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 봄이야

Photography/Space 2015. 4. 11. 03:00

나는 지하철에 오르면 좌석이 비어 있어도 잘 앉지 않는다. 물론 나보다도 더 간절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앉아서 하는 일을 선택한 내 삶에 대한 보상에 가깝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길 없는 아주머니들이 자리가 났으니 앉으라며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사양하지만 제발 앉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표정에서 읽힐 때는 마지못해 영혼 없이 앉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어렵게 앉은자리가 아쉬워 내릴 곳을 지나칠 만한 용기도 미련도 없다. 이제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방법에는 '그 사람과 얼마나 오래도록 걷고 싶은가'로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포옹하고 싶은 사람,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 키스하고 싶은 사람은 바뀔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세상 끝까지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은 결국 하나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좀 더 내용을 보태자면, 함께 걸으며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관계의 연결을 강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에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감정이 없고 나에게 무례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은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편하다는 표현일 수 있으니 오해하지 말자.


나는 오늘 새벽 여의도 길을 9km 걸었다. 

침묵에도 불편함이 없으니 새벽에는 이렇게 혼자 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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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기지 않은 렌즈

Photography/Bicycle 2015. 4. 8. 18:00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삶은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음산하고 서글프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직 희망이 있어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면 항상 카메라를 가져간다. 마음이 가는 사진 한 장 담지 못할 걸 알면서도 렌즈 하나 더 챙기지 못한 나를 탓한다. 좋은 프레임, 그에 걸맞은 빛이 내리는 순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사진에 담으려는 마음과 조금만 더 가면 이보다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실랑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주 겪는 일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를 스쳤던가. 되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장면, 지나치면 잊힐 줄 알았던 일들이 잔상으로 남아 아쉬움을 준다. “그래 조금만 더 가보자. 태양이 대지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꼭 그 따뜻함을 담을 수 있을 거야” 인생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스름이 짙어오는 황혼녘이 아니면 인생이 그러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것 또한 우리네 인생이다. 어느 날 사진을 현상하고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며 누군가 옆에서 속삭인다면, 적어도 챙기지 않은 렌즈 때문에 뒤늦은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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