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환생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2:02

나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돋아난 지, 인간 세계에서 말하는 날짜로 세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도정에 있어서 자신의 궤도를 찾는 것이 대단한 외부의 충격이나 논리적인 근거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파리들은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행동을 하는 파리를 보아왔지만 나와 같은 생각에 하루종일 천장에 붙어서 사색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특별한 파리임을 알게 되었고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 진로에 대한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주변환경이 너무나도 삭막하고 허전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것을 인식했을 무렵, 인간 세계에서 추구하는 보편적인 지식과, 그 지식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모든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삶의 원천을 배우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성대는 참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의 인체구조와 파리 몸의 특성이 너무나 도 달랐기에, 인간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삶의 한 체념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은 개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사색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형상들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내 행동은 인간들의 감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부수적으로 생산해 내는 유기물을 섭취해야만, 목숨을 지탱할 수가 있다. 이런 비굴한 삶 속에서 인간들과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앎에 대한 도전과 그 도전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아침 7시에 현관문을 열고 밖의 세상에 첫 오른발을 사용했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정체된 공간을 탈퇴하여 미지의 세계인 집 밖의 경험을 향하여 첫 날갯짓을 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었다.


밖의 세상은 집주인의 어깨너머로 보아온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공기는 혼탁했고 기류는 불규칙적이어서 정상적인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고난을 극복하고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공간'이라는 간판 위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고 정체된 공간에서 나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닫힌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도 광대한 불량의 책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제목들만 읽어도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지식의 세계였다.


서점 안을 배회하다가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였다. 제목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여운에 휘말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뽑아 읽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때였다. 한 마리의 파리가 창공을 비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푸리르푸리프프르리?"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푸레히프라프리히르프히리프리리푸르리, 푸리히프르리히히리르르."


("내 주변에 있던 파리들은 모두 집주인의 손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래 서 집을 나왔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곳에 정착했다.")


"푸리히르피리니리히?"


("이곳에 먹을 것은 많은가?")


"푸히리디리니히리르리히느피리, 푸리히르히르피니느리히."


("이곳에 먹을 것이라고는 인간의 피부에서 나오는 찜찜한 액체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파리는 떠난다는 말을 하고는 허공으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이 파리는 끝내 출입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굶어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심코 휘두르는 손에 의해서 죽 을 것이 분명했다. 이 파리는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몽매했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파리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책으로 향했지만 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인간의 손에 책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책은 분명 내가 마음에 두던 책이었다. 나는 급히 날아올라서 그 인간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책을 든 인간은 지식의 공간에서 나왔다. 그러고 어떤 기계에 실려서 어디론가 향했다. 나의 판단으로는 내가 살았던 곳처럼 그런 작은 공간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을 때,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 의 방으로 들어와 가져온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하루 동안 사용한 허물을 벗 고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리라는 생명체는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이곳에 있던 파리들은 이 사람의 손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나의 생존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탈출할 곳을 찾아 헤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말이다. 그러나, 탈출할 공간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다시 날아올라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꼭대기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부터 바닥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날아올랐다.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아래로 향했다. 나의 눈에 보인 것은 힘없이 죽어 가는 한 마리의 파리였다.-파리에게는 이름이라는 것이 없다. 인간들처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족들끼리 서로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파리는 무엇인가를 먹었고, 그 이후로 날수 가 없었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나의 날개는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날갯짓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다. 다행이 평평한 면에 착륙할 수 있었다. 조용한 적막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인간이 우리를 본 것이다. 나는 다시 파리를 안고 날아올랐다. 날개에 힘은 없었지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공간을 탈출한 곳만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날갯짓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날개의 힘이 빠지는 것이 역력했다. 더 이상 날갯짓을 할 수 가 없을 때였다. 인간은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열려진 창문으로 남아 있는 힘을 다하여 공포의 적막 속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다행이었다. 아니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가 문제였다. 그 동안 추구하던 앎의 즐거움도 이제는 생존의 위험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예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안고있는 파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도시를 배회하다가 죽어 가는 파리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 고 했다. 나는 겨우겨우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으로 가자는 소리였다. 죽어 가는 파리의 안내를 들으면서 나는 어딘 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파리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의 주위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의 파리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생존에만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몸에 의지했던 파리는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한 파리가 날아와 내 품에서 죽은 파리를 들고 날아가 양명한 곳에다 떨구었다. 이것은 인간들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것과 같은 의식이었다. 그 곳에 모인 파리들은 슬퍼하지도 자신의 종족을 죽게 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서 먹이를 얻는 비굴함 속에서도 파리들은 인간들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 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파리라는 곤충이 인간들처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인간들처럼 힘없는 생명을 하찮게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에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인간들에게 대응할 수 없는 힘없는 한 마리의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삶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렇게 파리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낙상하려고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 나의 생존에 중요한 날개를 펴지 않고 그대로 도시의 저 밑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떨어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바람에 흩날려 잔디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익사하려고 호수에 나를 맡겼다. 하지만 그 행위 또한 나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고 물위에서 두둥실 떠다니기만 했다. 나의 죽음은 조물주가 원하지 않는 것일까, 끝내 자살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파리에게는 날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먹기 위해 날아야 하며 살기 위해 인간들을 피해 날아야 했다. 파리에게 날개란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방패였던 것이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지저분한 곳에서 생활하는 파리보다도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인간들은 파리의 날개와 같은 돈이라는 물질을 소유하려고 바동거렸다. 하지만 파리에게 날개가 삶의 방패였고 인간이 사용하는 돈이라는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삶의 무기였다. 인간들은 돈 때문에 동족을 죽였고 죽은 인간을 밟고 올라가 자신만을 높이려고 했다. 그 동안 인간들에게 가졌던 존경의 마음은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빛이 사라질 무렵, 내가 인간들의 비참한 세상을 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가슴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집주인은 아직 살고 있을까. 혹시라도 바뀌었다면 어떤 인간일까. 이러한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집주인이 아침 7시면 현관문을 열고 첫 오른발을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나는 아침이 될 때까지 현관문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나의 상상력은 그 특유의 활동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다.


"신문이오.."


어떤 인간이 이상한 기계를 타고 가면서 무엇인가를 던졌다. 이때 현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주인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빠르게 날개 짓을 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주인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좀 전에 던져진 신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은 예전의 모습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세상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이다.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집주인이 먹다가 흘린 밥풀에 앉아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집주인은 두꺼운 책을 들더니 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의 몸은 산산이 부서졌고, 내 존재 또한 그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날아올랐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무슨 곤 충 같아 보였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그 물체를 볼 때 억울하고 분한 느낌이 들었고, 나의 몸은 이상하게 뻐근했다.


나가 혼란스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그것을 보았을 때, 내 생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참한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존재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


"이보게 그만 가지...."


어디선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파리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나는 분명 듣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흰색의 반 투명한 빛뿐이었다.


"그래 나야.."


다시 한번 그 알 수 없는 빛에서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당신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이곳에 왔으니 어서 나를 따라오게나.."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물어 보려 했지만 그 빛은 어디 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이곳은 내가 보았던 밖의 세상이 아니었다. 주위는 모두 흰 구름뿐이었다. 그 알 수 없는 빛은 이제 더 이상 빛이 아닌 검고 투명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검붉은 빛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얼마쯤 갔을 때, 빛이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


"이제 다 왔다네, 어서 들어가 보게나."


그 검은빛이 말을 끝냈을 때, 보이지 않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러고 눈을 뜰 수 없는 빛이 나의 전신을 태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검은빛에게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 빛은 사라져 버리고 자리에 없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마리 파리가 보였다. 예전에 내 품안에서 죽어간 파리였다. 그 파리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어서 오세요, 당신을 이곳에서 또 만나게 되는군요."


나는 죽은 줄만 알았던 파리를 이곳에서 보니 반가웠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지만 질문이 바보 같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죽었고, 당신도 죽은 몸입니다, 전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그럼 좀 전에 보았던 그 물체가 나의 시체가 확실하다는 말인가? 나는 한순간 많은 의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 파리는 아무 말도 없이 이런 나를 일으켰다. 그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는 또 하나의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대기실입니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곤충들은 환생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먼저 당신은 할 일이 있습니다. 저 노란 문으로 들어가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파리는 이렇게 말하며 나의 등을 또닥거렸다. 들어가라는 눈짓 이였다. 힘없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노란 문으로 들어갔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실루엣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죽었습니까?"


난 억울한 나머지 죽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실루엣은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당신만 죽은 게 아니니 빨리 말하시오,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보이지 않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곤충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 신을 가다듬어 그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라색 문으로 들어가시오! 다음.."


그는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는 뒤의 있던 모기를 불렀다. 그러고 그 동안 나에게 했던 질문 을 반복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날아올라 보라색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문은 닫히고 공간의 사방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는 큰 고통을 느꼈다.


내가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죽어 있는 사람 주위에 많은 수사관들이 무엇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시체는 어디론가 옮겨졌고 얼마지 않아 죽은 시체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가 있었다.


서울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 이모군은 컴퓨터 입력장치 중의 하나인 마우스 케이블로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시체는 의자에 앉은 채로 죽었으며 컴퓨터 모니터에는 유언으로 보이는 짤막한 글귀가 있었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 시체의 해부를 의뢰한 결과, 케이블 선이 목울대를 파고 들어가 거의 목은 잘려진 상태였고 사실상 죽은 시각은 2001년 2월 26일 오전 3시 30분이라고 발표했다.


어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친 박현우 기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메모를 하던 박 기자는 "사실상"이라는 말에 의문을 갖고 물었다.


"사실상 죽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국립 과학수사 본부 대변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자정에 죽었으나 두뇌의 활동은 그로부터 3시간 30분이 지난 후 에야 정지했습니다. 그래서 본 수사본부에서는 이 시체의 죽은 시각을 뇌의 활동이 정지된 오전 3시 30분으로 발표하는 바입니다."


박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두뇌와 몸이 따로 죽었다는 말입니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수사본부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잠깐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한 번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사실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장이 정지하여 모든 혈관이 수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산소와 피가 뇌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뇌의 활동도 거의 몸과 같은 시각에 정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현재의 의학기술로 밝히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이 시체의 경우도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박 기자의 옆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두들기던 지현은 이렇게 물었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유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친필여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박 기자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단서라는 생각에 묻지 않고 있었다. 박 기자는 사건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얻지 못하고 취재하는 여자가 한심스러웠다. 수사본부 대변인은 심드렁히 답변을 했다.


"그 글은 친필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컴퓨터 모니터에 씌어진 글이었기에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유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현재로서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타살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사체가 있던 방에는 타인이 들어온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지문, 머리카락 하나 발견되지 않은 것이 타살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여기자의 엉뚱한 질문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며 박 기자는 물었다.


"그럼 이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살이군요?"


"그렇습니다."


"자살 동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고아로 자랐던 이 사람은 유난스럽게도 활달하고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한 순간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죠. 그래서 본 사건은 그 동안 쌓였던 자신의 삶에 대한 비관이 이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게 되었다고 추측됩니다."


바쁘게 메모지를 채워가던 박 기자는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여있는 많은 기자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이제 그에게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 기자는 자동 응답기를 틀었다. 집에 없는 동안 세 개의 음성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나는 그 동안 사귀던 여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자신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소홀히 했던 그녀였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현재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 뿐이었다. 두 번째 담겨진 음성은 신문사에서 박 기자에게 맡긴 기사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전화였다.


"어이..박 기자, 그 기사 빨리 마감해야겠어..내일까지 가능하지? 닭 대가리가 하도 성화를 해서 말이지..그럼 자네만 믿네!..."


닭 대가리는 기사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선배의 별명이었다. 박 기자는 다음 메시지를 틀었다. 어디서 들어본 여자 목소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 사이버 수사부에 근무하는 지현인데요..몇 가지 의논할 것이 있으니 오늘 저녁에 만났으면 합니다. 그럼 7시에 중앙극장 앞에서 기다리죠."


박기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방적인 약속이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할 일이라고는 몇 줄 안 되는 기사를 쓰는 일 뿐이었으므로 나가기로 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박 기자는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여자일까 생각했다. 직업 때문이었는지 말투가 조금은 딱딱하게 들렸지만 어느 정도 들을 만 했던 터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박 기자는 시계를 보니 바늘이 7시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기자에게 나타난 여자는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던 그 여자였다.


"휴..제가 좀 늦었습니다. 자 가십시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끝까지 명령조인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기자회견에서 한심하게 바라본 그로서는 화가 났다. 박 기자는 기가 차서 이야기한다.


"이봐요!,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일단 어디나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자.."


지현은 박 기자의 소매를 잡아끌며 이야기한다. 박 기자는 어이없는 웃음으로 마지못해 따라갔다. 커피숍에 들어간 지현은 앉자마자 이야기한다.


"냄새 안나요?"


박기자는 일 때문에 며칠동안 씻지 않은 것이 찔렸지만 시치미 떼며 시큰둥히 되묻는다.


"무..무슨 냄새요?"


"오늘 자살사건 말이에요.."


박 기자는 속으로 안도했으나 이 여자가 또 엉뚱한 말을 할까 봐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요?. 그 사건은 이미 자살로 판명 되었잖습니까?"


지현은 손에 들고 있던 노란 봉투를 열고 무엇인가를 꺼낸다. 노란 봉투에서 지현이 꺼낸 것은 몇 가지 문서와 노끈이었다. 박 기자는 그것들을 보며 지현에게 묻는다.


"이것들이 다 뭐요?"


지현은 자신이 꺼낸 문서들을 뒤적이더니 한 장을 건네주며 박 기자의 눈을 응시한다. 한동안 읽던 박 기자는 기자회견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듯이 말한다.


"이건 사체의 부검 결과 아닙니까?"


지현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둔하시군"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건네준다. 그것은 박 기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키보드에 묻어난 지문의 감식 결과였다. 박 기자는 감식 결과가 사체의 것이라는 것을 보고 말한다.


"이건 사체의 지문이 묻은 키보드 아닙니까?"


박 기자의 눈을 주시하던 지현은 답답하다는 듯이 엉뚱한 질문을 한다.


"당신, 기자생활 얼마나 했어?"


"그건 왜 물어요? 5개월 됩니다. 왜요?"


"한심하긴.."


"뭐요?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집에 안 좋은 일 있나본데..난 당신하고 이렇게 한가하게 말장난 할 시간 없으니까 그만 가볼 랍니다."


박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다. 지현은 박 기자를 보지 않고 이야기한다.


"당신 특종 잡고싶은 마음이 없나 보네? 가볼 라면 가보슈..나도 멍청한 놈 앞에서 한가하게 떠들 시간 없으니까...."


박기자는 화가 날대로 났지만 지현의 '특종'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있는 터라 쉽게 되 앉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커피숍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왔다. 박 기자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 커피는 마시고 갈랍니다. 커피 둘 주세요.."


지현은 속보이는 박 기자의 행동이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박 기자는 노끈을 들어올리며 지현에게 묻는다.


"그건 또 뭐요? 아직도 기저귀 차요?..훗.."


박 기자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지현은 구접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이 친구야, 오늘은 아니니까 헛소리하지마. 그나 저나 특종 잡을 거야 말 거야?"


(얼씨구..이제 반말까지...)


그러나 박 기자는 특종을 잡고 싶었다. 그 동안 특종을 이리저리 선배들에게 빼앗긴 박 기자는 자신의 기자생활 위태롭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래 어디 드러나 봅시다."


지현은 노끈을 박 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었다면 마우스 케이블로 어떻게 목을 졸랐겠어요?"


박기자는 특종이라는 소리 때문에 수그러졌던 열이 또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특종이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지현을 잠시 본 박 기자는 노끈을 목에 걸고는 왼쪽의 내려진 끈을 오른손으로 잡고 오른 쪽의 끈은 왼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엑스자 모양으로 교차하고는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잘하는구먼."


박 기자의 행동을 본 지현의 말이었다. 박 기자는 하긴 했지만 자신의 모양새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기자는 잡고 있던 노끈을 내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이런 짓이 무슨 특종이 된다는 거요?"


지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그러고는 노끈을 들고 박 기자가 했던 것처럼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 당신이 좀 전에 이렇게 목을 졸랐죠?"


"음..잘 하네...훗."


박기자의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지현은 지지한 태도로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면 이런 식으로 자살을 했겠죠?"


"그렇겠지.."


박 기자는 시큰둥하게 말을 받는다. 지현은 좀 전의 문서를 보여주며 말한다.


"이 부검 결과를 자세히 보면 양쪽의 케이블 선이 앞쪽에서 교차된 것이 아니라 목 뒤쪽에서 교차됐습니다. 자 보세요.."


박기자는 부검 결과를 보며 과연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다. 종업원은 어느덧 다가와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박 기자는 자신의 견해와 전혀 상반된 자료를 보면서 지현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 사건을 타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박기자는 어느덧 진지한 모습이었다. 지현은 또 다른 문서를 박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이걸 보세요.."


박기자는 흥분된 눈빛으로 문서를 보고. 지현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박 기자에게 설명을 한다.


"이건 죽은 대학생이 쓰던 컴퓨터 키보드에 묻은 지문의 감식 결괍니다."


박기자는 자료를 보고 이야기한다.


"결과가 사체의 지문이지 않습니까?..그렇다면 가해자의 협박으로 쳤다는 말인가요? 그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살인자가 자신의 지문을 키보드에 남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지문을 모두 지우는 것 또한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살인자는 사체의 지문을 키보드에 찍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한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


박기자는 궁금한 듯 지현을 바라본다.


"살인자는 키보드의 배열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까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길 보세요.."


지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 키보드를 보면 손가락의 위치가 전혀 맞지 않아요. 'ㅅ' 위친 데도 가운뎃손가락의 지문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도 그렇구요, 더욱 이상한 것은 오른쪽 손의 가운뎃손가락만 사용했다는 것이죠.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 키보드와 손가락의 위치를 모를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 손으로 치다니요..."


"...."


박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목이 잘릴 정도로 자신의 목을 조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살인자는 한 명이 아닌 둘 이상이었던 거죠."


박 기자는 지현의 말을 들을수록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사실일 때는 정말 특종 중에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박 기자는 서로 알지도 못했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여 지현에게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왜 저에게 하는 거죠?"


지현은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요즘 기자들도 검찰이나 정치인들 못지 않게 썩어있기 때문이죠. 모두 진실이 왜곡된 거짓으로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박 기자는 아직 그런 물이 들 정도는 아니라 생각되어서 입니다."


박기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동안 기자생활이 자신의 천직이고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기자부에서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러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박 기자는 지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속삭이듯이 묻는다.


"이 사실, 당신과 저만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지현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누가 또 알고 있나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입니다."


지현의 대답은 의외였다. 국립 과학수사 본부에서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 왜곡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에게 묻는다.


"이 자료들은 언제 얻었습니까?"


"기자회견을 하기 이틀 전에 구했습니다."


"그럼 왜 기자회견 때 그런 질문을 했죠?. 친필여부를 확인했냐는 질문 말입니다."


지현은 박 기자에게 말한다.


"당신 같으면 무방비상태로 범죄자 앞에서 '나는 당신을 체포할 것이요'하고 말 하겠나?..하하하.."


지 현은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호탕하게 웃는다. 박 기자는 이제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사건은 자살이었고 이런 결과는 국립과학수사 본부에서 내려진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박 기자는 지현을 멀거니 바라보며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오?"


지현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사건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자료는 많았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완벽한 그물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지현은 흐르는 침묵을 깨기 위해 억지로 입을 연다.


"앞으로 해야죠.."


그러나 과연 해야 할 일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박 기자는 그 동안 지현의 논리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대답만큼 자신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박 기자도 어느 정도 지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특종인 것은 사실이나 그물에 걸릴 고기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자칫 하다가는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그물이 오히려 주인의 목을 조를 판이었기 때문이다.


지현은 일어서며 박 기자에게 이야기한다.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당신 연락처를 아니까 제가 필요할 때 연락을 드리죠...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지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횡 하니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박 기자는 한동안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박기자는 다음날 선배의 독촉으로 마지못해 자살에 대한 기사를 써야만 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도록 지현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라 박 기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박 기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포 하나가 도착해 있는 것을 보았다. 발송인은 기재되지 않았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을 때, 박 기자는 이 것이 지현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현이 보낸 자료에는 박 기자가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선양이라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기업이 채권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채권에 비리가 있었고, 이군이 선양기업의 서버를 해킹하여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눈치를 챈 선양기업의 고위급 간부들은 과거 중앙 정보부의 정보원 출신들을 고용하여 이 군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도 선양기업을 동조했다는 것이다. 박 기자는 이 엄청난 사실을 누구에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그 동안 지현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박기자는 지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여 동료 기자를 통해 알아보았다. 지현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현이 죽은 날은 박 기자에게 소포가 전달 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기자는 집으로 돌아와 지현에게서 왔던 소포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그 자료 중에 이 군이 죽어 있는 사진 속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한된 언어는 어두운 삶을 반영한다."


박기자는 이 책이 궁금하여 가까운 서점에 들려서 알아보았지만 시중에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었다. 박 기자는 책의 출판사를 방문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책의 초판을 발행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74년 6월로 기록되어 있었다. 박 기자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출판된 책이 왜 낯익었는지 의아해 하며 집으로 향했다.


박기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문이 열려 있었고, 누가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방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박 기자는 급히 지현으로부터 받은 소포를 찾아보았지만 자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였다. 5명의 괴한이 나타나 박 기자의 몸을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찔렀다.


또 다시 고통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 당신은 파리에서 인간으로 환생을 하였지만 저승의 실수로 27년이 지나 당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왔고 죽은 시체의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승에서는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려 합니다."


나는 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주 오래 된 기억을 재생하듯, 나의 전생, 그리고 환생했을 때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선택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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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환생"은 고등학교 시절에 문과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초기 작품 아닌 작품을 썼던 글이다. 그 이후 여러 번 퇴고를 하고 내용을 변경했었는데 앞 부분의 파리 내용은 초기 파리의 환생의 내용이고 뒤에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김진명 작가가 썼던 "코리아닷컴"이 출판하기 전에 네띠앙에서 주관했던 이벤트( 소설의 앞 부분만을 공개하고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을 창작하는 이벤트)에 우연한 기회로 응모하여 최우수상으로 노트북을 상품으로 받았던 내용이다. 지금 보면 이런 글로 최우수상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이벤트를 통해 그렇게 큰 상품을 받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글을 이상하게 짬뽕 시켜 놓은 글이다. 예전 사이트에서 보이길래 이 글도 블로그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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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1:26

1998년 6월 어느날이었다. 생활의 모든 것을 이곳 사회에 두고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하기위해 내가 군 입대를 한지 2개월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곳, 바로 정동진 근처로 나는 자대 배치를 받았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바다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는 설레임과 군대라는 곳의 생리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 혼자가 아닌 동기 한 명과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가게 될 동기가 그 친구라는 것을 알고 다른 동기들이 어깨를 치며 '참 너 힘들겠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와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기였고 우리는 자대 배치를 받고 고참들의 기 꺾기 작전에 힘없이 당하면서도 그래도 동기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동기가 훈련소에서 발에 봉화직염(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작은 상처에 균이 들어가 살이 썩어 고름이 고이는 병)에 걸려 육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다.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나보다는 눈치가 없어 고참들에게 갖은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에 뒤 돌아서면 나에게 웃음을 보이는 동기였는데 이제 나 혼자 남아 막내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자대 배치 받은 곳은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동진 조금 위에(산 하나 넘으면) 심곡항과 금진항 사이에 있었다. 소초가 산 꼭대기에 있어서 새벽에 근무를 나가기 위해서는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나는 자대 배치를 받고 대기기간(자대 배치를 받고 일,이주간은 대기기간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청소 하는 법부터 배우는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부 소대장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익혔다. 프로태권도 한국 챔피언이었던 나보다 한 살 위인 부 소대장은 떡 벌어진 멋진 몸과 어울리게 터프하다 못해 싸이코 같은 행동을 많이 했었다. 나는 아침마다 부소대장을 따라 산을 뛰어 내려가 해안도로(심곡과 금진항을 잇는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에서 혼자 구보를 해야 했다. 1.5Km나 되는 거리를 부 소대장은 몇분 내에 돌아오라고도 하고 입에 바닷물을 물게 하고 뛰게 했다. 너무 힘이 차서 구토도 했지만 부 소대장은 그런 것은 아랑곳 없이 해안도로 난간에 매달아 놓고 윗몸 일으키기를 시키기도 하며 소초까지, 한 계단의 높이가 60cm도 넘는 계단이 150개가 넘는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게 했다. 이렇게 나는 혼자 대기기간이 풀릴 때 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나는 첫 근무를 나가게 된 날이었다. 이등병은 어디를 가나 항상 뛰어 다녀야 했다. 저녁은 먹고 나는 청소하기 위해 고참이 대걸레를 빨아 오라는 말에 대걸레를 잡고 빨아오는 도중에 비가와 미끄러운 땅에 넘어졌다가 일어나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런 나를 보고 고참은 걸레를 집어 던지며 걸레를 만들어 오냐며 가지가지 욕을 해댔다. 그때 청소 준비를 끝냈을 때, 부 소대장은 사병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오늘부터 막내 혼자 취사장 청소를 한다."

 

근 무를 나가기 전에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넓은 취사장 청소를 끝내고 나는 근무준비를 위해 사수의 복장과 화기, 근무 시간대를 외워 사수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날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청소를 끝내고 근무투입을 하기 전까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나는 청소하느라 첫 근무부터 사수의 복장과 화기, 브리핑까지 망쳐버렸다. 아직 다 외우지 못한 고참들의 이름과 근무가 돌아가는 방법에도 익숙치 않아 시간은 어느 정도 외웠는데 뒷 근무자와 앞 근무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근무지에 나가서 사수에게 근무지 이동 때마다 맞기만 했다. 세 곳의 근무지까지 이동하면서 수십 차례 맞아가며 이동을 했야했는데 좋지도 않은 길을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수는 m6공 사수였는데 화기 무게만 해도 10.195kg이나 되었고 200발 탄이 들은 탄 박스는 7kg이 넘는 무게였다. 거기다가 각종 야시경과 통신수단에 이용되는 장비들을 짊어지고 이동을 했다. 사수는 달랑 내 화기(k2)만을 어깨에 걸치고 이동했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했는데 후...속으로 욕을 한 만큼 근무지에서 맞은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첫 근무를 끝내고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소초로 돌아왔다. 그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내 화기를 들고 올라가는 수사는 어찌나 빠르게 오르던지 사수와 1미터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빨리 올라오라고 멱살을 잡고 하이바(방탄모)로 머리통을 내리치기 일수였다.

 

근 무가 끝났다고 부 사수들의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수들의 화기를 시금 장치(총을 누가 빼가지 못하게 잠가두는것)을 해야 했고 고참들의 복장과 잘 준비까지 모든 것을 끝내고 부 사수들은 복장을 풀고 씻어야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사수의 짜증스러운 말 한 마디에 다른 고참들에게 화장실에서 맞으며 두고 보겠다는 고참을 위협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나와 기상 시간이 5시 30분이라 20분도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라도 조금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잘 자리를 찾았는데 보이는 않았다. 나는 조금 틈이 있는 곳에 칼잠 자세로 쪼그리고 누웠는데 옆에 있던 고참은 발로 차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누우려 했지만 그곳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10여분 동안 잘 곳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모포(군에서 쓰는 얇은 이불)을 들고 화장실 병기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 눈에서 소리없이 서러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나 기상시간을 알리는 바로 윗 고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는 혼자 취사장 청소를 했다. 우리는 새벽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취사장 청소 때문에 다른 고참들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부 소대장이 나를 깨우더니 잠시 나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는 사병들과 간부들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고참들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고참들이 볼 까봐 몰래 부 소대장의 따라 나섰다. 부 소대장은 나를 취사장 쪽으로 데려가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어떠냐..많이 힘들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 여기 있는 고참들도 다 이런 시기를 겪고 짠밥을 먹은 거니까 너 혼자만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내가 힘들게 아침마다 다들 하지 않는 구보를 시키고 혼자 청소하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니까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뭐가 너를 위해서 였나 하는 것은 나중에 네가 짠밥을 먹으면 알게 될 거니까 그때 되서 생각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부 소대장은 취사장을 나가며 빨리 먹고 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초코파이의 꿀맛을 알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부 소대장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게 되었고 좀처럼 내 밑으로는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나와 동기였던 그 친구가 후송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 친구가 후송을 간지 2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 친구는 돌아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근무하는 방법은 커녕 고참들의 이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고참들 몰래 동기에게 고참들의 이름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몰래 말을 걸며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군대가 작은 사회라고 하는 것처럼 동기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상 동기와 나는 고참들에게 비교 대상이 되었고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 대를 더 맞기 일수였다. 그래서 나는 한 쪽으로는 가르쳐주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이를 갈며 그 동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고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동기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매장되고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한대를 덜 맞고 얼차려를 덜 받는 것이 군 생활을 해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7월이었다. 100일 위로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근무 끝내고 오침을 하고 있는데 11시 경에 소대장의 소리침에 벌떡 일어났다. 그 동안 몸에 배인 반사 신경이었다.

 

"기상!, 전원 A형 투입."

 

(A 형 투입은 모든 소대 인원이 두명씩(사수, 부사수) 모든 초소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때는 이동은 없으며 한 곳에서만 근무를 선다. 이밖에 B형, C형 근무가 있으며 내려갈수록 적의 침투가 어려운 날씨와 상황이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단축되며 초소를 몇 곳 밖에 점령하지 않는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C형 근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침도 하지 못하고 A형 투입을 했던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사수를 확인하고 사수의 복장과 화기, 장비를 챙기고 근무투입 준비를 마치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초소투입 장소로 사수와 이동을 했다. 근무지에서 근무를 스며 소초에서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초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챙겨왔던 통신장비가 고장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령이 주는 통신장비와 교체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지 않고 들고 왔다면서 사수에게 맞으며 혼이 났다. 전령을 통해 전해들은 상황은 적 잠수함의 탐지와 북괴군 시체 한 구가 해안에 떠밀려 왔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도개가 발령되었고 그것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근무지에서 반합(군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밥을 먹으면서 그날 24시간 근무를 섰다. 그리고 몇 시간 잠을 자고 또 A형 투입...이렇게 일주일 가량 A형 투입은 계속 되었고 낮에는 인근 산으로 수색을 나갔다. 뜻밖의 상황으로 내 100일 위로 휴가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고 하루하루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일 위로휴가도 가지 못하고 근무를 하러 소초에 투입되었다. 전에 있었던 상황 때문에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A형에서 한 단계 내려간 B형 근무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B형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A형에 가까웠고 근무를 하는 우리들의 수면은 부족할 데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부 사수들은 사수가 잠을 자더라도 북괴군의 침입을 사전에 발견하기 위한 근무보다는 순찰자들의 접근이 있는지 없는지 동태를 살피는 일이 더 급급했기 때문에 아무리 졸리더라도 눈을 뜨고 사방을 감시해야 했기에 피로도는 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얄미운 잠은 내 눈꺼풀 위에서 죽어라 누르고 있었다.

 

상황은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초소와 초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 임시 초소를 만들어 놓고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날은 걸어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임시 소초에 근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를 만나려고 사수가 장비를 챙기라고 했다. 우리는 임시초소에서 근무자들과 만나서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시초소에서 근무하는 부 사수는 나보다 엄청난 짬밥이 있는 부 사수였기에 물어볼 것 없이 사수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그 부 사수 고참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막내인지라 말도 못하고 비가 오는 밖에서 사방을 감시하는 척(사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해댔다. 나이도 동감이고 어린 것들이 비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앉으라고 하면 어디가 뼈가 부러지나 하면서...) 그렇게 멀뚱멀뚱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에게 임시 소초에서 근무하던 사수가 와서 비라도 맞지 말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도록 부 사수에게 일렀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더 사양했다가는 분위기기 심상치 않을 듯 싶어 이내 못이기는 척하며 쭈그리고 앉아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임시초소에 근무하는 부 사수는 이등병 때부터 고참들에게 총명을 받아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반면 그 고참의 동기 한 명은 고참들에게 총명 받지 못해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 짬밥인데도 후임병 몰래 맞거나 크게 혼을 냈다.

 

그날은 비도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전방 5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이었다. 사수들은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우리 부 사수들은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임시초소 부사수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그 부사수 고참은 평소에 나에게 군 생활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잘 해주는 고참이었다.) 나는 사수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안도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눈도 크게 뜨면서 참고 또 참았다.

 

임시 초소가 계단을 올라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바로 밑에서 사람이 올라오더라도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밤에 플래시 불빛이 없으면 아무도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주위에 플래시 불빛이 보이는 지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부터 잠깐 플래시 불빛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사수에게 말 하려고 할 때였다, 그 때는 이미 중대장이 초소 바로 앞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우리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중대장은 크게 호통을 치며 사수 둘을 데리고 갔고 우리는 졸지에 사수 부사수가 되어 그 초소를 지켜야만 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어갔다. 우리들은 서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근무지에서 순찰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모두 부사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소초에 도착하면 그 많은 고참들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엄청난 불화가 있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합리화하며 장비를 챙기고 소초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 근처에서 비를 맞으면서 손들고 서 있는 두 군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 유심히 확인한 결과 그 들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사수들이었다. 나는 사수들의 눈총을 애써 피하면서 걸었지만 지나가는 내 뒷 통수까지 그 눈빛의 힘은 느껴졌다. 우리가 소초에 복귀했을 때 고참들은 사수들은 어디다 버리고 오냐고 물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짬밥이 되고 총망 받는 부 사수 고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최대한 방패막이는 해 놓았다. 얼마지 않아 벌을 섰던 사수들은 소초에 어두운 표정으로 복귀를 했다. 다행이도 다른 근무지에서도 중대장이 플래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면서 작정을 하고 순찰을 나갔을 거라며 부 사수들의 큰 잘못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고참에게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사수가 순찰자를 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혼이 나긴 했다.

 

이러한 사건은 중대장의 역량에 따라 영창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워낙 근무인원이 모자란 시점이었기 때문에 영창을 가지는 않고 한가지 벌칙이 내려졌다. 비가 와서 소초로 들어올 기름을 싫은 군용차가 길이 미끄러워서 산으로 오르지 못하자 행정관은 중대장의 지시라면서 두 드럼이나 되는 기름을 산 꼭대기에 있는 소초까지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말통(20리터가 들어가는 기름통, 참고로 한드럼에는 200리터가 들어간다)을 하나씩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한 통씩 기름을 받아 운반하기 시작했다. 높은 계단과 높은 곳에 위치한 소초가 그날 따라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군소리 없이 기름통을 옮기면서 온 몸에 기름 범벅이 되었고 그러한 작업은 3,4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모든 기름을 운반했을 때는 모두 녹초가 되었고 오침이 끝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나는 기름을 운반하여 힘든 것 보다 그날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나고 피곤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벌칙으로 끝이나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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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대를 하고 얼마지 않아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썼던 글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이상한 집단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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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언어로 풀어본 사랑의 공식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0:49
헤어진 후의 감정 = 만남의 빈도 * 현재의 감정 * (결혼 - 현재의 감정)

X = r * x * (1 - x)

1은 결혼, 0은 이별.
예) r=2.7 , x= 0.02
2.7 * 0.02 * (1 - 0.02) = 0.0529
2.7 * 0.0529 * (1 - 0.0529) = 0.1353
2.7 * 0.1353 * (1 - 0.1353) = 0.3159

공식의 정의 : 감정이 좋아졌다가 지나치면 다시 좋지 않는 과정을 거친
후 평행상태에 도달한다.


* 지금 보면 그 당시 참 여러가지로 돌파구를 찾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어색하고 앞뒤가 맞긴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이런 것으로 놀고 있었다니....이궁...;


main()

{

float x=0,r=0;

int count=0;

printf("R=> ");scanf("%f",&r);

printf("\\n");

printf("X=> ");scanf("%f",&x);

while(1){

x=r*x*(1-x);/*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공식 */

printf(" [%d]Next===>%f\\n",++count,x);

delay(2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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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love...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0:43
윈도우 3.0으로 새로운 User Interface를 열어가기 전에는 operating system으로 주로 DOS를 사용했다. 윈도우에서도 실행창을 열어보면 DOS를 볼 수 있다. 그 때는 5.25인치 디스크 4장 가량되는 불량의 게임을 주로 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페르시아왕자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 글을 작성한 시기에 나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98년이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갈 시기이니 한참 윈도우로 넘어가던 시기인 듯 싶다. 예전에 만들었던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들려보니 아직도 남아 있어 이곳에 다시 옮겨 놓는다.









Volume in drive C is LOVE
Directory of C:\\LOVE
. 3-14-98 03:30
.. 3-14-98 03:30
LOVE EXE 1997 5-25-97 12:30p
3 File(s) 1997 bytes
1 bytes free


C:\\LOVE>del *.*
All files in directory will be deleted!
Are you sure(Y/N)? Y


C:\\LOVE>dir
Volume in drive C is LOVE
Directory of C:\\LOVE
. 3-14-98 03:30
.. 3-14-98 03:30
2 File(s) 0 bytes
1998 bytes free


C:\\LOV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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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 예찬론

Programming/Etc 2007. 3. 9. 00:48
action script를 코딩하다 보면 중간 중간 내가 작성하는 코드가 syntax error가 없는지 수시로 체크를 하게 되는데 그 단위는 코드 100줄을 넘지 못한다. 코딩을 하면서 중간에 딴 생각을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고 손가락의 강약 조절과 위치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손가락의 잘못도 있다.(결코 내 잘못 아니란다 쿠쿠)

대부분 syntax error로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나 가끔은 overflow의 문제로 한참을 헤매는 경우도 종종 있다. Overflow의 경우는 컴파일러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overflow가 발생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 과계로 중간 체크를 하지 않고 코드를 길게 늘리다 보면 쉽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overflow가 발생했다는(플래시는 255번 이상 스택이 쌓이면 overflow가 발생한다.) 것을 output 패널 창에 보여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컴파일러가 한참을 계산하고서야 문제를 알려줄 때면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뒷골이 땡긴다.

이런 문제는 반복문에서의 조건문이 무한하거나 undefined일 경우 흔히 발생하게 된다. 가끔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문제로 브라우저를 종료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외부에서 xml 데이터를 받아와서 처리해야하는 구문이 있다면 xml이 로드된 시점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을 간과한 듯 하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단위별로 체크를 해야 한다. 어느 언어나 기본적으로 특정 값을 확인 할 수 있도록 print 내장 메소드를 제공하는데 플래시도 trace라는 구문을 제공한다.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는 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논리적인 error를 잡아내는 데는 trace 하나면 충분하다. 중간 중간 확인을 하고 진행한 코드라고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시점과 문제가 발생한 시점을 파악하고 그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을 훑어봐도 어디가 문제인지를 모를 때는 최초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상위부터 단계별로 trace로 문제가 될만한 변수들을 확인하고 넘어가면 어느 시점에서는 문제의 변수를 잡아낼 수 있다.

가끔 프로그래밍에 발을 들여놓은 분들을 보면 이러한 확인 절차 없이 무턱대고 코드를 작성하고 한꺼번에 컴파일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문제가 없는 부분과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oop 개념의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의 독립된 class로 문제를 최대한 잘게 쪼개놓으면 문제가 된 class를 쉽게 알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플래시 액션스크립트도 2.0으로 넘어오면서 어느 정도 oop개념을 도입했지만 실무에서 완벽한 oop 프로그래밍을 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Oop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큰 프로젝트가 아닌 경우에는 사실 그러한 개발 노력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또한 실무에서는 oop반 막무가내 코드 반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고 개인적인 놀이나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 oop에 신경을 쓴다. 물론 개인적인 놀이에서 그러한 것을 하다 보면 실무의 실질적인 프로젝트에서도 기억을 되살려 사용하기도 하니 그러한 놀이를 통해서 점점 oop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엉뚱하게 흐르고 있다. 이쯤에서 trace 한번 찍어보자.

var 엉뚱한변수:String = “#@$#@$@#@$#”;
trace(“엉뚱하게 이야기가 흐른 변수 = ” + 엉뚱한변수);

액션 스크립트를 떠나 존재하는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print 구문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도 어셈블리어로 코딩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프로그래밍도 커뮤니케이션이다.

trace(“나 여깄어…너 거기있니”);
trace(“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구나”);

trace를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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