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Miscellaneous/Story 2007. 3. 10. 01:26

1998년 6월 어느날이었다. 생활의 모든 것을 이곳 사회에 두고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하기위해 내가 군 입대를 한지 2개월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곳, 바로 정동진 근처로 나는 자대 배치를 받았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바다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는 설레임과 군대라는 곳의 생리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 혼자가 아닌 동기 한 명과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가게 될 동기가 그 친구라는 것을 알고 다른 동기들이 어깨를 치며 '참 너 힘들겠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와 같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기였고 우리는 자대 배치를 받고 고참들의 기 꺾기 작전에 힘없이 당하면서도 그래도 동기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동기가 훈련소에서 발에 봉화직염(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작은 상처에 균이 들어가 살이 썩어 고름이 고이는 병)에 걸려 육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다.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나보다는 눈치가 없어 고참들에게 갖은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에 뒤 돌아서면 나에게 웃음을 보이는 동기였는데 이제 나 혼자 남아 막내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자대 배치 받은 곳은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동진 조금 위에(산 하나 넘으면) 심곡항과 금진항 사이에 있었다. 소초가 산 꼭대기에 있어서 새벽에 근무를 나가기 위해서는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나는 자대 배치를 받고 대기기간(자대 배치를 받고 일,이주간은 대기기간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청소 하는 법부터 배우는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부 소대장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익혔다. 프로태권도 한국 챔피언이었던 나보다 한 살 위인 부 소대장은 떡 벌어진 멋진 몸과 어울리게 터프하다 못해 싸이코 같은 행동을 많이 했었다. 나는 아침마다 부소대장을 따라 산을 뛰어 내려가 해안도로(심곡과 금진항을 잇는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에서 혼자 구보를 해야 했다. 1.5Km나 되는 거리를 부 소대장은 몇분 내에 돌아오라고도 하고 입에 바닷물을 물게 하고 뛰게 했다. 너무 힘이 차서 구토도 했지만 부 소대장은 그런 것은 아랑곳 없이 해안도로 난간에 매달아 놓고 윗몸 일으키기를 시키기도 하며 소초까지, 한 계단의 높이가 60cm도 넘는 계단이 150개가 넘는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게 했다. 이렇게 나는 혼자 대기기간이 풀릴 때 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나는 첫 근무를 나가게 된 날이었다. 이등병은 어디를 가나 항상 뛰어 다녀야 했다. 저녁은 먹고 나는 청소하기 위해 고참이 대걸레를 빨아 오라는 말에 대걸레를 잡고 빨아오는 도중에 비가와 미끄러운 땅에 넘어졌다가 일어나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런 나를 보고 고참은 걸레를 집어 던지며 걸레를 만들어 오냐며 가지가지 욕을 해댔다. 그때 청소 준비를 끝냈을 때, 부 소대장은 사병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오늘부터 막내 혼자 취사장 청소를 한다."

 

근 무를 나가기 전에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넓은 취사장 청소를 끝내고 나는 근무준비를 위해 사수의 복장과 화기, 근무 시간대를 외워 사수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날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청소를 끝내고 근무투입을 하기 전까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나는 청소하느라 첫 근무부터 사수의 복장과 화기, 브리핑까지 망쳐버렸다. 아직 다 외우지 못한 고참들의 이름과 근무가 돌아가는 방법에도 익숙치 않아 시간은 어느 정도 외웠는데 뒷 근무자와 앞 근무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근무지에 나가서 사수에게 근무지 이동 때마다 맞기만 했다. 세 곳의 근무지까지 이동하면서 수십 차례 맞아가며 이동을 했야했는데 좋지도 않은 길을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수는 m6공 사수였는데 화기 무게만 해도 10.195kg이나 되었고 200발 탄이 들은 탄 박스는 7kg이 넘는 무게였다. 거기다가 각종 야시경과 통신수단에 이용되는 장비들을 짊어지고 이동을 했다. 사수는 달랑 내 화기(k2)만을 어깨에 걸치고 이동했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했는데 후...속으로 욕을 한 만큼 근무지에서 맞은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첫 근무를 끝내고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소초로 돌아왔다. 그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내 화기를 들고 올라가는 수사는 어찌나 빠르게 오르던지 사수와 1미터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빨리 올라오라고 멱살을 잡고 하이바(방탄모)로 머리통을 내리치기 일수였다.

 

근 무가 끝났다고 부 사수들의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수들의 화기를 시금 장치(총을 누가 빼가지 못하게 잠가두는것)을 해야 했고 고참들의 복장과 잘 준비까지 모든 것을 끝내고 부 사수들은 복장을 풀고 씻어야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사수의 짜증스러운 말 한 마디에 다른 고참들에게 화장실에서 맞으며 두고 보겠다는 고참을 위협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나와 기상 시간이 5시 30분이라 20분도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라도 조금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잘 자리를 찾았는데 보이는 않았다. 나는 조금 틈이 있는 곳에 칼잠 자세로 쪼그리고 누웠는데 옆에 있던 고참은 발로 차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누우려 했지만 그곳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10여분 동안 잘 곳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모포(군에서 쓰는 얇은 이불)을 들고 화장실 병기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 눈에서 소리없이 서러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나 기상시간을 알리는 바로 윗 고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는 혼자 취사장 청소를 했다. 우리는 새벽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취사장 청소 때문에 다른 고참들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부 소대장이 나를 깨우더니 잠시 나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는 사병들과 간부들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고참들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고참들이 볼 까봐 몰래 부 소대장의 따라 나섰다. 부 소대장은 나를 취사장 쪽으로 데려가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어떠냐..많이 힘들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 여기 있는 고참들도 다 이런 시기를 겪고 짠밥을 먹은 거니까 너 혼자만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내가 힘들게 아침마다 다들 하지 않는 구보를 시키고 혼자 청소하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니까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뭐가 너를 위해서 였나 하는 것은 나중에 네가 짠밥을 먹으면 알게 될 거니까 그때 되서 생각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부 소대장은 취사장을 나가며 빨리 먹고 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초코파이의 꿀맛을 알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부 소대장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게 되었고 좀처럼 내 밑으로는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나와 동기였던 그 친구가 후송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 친구가 후송을 간지 2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 친구는 돌아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근무하는 방법은 커녕 고참들의 이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고참들 몰래 동기에게 고참들의 이름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몰래 말을 걸며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군대가 작은 사회라고 하는 것처럼 동기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상 동기와 나는 고참들에게 비교 대상이 되었고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 대를 더 맞기 일수였다. 그래서 나는 한 쪽으로는 가르쳐주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이를 갈며 그 동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고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동기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가 매장되고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한대를 덜 맞고 얼차려를 덜 받는 것이 군 생활을 해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7월이었다. 100일 위로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근무 끝내고 오침을 하고 있는데 11시 경에 소대장의 소리침에 벌떡 일어났다. 그 동안 몸에 배인 반사 신경이었다.

 

"기상!, 전원 A형 투입."

 

(A 형 투입은 모든 소대 인원이 두명씩(사수, 부사수) 모든 초소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때는 이동은 없으며 한 곳에서만 근무를 선다. 이밖에 B형, C형 근무가 있으며 내려갈수록 적의 침투가 어려운 날씨와 상황이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단축되며 초소를 몇 곳 밖에 점령하지 않는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C형 근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침도 하지 못하고 A형 투입을 했던 것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사수를 확인하고 사수의 복장과 화기, 장비를 챙기고 근무투입 준비를 마치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초소투입 장소로 사수와 이동을 했다. 근무지에서 근무를 스며 소초에서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초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챙겨왔던 통신장비가 고장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령이 주는 통신장비와 교체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지 않고 들고 왔다면서 사수에게 맞으며 혼이 났다. 전령을 통해 전해들은 상황은 적 잠수함의 탐지와 북괴군 시체 한 구가 해안에 떠밀려 왔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도개가 발령되었고 그것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근무지에서 반합(군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밥을 먹으면서 그날 24시간 근무를 섰다. 그리고 몇 시간 잠을 자고 또 A형 투입...이렇게 일주일 가량 A형 투입은 계속 되었고 낮에는 인근 산으로 수색을 나갔다. 뜻밖의 상황으로 내 100일 위로 휴가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고 하루하루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100일 위로휴가도 가지 못하고 근무를 하러 소초에 투입되었다. 전에 있었던 상황 때문에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A형에서 한 단계 내려간 B형 근무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B형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A형에 가까웠고 근무를 하는 우리들의 수면은 부족할 데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부 사수들은 사수가 잠을 자더라도 북괴군의 침입을 사전에 발견하기 위한 근무보다는 순찰자들의 접근이 있는지 없는지 동태를 살피는 일이 더 급급했기 때문에 아무리 졸리더라도 눈을 뜨고 사방을 감시해야 했기에 피로도는 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얄미운 잠은 내 눈꺼풀 위에서 죽어라 누르고 있었다.

 

상황은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초소와 초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 임시 초소를 만들어 놓고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날은 걸어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임시 소초에 근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를 만나려고 사수가 장비를 챙기라고 했다. 우리는 임시초소에서 근무자들과 만나서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시초소에서 근무하는 부 사수는 나보다 엄청난 짬밥이 있는 부 사수였기에 물어볼 것 없이 사수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그 부 사수 고참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막내인지라 말도 못하고 비가 오는 밖에서 사방을 감시하는 척(사실 속으로 무진장 욕을 해댔다. 나이도 동감이고 어린 것들이 비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앉으라고 하면 어디가 뼈가 부러지나 하면서...) 그렇게 멀뚱멀뚱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에게 임시 소초에서 근무하던 사수가 와서 비라도 맞지 말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도록 부 사수에게 일렀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더 사양했다가는 분위기기 심상치 않을 듯 싶어 이내 못이기는 척하며 쭈그리고 앉아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임시초소에 근무하는 부 사수는 이등병 때부터 고참들에게 총명을 받아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반면 그 고참의 동기 한 명은 고참들에게 총명 받지 못해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 짬밥인데도 후임병 몰래 맞거나 크게 혼을 냈다.

 

그날은 비도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전방 5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이었다. 사수들은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우리 부 사수들은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임시초소 부사수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그 부사수 고참은 평소에 나에게 군 생활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잘 해주는 고참이었다.) 나는 사수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안도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허벅지도 꼬집어보고 눈도 크게 뜨면서 참고 또 참았다.

 

임시 초소가 계단을 올라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바로 밑에서 사람이 올라오더라도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밤에 플래시 불빛이 없으면 아무도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주위에 플래시 불빛이 보이는 지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부터 잠깐 플래시 불빛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사수에게 말 하려고 할 때였다, 그 때는 이미 중대장이 초소 바로 앞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우리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중대장은 크게 호통을 치며 사수 둘을 데리고 갔고 우리는 졸지에 사수 부사수가 되어 그 초소를 지켜야만 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어갔다. 우리들은 서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근무지에서 순찰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모두 부사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소초에 도착하면 그 많은 고참들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엄청난 불화가 있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합리화하며 장비를 챙기고 소초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안 근처에서 비를 맞으면서 손들고 서 있는 두 군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 유심히 확인한 결과 그 들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사수들이었다. 나는 사수들의 눈총을 애써 피하면서 걸었지만 지나가는 내 뒷 통수까지 그 눈빛의 힘은 느껴졌다. 우리가 소초에 복귀했을 때 고참들은 사수들은 어디다 버리고 오냐고 물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짬밥이 되고 총망 받는 부 사수 고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며 최대한 방패막이는 해 놓았다. 얼마지 않아 벌을 섰던 사수들은 소초에 어두운 표정으로 복귀를 했다. 다행이도 다른 근무지에서도 중대장이 플래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면서 작정을 하고 순찰을 나갔을 거라며 부 사수들의 큰 잘못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고참에게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사수가 순찰자를 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혼이 나긴 했다.

 

이러한 사건은 중대장의 역량에 따라 영창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워낙 근무인원이 모자란 시점이었기 때문에 영창을 가지는 않고 한가지 벌칙이 내려졌다. 비가 와서 소초로 들어올 기름을 싫은 군용차가 길이 미끄러워서 산으로 오르지 못하자 행정관은 중대장의 지시라면서 두 드럼이나 되는 기름을 산 꼭대기에 있는 소초까지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말통(20리터가 들어가는 기름통, 참고로 한드럼에는 200리터가 들어간다)을 하나씩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한 통씩 기름을 받아 운반하기 시작했다. 높은 계단과 높은 곳에 위치한 소초가 그날 따라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군소리 없이 기름통을 옮기면서 온 몸에 기름 범벅이 되었고 그러한 작업은 3,4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모든 기름을 운반했을 때는 모두 녹초가 되었고 오침이 끝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나는 기름을 운반하여 힘든 것 보다 그날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나고 피곤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벌칙으로 끝이나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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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대를 하고 얼마지 않아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썼던 글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이상한 집단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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