러 수정 능력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어학연수라는 부풀은 꿈을 안고 대학 졸업식 바로 다음날 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가족의 반대와 형의 충고가 있었지만 기회가 찾아왔을 때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내 자신에게 보내는 자책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판단에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외국생활에 실패를 했다. 처음 품었던 야망은 생활한지 얼마지 않아서 사라져버렸고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홈스테이 가족들과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생활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을 떠나기가 어려웠었는데 막상 캐나다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곳의 생활이 어떠하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돌아가는 것은 곧 내 자신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 생각해서 였을 것이다.

나는 캐나다로 떠나기 전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이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3개월동안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캐나다를 가지 않았으면 지금은 더 큰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해보았고 캐나다 땅을 밟아 봤기 때문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가보지 않은 것과는 다르다. 그때 배려를 해주고 도움을 주었던 분들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돌아와서 얼마동안 근신을 하고 1년 정도 수원에 있는 회사에 첫 취직을 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다. 취미와 알바로 하던 일이 웹이라 웹마스터 개념으로 뽑고 있는 식품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회사 홈페이지를 구상하고 외부 제작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유지보수를 하면서 나름 업무성격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얼마지 않아서 점점 내 본업과는 다르게 백화점에서 영업도 하게 되고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면서 내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만 1년이 되는 날에 나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자신의 질문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정리가 되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2%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제는 ‘무엇’ 알았고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부분은 행동하며 생각할 부분이라 ‘무엇’을 알기 위해 고뇌했던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집에 케이블 TV 방송이 나오지 않아서 새벽이면 주로 인터넷방송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버렸다…나도 참…

내가 자주 듣는 인터넷 방송은 뮤클케이스라는 인터넷 방송이다. 가지고 있는 mp3음악을 듣는 것 보다 가끔 맨트도 나오고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새벽에는 항상 틀어 놓고 공부든 작업이든 하고 있다.

http://ad.mukulcast.com/mukul_player/?skin=2&auto=y

위 링크를 들어가면 바로 방송을 들을 수 있으니 인터넷 방송을 접해보지 않았던 분이라면 들어보기 바란다…난 빨래 널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자야겠다…모두 좋은 꿈 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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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문답

Miscellaneous/Story 2007. 3. 26. 14:11


사람의 심리와 성격 유형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문답형을 학문화 하면 MBTI, DISC, TA, NLP 와 같은 새로운 학문적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문답을 알게 해준 쭈야님 외 다른분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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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카운터 10000회 기념...

Miscellaneous/Story 2007. 3. 20. 09:10
블로그를 개설한지 2달도 되지 않았는데 방문 카운트가 1만회를 넘었다. 혼자 사용하는 일기장처럼 편하게 사용한다고 하지만 방문하는 분들을 보면 결코 쉽게 글을 쓸 수가 없다.

항상 보고 쓰는 단어도 가끔은 'ㅐ' 인지 'ㅔ'인지 혼돈하기 일수고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어휘는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확신이 서는 것을 보면 유지를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는 블로그를 자주 방문해 주시는 단골 블로거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 때면 그분들에게도 나의 작은 웃음과 기쁨, 즐거움과 앎의 즐거움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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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Miscellaneous/Story 2007. 3. 14. 02:01
회사를 끝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만두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집에 들어와 으레 그랬듯이 컴퓨터를 켜고 티비를 켠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다. 내 가치와 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시험할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한다.

술 한잔 하고 싶은 밤인데 빌어먹을 이 많고 많은 서울 사람 중에 술 한잔 기울일 친구도 없다. 고향에 있으면 고등학교 친구들이라도 모여서 넋두리를 안주 삼아, 생산적이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앞으로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과 선택 받아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현재의 어려움이 진정 인생에서의 어려움인가.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바라볼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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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향집 평택을 다녀오다...

Miscellaneous/Story 2007. 3. 12. 02:02
오랜만에 평택을 다녀왔다.
전날 가족회의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토요일 저녁에 내려가려고 한 것이 하던 일을 마무리 하다 보니 아침이 되어서야 차를 몰고 평택으로 내려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가끔 평택을 내려가면 공기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평택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평택의 공기는 서울과는 다르다.

잠을 못자고 내려간 터라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놓고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조카 태규의 목소리에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보니 청주에서 어머니와 누나 조카들이 집에 와있었다. 고향 집은 평택이지만 어머니는 청주에서 일을 하시고 누나는 결혼 후 청주에서 살다 보니 우리 가족의 제 2의 고향은 청주가 되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1년 사이에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듯하다. 평생 농사를 지시고 무모한 사업보다 안정적인 농사일을 평생 하시고 사셨는데 이제 건강상의 이유로 내년부터는 모든 농사를 하지 않으실 듯 싶다.

여럿을 때는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농사 일을 도와드렸는데 머리가 크고 내 생활들이 늘어나면서 반항을 했던 나였다. 지금은 그 때의 내 행동에 많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나의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과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여럿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우울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서로 싸우고 힘들어 하면서 왜 같이 사시는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정이 많으시고 말 수가 없으시며 무모한 일을 벌리지 않으신다. 그런 반면 어머니는 외향적이시고 말이 많으시며 확신이 서는 일에 대해서는 추진하는 성격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난 그때 마나 조금은 어머니 편에 서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항상 크게 싸우는 날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신 날이었고 싸우는 내용을 들어보면 시시콜콜 어머니의 말이 옳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엇 때문에 싸우셨는지 어떻게 타협을 보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두 분의 성격으로 인해서 아버지는 평생을 농사일을 하시며 사셨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난전 장사도 하시고 돼지와 같은 가축을 키우시기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라 어머니는 니어카를 가지고 시내(집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40분정도의 거리었다)에 가서 음식점에서 버리는 짬들을 모아서 돼지를 키우시기도 했다. 한 여름에는 그런 어머니를 도와주겠다며 뚝에 가서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던 기억이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가 상당히 엄하셨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쉬운 것 없이 사셨던 어머니였는데 옛날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할아버지의 반대로 인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항상 가지고 사셨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다른 남아들보다 공부를 잘 하셨다고 한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나 자식으로서 믿는다 ^^)

그래서 그러셨는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까지만 해도 방학이 되면 항상 아랫목에 이불을 놓고 식구들이 뺑 둘러 앉아서 책을 보거나 어머니가 정해놓은 분량까지 문제집을 풀거나 수판을 놓고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숫자를 더하고 곱하는 일상 속에 살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나기도 했는데 어느날은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어느 집에서 불이 난 것이다. 소방차가 와서 불을 끄고 있는 것을 구경하다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었다. 어머니는 문제집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셨고 들어오자마자 늦게 온 나를 혼내시기 시작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께서 풀어놓으라는 문제집이 있었는데 그 문제집의 답안을 보고 머리를 써가며 중간중간 틀린 답을 넣기도 하며 베껴놓았던 것이다. 답안 중에 답이 길어 “생략” 이라고 되어 있는 답까지 그대로 베껴놓았던 터였다. 이를 어머니가 눈치 채셨고 그 문제로 단단히 혼내시려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날 하필 동네에 불난리가 날게 뭐람…쿠쿠 그래도 불 구경은 재미났던 기억이다.

이렇게 어머니는 공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하셨는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에 손을 놓으셨던 것 같다. 어느날 학교에서 우수상을 받고 어머니에게 칭찬 받을 생각에 날듯이 좋아하며 집으로 달려왔는데 어머니는 일을 나가시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 내가 보여드리는 상장을 보시고도 별로 칭찬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때 만약 어머니께서 많은 칭찬을 하셨다면 그 칭찬의 힘은 지금의 나 보다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

아버지는 공주 출신으로 말수가 없으시고 말이 느리신 전형적인 농부시다. 우리집의 일보다 이웃들의 일들을 먼저 챙겨주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셔도 큰 노여움 없이 궁글게 살아오셨다. 농사라는 것이 바쁠 때는 한 없이 바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을 하실 때면 술 기운에 일을 하셨고 그러다 보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신 듯 싶다.

저녁쯤에 누나와 조카들 그리고 어머니는 청주로 내려가셨고 집에는 형과 나, 그리고 아버지만 남게 되었는데 우리집 남자들은 말수가 없어서 같은 지붕 아래에 생활하고 있어도 하루에 몇 마디도 하기가 힘들다.

저녁을 먹고 서울로 올라간다며 아버지와 형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와서 차에 시동을 켜고 앉아 있는데 불이 켜진 거실 창문에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말 한마디 사는 이야기 하지 못하는 과묵한 내가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안 좋아 지시면서 더욱 쓸쓸해 보이시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 한번 나누지 못하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 많이 죄송스러웠다…

이제는 혼자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오래도록 떨어져 있어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마저 잊고 사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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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환생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2:02

나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돋아난 지, 인간 세계에서 말하는 날짜로 세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도정에 있어서 자신의 궤도를 찾는 것이 대단한 외부의 충격이나 논리적인 근거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파리들은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행동을 하는 파리를 보아왔지만 나와 같은 생각에 하루종일 천장에 붙어서 사색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특별한 파리임을 알게 되었고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 진로에 대한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주변환경이 너무나도 삭막하고 허전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것을 인식했을 무렵, 인간 세계에서 추구하는 보편적인 지식과, 그 지식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모든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삶의 원천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성대는 참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의 인체구조와 파리 몸의 특성이 너무나 도 달랐기에, 인간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삶의 한 체념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은 개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사색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형상들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내 행동은 인간들의 감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부수적으로 생산해 내는 유기물을 섭취해야만, 목숨을 지탱할 수가 있다. 이런 비굴한 삶 속에서 인간들과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앎에 대한 도전과 그 도전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아침 7시에 현관문을 열고 밖의 세상에 첫 오른발을 사용했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정체된 공간을 탈퇴하여 미지의 세계인 집 밖의 경험을 향하여 첫 날갯짓을 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었다.


밖의 세상은 집주인의 어깨너머로 보아온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공기는 혼탁했고 기류는 불규칙적이어서 정상적인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고난을 극복하고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공간'이라는 간판 위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고 정체된 공간에서 나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닫힌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도 광대한 불량의 책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제목들만 읽어도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지식의 세계였다.


서점 안을 배회하다가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였다. 제목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여운에 휘말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뽑아 읽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때였다. 한 마리의 파리가 창공을 비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푸리르푸리프프르리?"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푸레히프라프리히르프히리프리리푸르리, 푸리히프르리히히리르르."


("내 주변에 있던 파리들은 모두 집주인의 손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래 서 집을 나왔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곳에 정착했다.")


"푸리히르피리니리히?"


("이곳에 먹을 것은 많은가?")


"푸히리디리니히리르리히느피리, 푸리히르히르피니느리히."


("이곳에 먹을 것이라고는 인간의 피부에서 나오는 찜찜한 액체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파리는 떠난다는 말을 하고는 허공으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이 파리는 끝내 출입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굶어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심코 휘두르는 손에 의해서 죽 을 것이 분명했다. 이 파리는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몽매했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파리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책으로 향했지만 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인간의 손에 책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책은 분명 내가 마음에 두던 책이었다. 나는 급히 날아올라서 그 인간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책을 든 인간은 지식의 공간에서 나왔다. 그러고 어떤 기계에 실려서 어디론가 향했다. 나의 판단으로는 내가 살았던 곳처럼 그런 작은 공간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을 때,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 의 방으로 들어와 가져온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하루 동안 사용한 허물을 벗 고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리라는 생명체는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이곳에 있던 파리들은 이 사람의 손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나의 생존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탈출할 곳을 찾아 헤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말이다. 그러나, 탈출할 공간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다시 날아올라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꼭대기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부터 바닥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날아올랐다.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아래로 향했다. 나의 눈에 보인 것은 힘없이 죽어 가는 한 마리의 파리였다.-파리에게는 이름이라는 것이 없다. 인간들처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족들끼리 서로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파리는 무엇인가를 먹었고, 그 이후로 날수 가 없었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나의 날개는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다. 다행이 평평한 면에 착륙할 수 있었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인간이 우리를 본 것이다. 나는 다시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날개에 힘은 없었지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공간을 탈출한 곳만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날갯짓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날개의 힘이 빠지는 것이 역력했다. 더 이상 날갯짓을 할 수 가 없을 때였다. 인간은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열려진 창문으로 남아 있는 힘을 다하여 공포의 적막 속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다행이었다. 아니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가 문제였다. 그 동안 추구하던 앎의 즐거움도 이제는 생존의 위험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예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안고있는 파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도시를 배회하다가 죽어 가는 파리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 고 했다. 나는 겨우겨우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으로 가자는 소리였다. 죽어 가는 파리의 안내를 들으면서 나는 어딘 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파리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의 주위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의 파리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생존에만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몸에 의지했던 파리는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한 파리가 날아와 내 품에서 죽은 파리를 들고 날아가 양명한 곳에다 떨구었다. 이것은 인간들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것과 같은 의식이었다. 그 곳에 모인 파리들은 슬퍼하지도 자신의 종족을 죽게 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서 먹이를 얻는 비굴함 속에서도 파리들은 인간들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 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파리라는 곤충이 인간들처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인간들처럼 힘없는 생명을 하찮게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에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인간들에게 대응할 수 없는 힘없는 한 마리의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삶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렇게 파리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낙상하려고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 나의 생존에 중요한 날개를 펴지 않고 그대로 도시의 저 밑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떨어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바람에 흩날려 잔디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익사하려고 호수에 나를 맡겼다. 하지만 그 행위 또한 나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고 물위에서 두둥실 떠다니기만 했다. 나의 죽음은 조물주가 원하지 않는 것일까, 끝내 자살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파리에게는 날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먹기 위해 날아야 하며 살기 위해 인간들을 피해 날아야 했다. 파리에게 날개란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방패였던 것이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지저분한 곳에서 생활하는 파리보다도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인간들은 파리의 날개와 같은 돈이라는 물질을 소유하려고 바동거렸다. 하지만 파리에게 날개가 삶의 방패였고 인간이 사용하는 돈이라는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삶의 무기였다. 인간들은 돈 때문에 동족을 죽였고 죽은 인간을 밟고 올라가 자신만을 높이려고 했다. 그 동안 인간들에게 가졌던 존경의 마음은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빛이 사라질 무렵, 내가 인간들의 비참한 세상을 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가슴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집주인은 아직 살고 있을까. 혹시라도 바뀌었다면 어떤 인간일까. 이러한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집주인이 아침 7시면 현관문을 열고 첫 오른발을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나는 아침이 될 때까지 현관문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나의 상상력은 그 특유의 활동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다.


"신문이오.."


어떤 인간이 이상한 기계를 타고 가면서 무엇인가를 던졌다. 이때 현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주인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빠르게 날개 짓을 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주인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좀 전에 던져진 신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은 예전의 모습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세상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이다.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집주인이 먹다가 흘린 밥풀에 앉아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집주인은 두꺼운 책을 들더니 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의 몸은 산산이 부서졌고, 내 존재 또한 그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날아올랐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무슨 곤 충 같아 보였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그 물체를 볼 때 억울하고 분한 느낌이 들었고, 나의 몸은 이상하게 뻐근했다.


나가 혼란스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그것을 보았을 때, 내 생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참한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존재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


"이보게 그만 가지...."


어디선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파리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나는 분명 듣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흰색의 반 투명한 빛뿐이었다.


"그래 나야.."


다시 한번 그 알 수 없는 빛에서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당신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이곳에 왔으니 어서 나를 따라오게나.."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물어 보려 했지만 그 빛은 어디 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이곳은 내가 보았던 밖의 세상이 아니었다. 주위는 모두 흰 구름뿐이었다. 그 알 수 없는 빛은 이제 더 이상 빛이 아닌 검고 투명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검붉은 빛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얼마쯤 갔을 때, 빛이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


"이제 다 왔다네, 어서 들어가 보게나."


그 검은빛이 말을 끝냈을 때, 보이지 않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러고 눈을 뜰 수 없는 빛이 나의 전신을 태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검은빛에게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 빛은 사라져 버리고 자리에 없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마리 파리가 보였다. 예전에 내 품안에서 죽어간 파리였다. 그 파리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어서 오세요, 당신을 이곳에서 또 만나게 되는군요."


나는 죽은 줄만 알았던 파리를 이곳에서 보니 반가웠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지만 질문이 바보 같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죽었고, 당신도 죽은 몸입니다, 전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그럼 좀 전에 보았던 그 물체가 나의 시체가 확실하다는 말인가? 나는 한순간 많은 의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 파리는 아무 말도 없이 이런 나를 일으켰다. 그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는 또 하나의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대기실입니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곤충들은 환생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먼저 당신은 할 일이 있습니다. 저 노란 문으로 들어가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하며 나의 등을 또닥거렸다. 들어가라는 눈짓 이였다. 힘없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노란 문으로 들어갔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실루엣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죽었습니까?"


난 억울한 나머지 죽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실루엣은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당신만 죽은 게 아니니 빨리 말하시오,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보이지 않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곤충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 신을 가다듬어 그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라색 문으로 들어가시오! 다음.."


그는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는 뒤의 있던 모기를 불렀다. 그러고 그 동안 나에게 했던 질문 을 반복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날아올라 보라색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문은 닫히고 공간의 사방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는 큰 고통을 느꼈다.


내가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죽어 있는 사람 주위에 많은 수사관들이 무엇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시체는 어디론가 옮겨졌고 얼마지 않아 죽은 시체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가 있었다.


서울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 이모군은 컴퓨터 입력장치 중의 하나인 마우스 케이블로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시체는 의자에 앉은 채로 죽었으며 컴퓨터 모니터에는 유언으로 보이는 짤막한 글귀가 있었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 시체의 해부를 의뢰한 결과, 케이블 선이 목울대를 파고 들어가 거의 목은 잘려진 상태였고 사실상 죽은 시각은 2001년 2월 26일 오전 3시 30분이라고 발표했다.


어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친 박현우 기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메모를 하던 박 기자는 "사실상"이라는 말에 의문을 갖고 물었다.


"사실상 죽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국립 과학수사 본부 대변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자정에 죽었으나 두뇌의 활동은 그로부터 3시간 30분이 지난 후 에야 정지했습니다. 그래서 본 수사본부에서는 이 시체의 죽은 시각을 뇌의 활동이 정지된 오전 3시 30분으로 발표하는 바입니다."


박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두뇌와 몸이 따로 죽었다는 말입니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수사본부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잠깐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한 번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사실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장이 정지하여 모든 혈관이 수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산소와 피가 뇌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뇌의 활동도 거의 몸과 같은 시각에 정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현재의 의학기술로 밝히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이 시체의 경우도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박 기자의 옆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두들기던 지현은 이렇게 물었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유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친필여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박 기자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단서라는 생각에 묻지 않고 있었다. 박 기자는 사건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얻지 못하고 취재하는 여자가 한심스러웠다. 수사본부 대변인은 심드렁히 답변을 했다.


"그 글은 친필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컴퓨터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유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현재로서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타살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사체가 있던 방에는 타인이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지문, 머리카락 하나 발견되지 않은 것이 타살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여기자의 엉뚱한 질문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며 박 기자는 물었다.


"그럼 이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살이군요?"


"그렇습니다."


"자살 동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고아로 자랐던 이 사람은 유난스럽게도 활달하고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한 순간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죠. 그래서 본 사건은 그 동안 쌓였던 자신의 삶에 대한 비관이 이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게 되었다고 추측됩니다."


바쁘게 메모지를 채워가던 박 기자는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여있는 많은 기자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이제 그에게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 기자는 자동 응답기를 틀었다. 집에 없는 동안 세 개의 음성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나는 그 동안 사귀던 여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자신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소홀히 했던 그녀였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현재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 뿐이었다. 두 번째 담겨진 음성은 신문사에서 박 기자에게 맡긴 기사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전화였다.


"어이..박 기자, 그 기사 빨리 마감해야겠어..내일까지 가능하지? 닭 대가리가 하도 성화를 해서 말이지..그럼 자네만 믿네!..."


닭 대가리는 기사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선배의 별명이었다. 박 기자는 다음 메시지를 틀었다. 어디서 들어본 여자 목소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 사이버 수사부에 근무하는 지현인데요..몇 가지 의논할 것이 있으니 오늘 저녁에 만났으면 합니다. 그럼 7시에 중앙극장 앞에서 기다리죠."


박기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방적인 약속이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할 일이라고는 몇 줄 안 되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으므로 나가기로 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박 기자는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여자일까 생각했다. 직업 때문이었는지 말투가 조금은 딱딱하게 들렸지만 어느 정도 들을 만 했던 터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박 기자는 시계를 보니 바늘이 7시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기자에게 나타난 여자는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던 그 여자였다.


"휴..제가 좀 늦었습니다. 자 가십시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끝까지 명령조인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기자회견에서 한심하게 바라본 그로서는 화가 났다. 박 기자는 기가 차서 이야기한다.


"이봐요!,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일단 어디나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자.."


지현은 박 기자의 소매를 잡아끌며 이야기한다. 박 기자는 어이없는 웃음으로 마지못해 따라갔다. 커피숍에 들어간 지현은 앉자마자 이야기한다.


"냄새 안나요?"


박기자는 일 때문에 며칠동안 씻지 않은 것이 찔렸지만 시치미 떼며 시큰둥히 되묻는다.


"무..무슨 냄새요?"


"오늘 자살사건 말이에요.."


박 기자는 속으로 안도했으나 이 여자가 또 엉뚱한 말을 할까 봐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요?. 그 사건은 이미 자살로 판명 되었잖습니까?"


지현은 손에 들고 있던 노란 봉투를 열고 무엇인가를 꺼낸다. 노란 봉투에서 지현이 꺼낸 것은 몇 가지 문서와 노끈이었다. 박 기자는 그것들을 보며 지현에게 묻는다.


"이것들이 다 뭐요?"


지현은 자신이 꺼낸 문서들을 뒤적이더니 한 장을 건네주며 박 기자의 눈을 응시한다. 한동안 읽던 박 기자는 기자회견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듯이 말한다.


"이건 사체의 부검 결과 아닙니까?"


지현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둔하시군"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건네준다. 그것은 박 기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키보드에 묻어난 지문의 감식 결과였다. 박 기자는 감식 결과가 사체의 것이라는 것을 보고 말한다.


"이건 사체의 지문이 묻은 키보드 아닙니까?"


박 기자의 눈을 주시하던 지현은 답답하다는 듯이 엉뚱한 질문을 한다.


"당신, 기자생활 얼마나 했어?"


"그건 왜 물어요? 5개월 됩니다. 왜요?"


"한심하긴.."


"뭐요?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집에 안 좋은 일 있나본데..난 당신하고 이렇게 한가하게 말장난 할 시간 없으니까 그만 가볼 랍니다."


박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다. 지현은 박 기자를 보지 않고 이야기한다.


"당신 특종 잡고싶은 마음이 없나 보네? 가볼 라면 가보슈..나도 멍청한 놈 앞에서 한가하게 떠들 시간 없으니까...."


박기자는 화가 날대로 났지만 지현의 '특종'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있는 터라 쉽게 되 앉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커피숍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왔다. 박 기자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 커피는 마시고 갈랍니다. 커피 둘 주세요.."


지현은 속보이는 박 기자의 행동이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박 기자는 노끈을 들어올리며 지현에게 묻는다.


"그건 또 뭐요? 아직도 기저귀 차요?..훗.."


박 기자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지현은 구접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이 친구야, 오늘은 아니니까 헛소리하지마. 그나 저나 특종 잡을 거야 말 거야?"


(얼씨구..이제 반말까지...)


그러나 박 기자는 특종을 잡고 싶었다. 그 동안 특종을 이리저리 선배들에게 빼앗긴 박 기자는 자신의 기자생활 위태롭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래 어디 드러나 봅시다."


지현은 노끈을 박 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었다면 마우스 케이블로 어떻게 목을 졸랐겠어요?"


박기자는 특종이라는 소리 때문에 수그러졌던 열이 또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특종이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지현을 잠시 본 박 기자는 노끈을 목에 걸고는 왼쪽의 내려진 끈을 오른손으로 잡고 오른 쪽의 끈은 왼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엑스자 모양으로 교차하고는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잘하는구먼."


박 기자의 행동을 본 지현의 말이었다. 박 기자는 하긴 했지만 자신의 모양새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기자는 잡고 있던 노끈을 내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이런 짓이 무슨 특종이 된다는 거요?"


지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그러고는 노끈을 들고 박 기자가 했던 것처럼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 당신이 좀 전에 이렇게 목을 졸랐죠?"


"음..잘 하네...훗."


박기자의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지현은 지지한 태도로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면 이런 식으로 자살을 했겠죠?"


"그렇겠지.."


박 기자는 시큰둥하게 말을 받는다. 지현은 좀 전의 문서를 보여주며 말한다.


"이 부검 결과를 자세히 보면 양쪽의 케이블 선이 앞쪽에서 교차된 것이 아니라 목 뒤쪽에서 교차됐습니다. 자 보세요.."


박기자는 부검 결과를 보며 과연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다. 종업원은 어느덧 다가와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박 기자는 자신의 견해와 전혀 상반된 자료를 보면서 지현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 사건을 타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박기자는 어느덧 진지한 모습이었다.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이걸 보세요.."


박기자는 흥분된 눈빛으로 문서를 보고. 지현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박 기자에게 설명을 한다.


"이건 죽은 대학생이 쓰던 컴퓨터 키보드에 묻은 지문의 감식 결괍니다."


박기자는 자료를 보고 이야기한다.


"결과가 사체의 지문이지 않습니까?..그렇다면 가해자의 협박으로 쳤다는 말인가요? 그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살인자가 자신의 지문을 키보드에 남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지문을 모두 지우는 것 또한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살인자는 사체의 지문을 키보드에 찍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한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


박기자는 궁금한 듯 지현을 바라본다.


"살인자는 키보드의 배열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까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길 보세요.."


지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 키보드를 보면 손가락의 위치가 전혀 맞지 않아요. 'ㅅ' 위친 데도 가운뎃손가락의 지문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도 그렇구요, 더욱 이상한 것은 오른쪽 손의 가운뎃손가락만 사용했다는 것이죠.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 키보드와 손가락의 위치를 모를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 손으로 치다니요..."


"...."


박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목이 잘릴 정도로 자신의 목을 조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살인자는 한 명이 아닌 둘 이상이었던 거죠."


박 기자는 지현의 말을 들을수록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사실일 때는 정말 특종 중에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박 기자는 서로 알지도 못했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여 지현에게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왜 저에게 하는 거죠?"


지현은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요즘 기자들도 검찰이나 정치인들 못지 않게 썩어있기 때문이죠. 모두 진실이 왜곡된 거짓으로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박 기자는 아직 그런 물이 들 정도는 아니라 생각되어서 입니다."


박기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동안 기자생활이 자신의 천직이고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기자부에서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러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박 기자는 지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속삭이듯이 묻는다.


"이 사실, 당신과 저만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지현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누가 또 알고 있나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입니다."


지현의 대답은 의외였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서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 왜곡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에게 묻는다.


"이 자료들은 언제 얻었습니까?"


"기자회견을 하기 이틀 전에 구했습니다."


"그럼 왜 기자회견 때 그런 질문을 했죠?. 친필여부를 확인했냐는 질문 말입니다."


지현은 박 기자에게 말한다.


"당신 같으면 무방비상태로 범죄자 앞에서 '나는 당신을 체포할 것이요'하고 말 하겠나?..하하하.."


지 현은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호탕하게 웃는다. 박 기자는 이제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사건은 자살이었고 이런 결과는 국립과학수사 본부에서 내려진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을 멀거니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오?"


지현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사건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자료는 많았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완벽한 그물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지현은 흐르는 침묵을 깨기 위해 억지로 입을 연다.


"앞으로 해야죠.."


그러나 과연 해야 할 일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박 기자는 그 동안 지현의 논리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대답만큼 자신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박 기자도 어느 정도 지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특종인 것은 사실이나 그물에 걸릴 고기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자칫 하다가는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그물이 오히려 주인의 목을 조를 판이었기 때문이다.


지현은 일어서며 박 기자에게 이야기한다.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당신 연락처를 아니까 제가 필요할 때 연락을 드리죠...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지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횡 하니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박 기자는 한동안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박기자는 다음날 선배의 독촉으로 마지못해 자살에 대한 기사를 써야만 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도록 지현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라 박 기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 기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포 하나가 도착해 있는 것을 보았다. 발송인은 기재되지 않았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을 때, 박 기자는 이 것이 지현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현이 보낸 자료에는 박 기자가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선양이라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기업이 채권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채권에 비리가 있었고, 이군이 선양기업의 서버를 해킹하여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눈치를 챈 선양기업의 고위급 간부들은 과거 중앙 정보부의 정보원 출신들을 고용하여 이 군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도 선양기업을 동조했다는 것이다. 박 기자는 이 엄청난 사실을 누구에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그 동안 지현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박기자는 지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여 동료 기자를 통해 알아보았다. 지현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현이 죽은 날은 박 기자에게 소포가 전달 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기자는 집으로 돌아와 지현에게서 왔던 소포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그 자료 중에 이 군이 죽어 있는 사진 속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


박기자는 이 책이 궁금하여 가까운 서점에 들려서 알아보았지만 시중에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었다. 박 기자는 책의 출판사를 방문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책의 초판을 발행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74년 6월로 기록되어 있었다. 박 기자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출판된 책이 왜 낯익었는지 의아해 하며 집으로 향했다.


박기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문이 열려 있었고, 누가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방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박 기자는 급히 지현으로부터 받은 소포를 찾아보았지만 자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5명의 괴한이 나타나 박 기자의 몸을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찔렀다.


또 다시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 당신은 파리에서 인간으로 환생을 하였지만 저승의 실수로 27년이 지나 당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왔고 죽은 시체의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승에서는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려 합니다."


나는 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주 오래 된 기억을 재생하듯, 나의 전생, 그리고 환생했을 때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선택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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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환생"은 고등학교 시절에 문과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초기 작품 아닌 작품을 썼던 글이다. 그 이후 여러 번 퇴고를 하고 내용을 변경했었는데 앞 부분의 파리 내용은 초기 파리의 환생의 내용이고 뒤에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김진명 작가가 썼던 "코리아닷컴"이 출판하기 전에 네띠앙에서 주관했던 이벤트( 소설의 앞 부분만을 공개하고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을 창작하는 이벤트)에 우연한 기회로 응모하여 최우수상으로 노트북을 상품으로 받았던 내용이다. 지금 보면 이런 글로 최우수상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이벤트를 통해 그렇게 큰 상품을 받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글을 이상하게 짬뽕 시켜 놓은 글이다. 예전 사이트에서 보이길래 이 글도 블로그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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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1:26

1998년 6월 어느날이었다. 생활의 모든 것을 이곳 사회에 두고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하기위해 내가 군 입대를 한지 2개월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곳, 바로 정동진 근처로 나는 자대 배치를 받았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바다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는 설레임과 군대라는 곳의 생리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 혼자가 아닌 동기 한 명과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가게 될 동기가 그 친구라는 것을 알고 다른 동기들이 어깨를 치며 '참 너 힘들겠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와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기였고 우리는 자대 배치를 받고 고참들의 기 꺾기 작전에 힘없이 당하면서도 그래도 동기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동기가 훈련소에서 발에 봉화직염(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작은 상처에 균이 들어가 살이 썩어 고름이 고이는 병)에 걸려 육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다.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나보다는 눈치가 없어 고참들에게 갖은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에 뒤 돌아서면 나에게 웃음을 보이는 동기였는데 이제 나 혼자 남아 막내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자대 배치 받은 곳은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동진 조금 위에(산 하나 넘으면) 심곡항과 금진항 사이에 있었다. 소초가 산 꼭대기에 있어서 새벽에 근무를 나가기 위해서는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나는 자대 배치를 받고 대기기간(자대 배치를 받고 일,이주간은 대기기간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청소 하는 법부터 배우는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부 소대장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익혔다. 프로태권도 한국 챔피언이었던 나보다 한 살 위인 부 소대장은 떡 벌어진 멋진 몸과 어울리게 터프하다 못해 싸이코 같은 행동을 많이 했었다. 나는 아침마다 부소대장을 따라 산을 뛰어 내려가 해안도로(심곡과 금진항을 잇는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에서 혼자 구보를 해야 했다. 1.5Km나 되는 거리를 부 소대장은 몇분 내에 돌아오라고도 하고 입에 바닷물을 물게 하고 뛰게 했다. 너무 힘이 차서 구토도 했지만 부 소대장은 그런 것은 아랑곳 없이 해안도로 난간에 매달아 놓고 윗몸 일으키기를 시키기도 하며 소초까지, 한 계단의 높이가 60cm도 넘는 계단이 150개가 넘는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게 했다. 이렇게 나는 혼자 대기기간이 풀릴 때 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나는 첫 근무를 나가게 된 날이었다. 이등병은 어디를 가나 항상 뛰어 다녀야 했다. 저녁은 먹고 나는 청소하기 위해 고참이 대걸레를 빨아 오라는 말에 대걸레를 잡고 빨아오는 도중에 비가와 미끄러운 땅에 넘어졌다가 일어나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런 나를 보고 고참은 걸레를 집어 던지며 걸레를 만들어 오냐며 가지가지 욕을 해댔다. 그때 청소 준비를 끝냈을 때, 부 소대장은 사병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오늘부터 막내 혼자 취사장 청소를 한다."

 

근 무를 나가기 전에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넓은 취사장 청소를 끝내고 나는 근무준비를 위해 사수의 복장과 화기, 근무 시간대를 외워 사수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날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청소를 끝내고 근무투입을 하기 전까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나는 청소하느라 첫 근무부터 사수의 복장과 화기, 브리핑까지 망쳐버렸다. 아직 다 외우지 못한 고참들의 이름과 근무가 돌아가는 방법에도 익숙치 않아 시간은 어느 정도 외웠는데 뒷 근무자와 앞 근무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근무지에 나가서 사수에게 근무지 이동 때마다 맞기만 했다. 세 곳의 근무지까지 이동하면서 수십 차례 맞아가며 이동을 했야했는데 좋지도 않은 길을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수는 m6공 사수였는데 화기 무게만 해도 10.195kg이나 되었고 200발 탄이 들은 탄 박스는 7kg이 넘는 무게였다. 거기다가 각종 야시경과 통신수단에 이용되는 장비들을 짊어지고 이동을 했다. 사수는 달랑 내 화기(k2)만을 어깨에 걸치고 이동했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했는데 후...속으로 욕을 한 만큼 근무지에서 맞은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첫 근무를 끝내고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소초로 돌아왔다. 그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내 화기를 들고 올라가는 수사는 어찌나 빠르게 오르던지 사수와 1미터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빨리 올라오라고 멱살을 잡고 하이바(방탄모)로 머리통을 내리치기 일수였다.

 

근 무가 끝났다고 부 사수들의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수들의 화기를 시금 장치(총을 누가 빼가지 못하게 잠가두는것)을 해야 했고 고참들의 복장과 잘 준비까지 모든 것을 끝내고 부 사수들은 복장을 풀고 씻어야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사수의 짜증스러운 말 한 마디에 다른 고참들에게 화장실에서 맞으며 두고 보겠다는 고참을 위협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나와 기상 시간이 5시 30분이라 20분도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라도 조금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잘 자리를 찾았는데 보이는 않았다. 나는 조금 틈이 있는 곳에 칼잠 자세로 쪼그리고 누웠는데 옆에 있던 고참은 발로 차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누우려 했지만 그곳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10여분 동안 잘 곳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모포(군에서 쓰는 얇은 이불)을 들고 화장실 병기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 눈에서 소리없이 서러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나 기상시간을 알리는 바로 윗 고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는 혼자 취사장 청소를 했다. 우리는 새벽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취사장 청소 때문에 다른 고참들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부 소대장이 나를 깨우더니 잠시 나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는 사병들과 간부들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고참들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고참들이 볼 까봐 몰래 부 소대장의 따라 나섰다. 부 소대장은 나를 취사장 쪽으로 데려가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어떠냐..많이 힘들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 여기 있는 고참들도 다 이런 시기를 겪고 짠밥을 먹은 거니까 너 혼자만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내가 힘들게 아침마다 다들 하지 않는 구보를 시키고 혼자 청소하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니까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뭐가 너를 위해서 였나 하는 것은 나중에 네가 짠밥을 먹으면 알게 될 거니까 그때 되서 생각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부 소대장은 취사장을 나가며 빨리 먹고 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초코파이의 꿀맛을 알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부 소대장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게 되었고 좀처럼 내 밑으로는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나와 동기였던 그 친구가 후송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 친구가 후송을 간지 2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 친구는 돌아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근무하는 방법은 커녕 고참들의 이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고참들 몰래 동기에게 고참들의 이름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몰래 말을 걸며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군대가 작은 사회라고 하는 것처럼 동기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상 동기와 나는 고참들에게 비교 대상이 되었고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 대를 더 맞기 일수였다. 그래서 나는 한 쪽으로는 가르쳐주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이를 갈며 그 동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고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동기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매장되고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한대를 덜 맞고 얼차려를 덜 받는 것이 군 생활을 해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7월이었다. 100일 위로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근무 끝내고 오침을 하고 있는데 11시 경에 소대장의 소리침에 벌떡 일어났다. 그 동안 몸에 배인 반사 신경이었다.

 

"기상!, 전원 A형 투입."

 

(A 형 투입은 모든 소대 인원이 두명씩(사수, 부사수) 모든 초소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때는 이동은 없으며 한 곳에서만 근무를 선다. 이밖에 B형, C형 근무가 있으며 내려갈수록 적의 침투가 어려운 날씨와 상황이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단축되며 초소를 몇 곳 밖에 점령하지 않는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C형 근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침도 하지 못하고 A형 투입을 했던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사수를 확인하고 사수의 복장과 화기, 장비를 챙기고 근무투입 준비를 마치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초소투입 장소로 사수와 이동을 했다. 근무지에서 근무를 스며 소초에서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초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챙겨왔던 통신장비가 고장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령이 주는 통신장비와 교체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지 않고 들고 왔다면서 사수에게 맞으며 혼이 났다. 전령을 통해 전해들은 상황은 적 잠수함의 탐지와 북괴군 시체 한 구가 해안에 떠밀려 왔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도개가 발령되었고 그것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근무지에서 반합(군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밥을 먹으면서 그날 24시간 근무를 섰다. 그리고 몇 시간 잠을 자고 또 A형 투입...이렇게 일주일 가량 A형 투입은 계속 되었고 낮에는 인근 산으로 수색을 나갔다. 뜻밖의 상황으로 내 100일 위로 휴가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고 하루하루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일 위로휴가도 가지 못하고 근무를 하러 소초에 투입되었다. 전에 있었던 상황 때문에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A형에서 한 단계 내려간 B형 근무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B형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A형에 가까웠고 근무를 하는 우리들의 수면은 부족할 데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부 사수들은 사수가 잠을 자더라도 북괴군의 침입을 사전에 발견하기 위한 근무보다는 순찰자들의 접근이 있는지 없는지 동태를 살피는 일이 더 급급했기 때문에 아무리 졸리더라도 눈을 뜨고 사방을 감시해야 했기에 피로도는 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얄미운 잠은 내 눈꺼풀 위에서 죽어라 누르고 있었다.

 

상황은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초소와 초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 임시 초소를 만들어 놓고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날은 걸어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임시 소초에 근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를 만나려고 사수가 장비를 챙기라고 했다. 우리는 임시초소에서 근무자들과 만나서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시초소에서 근무하는 부 사수는 나보다 엄청난 짬밥이 있는 부 사수였기에 물어볼 것 없이 사수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그 부 사수 고참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막내인지라 말도 못하고 비가 오는 밖에서 사방을 감시하는 척(사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해댔다. 나이도 동감이고 어린 것들이 비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앉으라고 하면 어디가 뼈가 부러지나 하면서...) 그렇게 멀뚱멀뚱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에게 임시 소초에서 근무하던 사수가 와서 비라도 맞지 말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도록 부 사수에게 일렀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더 사양했다가는 분위기기 심상치 않을 듯 싶어 이내 못이기는 척하며 쭈그리고 앉아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임시초소에 근무하는 부 사수는 이등병 때부터 고참들에게 총명을 받아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반면 그 고참의 동기 한 명은 고참들에게 총명 받지 못해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 짬밥인데도 후임병 몰래 맞거나 크게 혼을 냈다.

 

그날은 비도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전방 5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이었다. 사수들은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우리 부 사수들은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임시초소 부사수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그 부사수 고참은 평소에 나에게 군 생활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잘 해주는 고참이었다.) 나는 사수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안도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눈도 크게 뜨면서 참고 또 참았다.

 

임시 초소가 계단을 올라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바로 밑에서 사람이 올라오더라도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밤에 플래시 불빛이 없으면 아무도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주위에 플래시 불빛이 보이는 지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부터 잠깐 플래시 불빛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사수에게 말 하려고 할 때였다, 그 때는 이미 중대장이 초소 바로 앞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우리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중대장은 크게 호통을 치며 사수 둘을 데리고 갔고 우리는 졸지에 사수 부사수가 되어 그 초소를 지켜야만 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어갔다. 우리들은 서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근무지에서 순찰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모두 부사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소초에 도착하면 그 많은 고참들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엄청난 불화가 있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합리화하며 장비를 챙기고 소초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 근처에서 비를 맞으면서 손들고 서 있는 두 군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 유심히 확인한 결과 그 들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사수들이었다. 나는 사수들의 눈총을 애써 피하면서 걸었지만 지나가는 내 뒷 통수까지 그 눈빛의 힘은 느껴졌다. 우리가 소초에 복귀했을 때 고참들은 사수들은 어디다 버리고 오냐고 물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짬밥이 되고 총망 받는 부 사수 고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최대한 방패막이는 해 놓았다. 얼마지 않아 벌을 섰던 사수들은 소초에 어두운 표정으로 복귀를 했다. 다행이도 다른 근무지에서도 중대장이 플래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면서 작정을 하고 순찰을 나갔을 거라며 부 사수들의 큰 잘못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고참에게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사수가 순찰자를 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혼이 나긴 했다.

 

이러한 사건은 중대장의 역량에 따라 영창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워낙 근무인원이 모자란 시점이었기 때문에 영창을 가지는 않고 한가지 벌칙이 내려졌다. 비가 와서 소초로 들어올 기름을 싫은 군용차가 길이 미끄러워서 산으로 오르지 못하자 행정관은 중대장의 지시라면서 두 드럼이나 되는 기름을 산 꼭대기에 있는 소초까지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말통(20리터가 들어가는 기름통, 참고로 한드럼에는 200리터가 들어간다)을 하나씩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한 통씩 기름을 받아 운반하기 시작했다. 높은 계단과 높은 곳에 위치한 소초가 그날 따라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군소리 없이 기름통을 옮기면서 온 몸에 기름 범벅이 되었고 그러한 작업은 3,4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모든 기름을 운반했을 때는 모두 녹초가 되었고 오침이 끝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나는 기름을 운반하여 힘든 것 보다 그날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나고 피곤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벌칙으로 끝이나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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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대를 하고 얼마지 않아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썼던 글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이상한 집단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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