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의 부재(不在).

Photography/Snapshot 2015. 4. 1. 17:30

말할 수 없는 사물이 가끔 대화를 거부할 때가 있다. 내가 사물을 통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망각하는 어느 시점에 휘몰아치는 경험이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따금 이런 경험을 한다. 물론 그 경험 자체는 원천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사물과는 다르지만, 되돌아오는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별반 다르지 않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바로 반응의 부재인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 그것은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요구에 대한 거절과 존재에 대한 거부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더욱이 그것을 잘 분리하여 본인의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거절을 세련되게 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로 불편한 관계로 치닫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회피하거나 내민 손을 외면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서운함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섰다는 이유만으로 필요 이상의 가혹한 고통이 따르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남에게 먼저 다가서는 용기 보다도 다가온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본인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응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당신이라면"이 아니라 타자의 눈으로 오로지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관계에서도 선택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예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에 가깝다. 지금 당신 앞에 받아들일 수 없도록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피하지 말고 세련되게, 멋지게 거절하자. 그 고뇌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안의 윤리적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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